새벽 1시 45분, 나의 그림 산책 - 혼자 있는 시간의 그림 읽기
이동섭 지음 / 홍익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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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요즘 회사가 바쁘다. 나는 아이 둘 키우며 일하는 워킹맘. 감사하게도 12시 출근이지만 오전에 쉬지못하고 출근해서 일하다 보면 금새 지친다. 나는 아이 돌봄을 1순위로 생각하기에 내 적성이나 경력과 무관한 이 일을 택했는데 가족사업장이고 직원도 적다보니 분위기가 살벌하면 도통 일할 맛이 나질 않는다.

어제는 더욱 그런 날이었다. 다행히 평소보다 30분 일찍 끝나서 무작정 카페로 향했다. 온갖 스트레스를 덕지덕지 묻히고 가면 아이들에게 예민하게 굴 것 같아 풀고 가겠단 마음이였다.

달달한 카페모카 한 잔을 시켜두고 책 장을 펼쳤다. 이 책은 왠지 아이들 재워두고 잠자리에서 스텐드 불빛 의지해 읽어야 할 것 같아 아껴가며 야금야금 읽었는데 낮에 보아도 매력있었다.

 

 

 

  

P16

 

 

 

신기하다. 마침 펼친 부분의 글이다. "회사가 전쟁터는 아니지만, 하루 동안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긴장과 불안은 엄청나다. 매일 그것을 적절히 해소하려면 자신만의 '블루 아워'를 마련해두어야 한다. 우리는 제대로 살려고 일을 하지, 일하려고 살지 않는다."

지친 나를 위로하듯,

내가 아이들에게 바로 가지않고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사치가 아닌 '나만의 블루아워 만들기'의 일환이라니.....

이래서 내가 책을 읽는다. 뭔가에 질리도록 치쳐있을때 무심코 집어든 책이 적절한 말로 나를 위로하고 ' 네가 힘든건 전혀 이상하지않아. 내가 네 얘기 다 들어줄게.'라고 말하는 듯 하다.

나는 그림보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그림에 대한 지식은 전혀 없다. 다만 느낌이 좋고 끌리는 작품에 매료된 적은 있다.

오늘 본 책은 '예술작품으로 인문학을 이야기하는 예술인문학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생소한 직업의 저자가 썼다. '혼자 있자니 심심하고 친구를 만나자니 부담스럽던 날 그림을 찾았다. 좋은 그림을 혼자 보는 외로움과 혼자 봐서 좋은 그림을 즐기는 은밀함이 부딪혀 한 줌의 생각들이 솟아났고, 세상과 사람에 대한 오해와 미움은 옅어졌다.'라는 그가 궁금해진다. 과연 어떤 사람일까? '이동섭'이란 이름만 봐서는 남자분일 것 같지만 그가 쓴 문장들의 섬세함을 봐서는 여자분일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보며 책을 읽었다.

 

  

    

 

아래 사진처럼 짧지만 임팩트있는 글과 그에 어울리는 작품이 같이 실려있다. 그림만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저자의 어렵지않게 쓰인 감성있는 글을 보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P50

 

 

 

내게 독서는 비타민

음악은 마그네슘

식물 가꾸기는 철분

sns는 이런 영양제를 더 맛있게 섭취하게 하는 조미료

p16

 

그의 표현을 엿보고 그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게됐다. 식물가꾸기만 빼고 나도 즐기는 것들이다. 식물가꾸기도 하고 싶은 마음은 큰데 집안에 두고 볼 때가 없어서 이사가기 전까지는 화병에 꽂아두는 꽃 몇 송이로 만족하는 중이다.

 

    

책을 읽다보니 에세이집 같은 느낌이다. 다시 거슬러 목차를 살펴보는데 소제목들도 마음에 든다.

 

part1/ 혼자를 선택하는 시간

part2/ 너무 사소해서 잊어버린 장면들

part3/ 혼자 알게 된 삶의 비밀들

part4/ 거리 두기가 필요한 순간

part5/ 더는 숨지 않고 나다움을 찾을 때

 

 

  

  

  

P47/ 애프터눈 티 |힐다 피어론|1917|

 

옷을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마음가짐과 자세가 달라진다고 했던가. 그림 속 아가씩 하얀색의 풍성하고 고급스러운 드레스를 입고 챙 넓은 모자를 쓰고 예쁜 찻잔을 자연스레 들고 있는데 참 기품있어보인다. 이제 옷차림에도 신경이 쓰이는 걸 보니 나도 나이에 걸맞는 우아한 분위기를 갖고 싶은 욕구가 생겼나보다.

오늘은 정성 들여 목욕을 하고, 옅은 식물향 향수를 뿌리고, 머리를 꼼꼼하게 빗고, 옷장에서 제일 좋은 옷을 꺼내 입고, 잘 닦은 구두를 신고, 집을 나선다. 그리고 아주 비싼 커피를 마시러 간다. (중략) 고급의 맛은 부드럽고 무엇도 걸리는 것이 없다. 마치 내 몸의 일부였던 것과 재회하는 듯 자연스럽다. 커피 한 잔이래 봐야 몇 모금 되지 않지만, 그것만으로도 내 몸안에는 커피의 향과 맛이 가득하다. 그 여운을 말끔하게 누린 다음, 일상으로 돌아온다.P46

글을 읽으며 정갈하게 차려입고 커피 한잔을 여유롭게 마시고 있는 그를 상상하다가 커피는 사치고 술은 일상이라 생각하는 남편이 떠올라 기분좋은 상상을 그만뒀다.

 

 

 

예민과 예리,

섬세와 세심

 

예민 은 외부에서 내게 오는 자극에 대한 작용이다. 예리 는 관찰자로서 내가 세상과 사람의 속내를 파악하는 날카로움이다. (중략) 둘 나 온기를 품지 못하면 공격성이 도드라져 말과 행동이 무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섬세와 세심은 이와 다르다. 섬세 는 예리와 같이 날카롭지만 그 시선에 온기를 품고 있고,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 때 상대의 처지에 대한 공감이 있어서 자신이 피해를 보더라도 상대에게는 폐를 끼치지 않으려 한다. 세심 은 섬세가 발현될 때 상대에게 전달되는 감정이다.P91

난 위와 같이 하나의 단어에도 마음에 와닿게 설명하는 것을 좋아한다. 애정하는 온라인카페에서 예전에 함께쓰는 글쓰기를 하면서 '글자만들기'를 했는데 그것과 흡사하다. 예를 들어,

그리고 위에서 저자에 대해 표현할 때 '예민, 예리'말고 '섬세'로 표현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P120-121

 

 

몸은 늙어도

생각은 낡지 말자

 

베토벤은 청각을 잃으면서도 너무나 아름다운 음악을 만든 점에서도 놀랍지만, 세상을 향한 그의 태도도 존경스럽다. 신분제 사회가 끝나가는 무렵에 산 베토벤은 자기보다 신분이 높은 귀족들에게 예를 갖춰 인사하지 않았다. 음악 연주와 악보 판매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세상에 귀족은 많지만, 베토벤은 나 하나뿐이오"라며 당당했다. 그래서 나는 베토벤의 자존감과 고흐의 열등감을 약간씩 섞인 사람이 되고자 했다. 나에게 넘치는 무엇을 덜어내고 그 자리에 부족한 무엇을 채우기 위해, 매일 공부하고 공부한 것을 의심으로 곱씹었다. 어렵고 복잡한 사실들을 단순한 문장으로 정리하고, 글로는 표헌해내지 못하는 감정과 생각들에 절망하지 않고, 매일 써내기 위해 노력한다. 몸은 늙어도 생각은 낡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P120

 

그의 가치관이 담긴 글을 보니 전작도 궁금해진다.

 

 

여기에 남겨두었다가 몇 몇은 찾아 읽어봐야겠다. 책 제목을 보니 미술과 음악에 조예가 깊은 분 같다.

 

  

  

  

 

부담없이 가볍게 일상에 지친 나를 달래는 책.

미술에 조예가 깊지않아도

좋은 작품들을 감상하며 내 마음의 소리를 들어보게 해주는 책.

늦은 밤. 못다읽은 페이지를 넘기며 우리 아이들도 팍팍한 일상이지만 '그림'도 좀 보고 '음악'도 좀 듣는 일상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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