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어른이 되는 법은 잘 모르지만 - 처음이라서 서툰 보통 어른에게 건네는 마음 다독임
윤정은 지음, 오하이오 그림 / 애플북스 / 201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요즘 책들은 하나같이 다 예쁘다. 감성을 자극하는 곱디고운 자태를 자랑한다. 이번에 만난 책, 괜찮은 어른이 되는 법은 모르지만이 책도 감성 에세이집답게 부드러운 분홍색표지에 한 여인이 양 팔을 벌리고 자유스럽게 서 있는 모습이 나를 사로잡는다.


, 육아, 살림 3박자를 고루 잘 해내기란 어렵지만 모두 내가 해내야하기 때문에 꾸역꾸역하다가 문득 마음의 여유가 없는 나를 발견한다. '이쯤해도 괜찮아, 오늘은 좀 쉬어가도 괜찮아.' 스스로를 위로하며 오늘은 달달하고 부드러운 '멜팅바닐라라떼'를 한 잔 시켜놓고, 책장을 열었다.


산책하며 흩어지는 생각을 글로 옮겨 적는 걸 좋아합니다. 걸으며 종종 딴생각을 해 자주 넘어지긴 하지만, 자연스레 착지법을 익히기도 해요. '익힌 착지법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쓸 수 있다니, 얼마나 아름다운가'하며 감탄하는 사람입니다.-작가의 소개 중

 

 

안타깝게도 나는 오랫 동안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잊고 살았다. 책도 나의 휴식을 위해 읽기보다는 정보를 얻기 위함이 많았고, 여유있게 읽기 보다는 몰아쳐서 읽기에 바빴다. 마치 활자에 굶주린 사람처럼......

윤정은이란 작가를 만나기 전에는 그다지 에세이에 관심이 있지 않았던 것 같다. 그녀의 베스트셀러 하고 싶은 대로 살아도 괜찮아라는 책을 서점을 둘러보며 알았지만 선뜻 펼쳐보려 하지 않았다. 그녀가 새로이 낸 이 책을 보며 난 책을 음미하며 읽는 여유를 다시금 찾은 것 같다.


 

 

'아무것도 아닐 거야. 금방 지나갈 거야. 시간이

지나고 나면 괜찮아질 거야.' 뭔가 부족해보인다.

'아무것도 아닌 날들이 모여 아무것이 된다.'라고 다시 적는다.

이 문장은 '아무것' 대신 '특별한 날'이라고 썼다 지웠다. 다시 '아름다운 날'이라 썼다 지우고

'보통날'이라고도 써본다.

굳이 자기 앞의 생을 '특별한' 혹은 '아름다운' 같은 형용사로

꾸미지 않아도 충분하다 생각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그저 그런 보통날이야마라로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날임을

알았다.

괜찮은 어른이 되는 법은 모르지만프롤로그 중


작가의 프롤로그가 내 마음을 건드린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그저 그런 보통날이야말로 진정 아름다운 날이란 걸 새삼 느낀다. 마침 마시고 있는 부드러운 크림 가득한 라떼가 더 부드럽고 달콤하다. ', 행복하다.' 라는 느낌이 나를 감싼다.


이 책은 총 5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우리는 모두 첫 어른이야

2장 달콤쌉싸름한 어른의 맛

3장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내가 좋아

4장 두려움에게 인사하는 법

5장 생각보다, 생각만큼 괜찮아

 


몇 주전 블로그관련해서 강의를 들으러 갔을 때 거기서 만난 한 분이 그러셨다. 블로그는 자기 얼굴, 이미지라고..... 내 블로그(나대로 괜찮아, 이대로 괜찮아)가 좀 우울해 보이니 좀 밝게 바꾸면 좋을 것 같다고. "아 그래요?"라고 대답하며 '정말 그런가??' 자문해보았다. '나는 지금 이대로의 내 모습 그대로 충분히 괜찮으니 자신을 가져도 좋다, 내 색깔 그대로도 괜찮다'라는 의미로 그런 문구를 쓴 건데 반대의 느낌을 받으셨나보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 책이 나의 블로그 느낌과 조금은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내 블로그에 내 감정과 생각들을 녹이고 내 색깔을 묻혀 내면서 스스로 위로를 받는데, 책에서 받은 느낌도 '어른이라고 다 완벽해야 되는 건 아니야. 지금도 충분해. 너도 어른이 되는 건 처음이잖아,'라고 위로를 받는 느낌이라 그런것 같다.



 

세 명이 사는 집 거실 한가득 들어찬 쇼파와 커다란 아일랜드 식탁,

4인용 식탁을 답답하게 느낀 건, 욕심내지 않아도 오늘 내 삶이

꽤 괜찮다고 여기면서부터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고,

아이가 건강하게 웃으며 자라고, 나무와 햇빛을 느끼며

살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이다.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있고,

책을 읽을 수 있고,

맛있는 커피 한 잔과 음악이

내게 있으니, 좋지 아니한가?

앉은 자리가 꽃자리다. 꽃밭을 알아볼 수 있는 여유는 내 안에서 나온다.

(중략)

어른이 된다는 건 서글프기도 하지만 경험을 통해 아는 것이 늘어가니

근사하기도 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

집에 빛이 머무는 시간,

짐을 드러낸 공간을 서성이며 여백을 만끽한다.

괜찮은 어른이 되는 법은 모르지만P51

 


 

달콤쌉싸름한 어른의 맛


술이 덜 깼나, 아침부터 근사한 커피 향을 맡으며 몽상에 빠진다. 커피를 마시기도 전에 풍부한 향에 기분이 좋다. 처음부터 커피가 좋았던 건 아니다. 처음 회사에 들어가고 오전에 마시는 봉지커피에 서서히 길들여지며 커피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커피를 마시는 순간은 팍팍한 회사 생활 속 쉼이자 오아시스를 발견한 기분이 들게 했다. 그러고 보니 처음 아메리카노를 맛보있을 때 들었던 생각은 '재떨이'였다. 대체 이렇게 쓴 물을 왜 돈 들여 마시는지 이해할 수 없던 스무 살의 내가, 커피 향만으로 기분 좋아지는 삼십 대 후반의 나를 만나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잔을 입으로 가져오는 찰나의 순간에 이토록 설렐 나를 상상할 수 없겠지. 만약 누군가 내게 어른의 맛을 논하라면, 단연 커피라고 할 수 있겠다.- 괜찮은 어른이 되는 법은 모르지만- 괜찮은 어른이 되는 법은 모르지만P58


 

위의 텍스트를 읽으면서 난 어느새 26, 풋풋한 직장인의 모습을 하고 휘핑크림이 잔뜩 올려진 '카페모카'를 마시고 있고, 반대편엔 31살 어느 정도 안정된 모습의 직장인 오빠가 쓰디쓴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모습을 하고 있는 장면이 떠올랐다.

늘 아메리카노만 마시며 굵직한 목소리로 "너는 요즘 어떤 고민이 있어? 앞으로 하고 싶은 건 뭐야?"라고 묻던 얼굴이 떠올랐다. 그 때 나는 처음 알았다. 남자 나이 31살은 적지도 많지도 않은 나이지만 안정된 미래를 엄청 고민하던 때란걸.

난 그의 중저음의 목소리와 지적인 분위기를 좋아했지만 그가 보기엔 입안의 달달함, 아무 생각없이 현실 만족하는 내가 부족해 보였을터.

사실 그 때 나는 아직 내 안의 잠재력을 끄집어 올리지 못하고 겉으로 밝은 척, 걱정 없는 척 웃고 있었을 뿐인데......

30대의 끝자락에 있는 나는 비로소 '아메리카노'의 쓰지만 깔끔한 맛을 알아버렸다. 이젠 지적인 척, 도도한 척 하는 그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을 만큼 내 내면도 단단해졌다. 뭔가 있어보이는 아메리카노. 이젠 나의 선택으로 어느 날은 '아메리카노'를 어느 날은 '바닐라라떼 혹은 카라멜마키아또'를 마신다.



 

 


 

그렇게 어른이 되어간다


「어른이 되어 좋은 점은, 좋아하는 것을 두고 최선의 결과를 얻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소모가 줄었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하나씩 해내가면서 스스로가 기특해진다. 이만치 살았음에도 아직도 모르는게 많고, 배울 게 많다는 사실이 생을 흥미롭게 만든다. 전에는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무턱대고 타인을 따라 배우고 시도했다면, 지금은 차근차근 좋아하는 것을 찾아갈 줄 아는 혜안이 생겼다.」 - 「괜찮은 어른이 되는 법은 모르지만」 P63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산다는 것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하며 살아가는 무게는 좋아하지 않는 일을 좋아하려 애쓰는 것보다 무겁다. 다만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다는 행복감으로 그 무게를 기꺼이 견디는 것일 뿐. 견디다 보면 어느 순간 짊어진 무게도 느껴지지 않아 퇴근이 따로 없는 쓰는 삶을 기꺼이 살아내고 있음을 축복이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어느 날 축복이 버거워 벗어나려 몸부림치며 원망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렇지만 역시 안다. 벗어나려 몸부림쳐도 결국 돌아와 쓰며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쓰는 삶이 나를 숨 쉬게 한다는 것을.」 -「괜찮은 어른이 되는 법은 모르지만」 P69

 

책을 읽다가 저자의 이름을 검색창에 넣고 검색해본다. 수많은 저서들이 검색되었다. 이토록 책을 많이 펴낸 작가분도 자신의 글쓰기를 버거워하실 때도 있구나 싶어 인간미가 느껴진다.


 

 


어른에게도 위로는 필요하다.

「어른이 되면 늘어지게 게으름을 피우며 엉망으로 살고 싶었는데 막상 그렇게 살면 어찌 되는지 뻔히 보이니 더욱더 열심히 살게 된다.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 어른들의 어깨는 늘 축쳐져 있었다. 뱅뱅 도는 쳇바퀴 같은 일상 속에서 잿빛을 견디며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고 살아가고 있다는 걸 그 누구도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 「괜찮은 어른이 되는 법은 모르지만」 P71


어린 시절 난 어른의 삶을 그리 동경하지 않았다. 하지만 해결되지 못한 엄마의 어려움과 불안감이 나에게도 전해질 때면 빨리 어른이 되어 엄마의 그들을 벗어나고 싶었다. '왜 우리 가족은 평범한 것 같은데 전혀 평범하지 않지? 아빠의 월급만으로도 편히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늘 허덕이는 것 같지? 왜 엄마는 전화통화를 할 때마다 불안해보이지?'라는 생각들을 하며 어른은 참 힘들구나 뭔가 책임질 일이 없는 지금의 내가 편한 거구나 일찌감치 알았던 것 같다.
그럼 40대를 향해 가고 있는 지금의 나는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지금도 아직 어른아이인 것 같다. 엄마가 되고 나서야 조금은 어른사람에 가까워졌다고 느꼈지만 모든 상황들을 여유있게 받아들이고 내면의 역량으로 해석하고 해결하기엔 아직 많이 부족한 것 같다.
그래도 나를 아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나를 알고 다독여줄 수 있는 지금의 나도 좋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내가 좋아

「요즘 마음이 어떠세요?
요즘 마음은 어떠세요-
요즘 당신의 마음은 안녕하신가요?
일상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도, 거울 속의 나를 만날 때도 종종 물어보아야겠다.
있는 그대로 괜찮은 나, 우울이라는 감정이 내 삶에 들어와 한 조각을 이루더라도 괜찮다.」 -「괜찮은 어른이 되는 법은 모르지만」 P112-113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 이쯤이어도 괜찮다 그냥 끄덕여본다. 앞서 말했듯이 누군가에겐 내 블로그명이 어두워보이고 우울해보여도 지금의 모습이라 잠시 그냥 두고 싶다. 얼마간 지나고 내 감정이 바뀌면 그 때 다시 바꿔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철들지 않는 어른이로 살고 싶다

「매일 달라지는 하늘의 색, 바람의 숨결,
나무의 말을 듣는 어른이 되고 싶다.
매일 먹는 밥맛에도 감동하는 어른이고 싶다.
감동하고 화내고 슬퍼하며
반응할 줄 아는 어른이고 싶다.
삶의 소소한 순간들을
민감하게 반응할 줄 아는 어른이고 싶다.
땅에 발이 조금 덜 닿은 것 같아 보여도 괜찮다.
타인이 정한 기준대로 길을 가는 어른이가 아니라
아무도 정하지 않은 길을
자박자박 밟으며 만들어가는 어른이고 싶다
그저 적당히 철들지 않는 어른이로 살고 싶다.」 -「괜찮은 어른이 되는 법은 모르지만」 P124


삶의 소소한 순간들을 민감하게 반응하는 어른, 아이 둘을 두고 있는 엄마로서의 나에게도 필요한 모습이다.

 


아름다운 나의 오늘

「완벽해 보일지라도 누구에게나 하나쯤 빈틈은 있다. 나는 글쓰는 재주 말고 다른 일엔 영 젬병이라 곁에서 사랑해주는 이들 덕분에 살아간다. 그들의 보살핌과 넓은 아량으로 부족하고 모난 부분이 채워진다. '근사해 보이는' 이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그들도 나와 비슷하다. 어느 한 부분 말고는 허점이 있고, 방황하고 고민하는 보통 사람일 뿐.」 -「괜찮은 어른이 되는 법은 모르지만」 P132

 

누구나 저마다의 방에 저마다의 크기의 아픔과 고통을 가지고 있겠지. 나만 이토록 삶이 변화가 없는 것 같고, 매일이 똑같은 건 아니겠지?라는 생각을 해본다.


 

눈이 부시게

「정말 아름다운 것들은 무너지고 실패했다 느끼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삶이 아프게 부서졌다 생각했던 어느 날, 날것으로 펄떡거리는 삶의 민낯을 보았다. 초라할 것 같아 정면으로 마주하기 껄끄럽던 민낯은 더없이 자연스럽고, 아름다웠다. 눈이 부시게. 어쨌거나 이 고단한 생의 순간들 앞에서 나는 살아 있다. 살아내고 있으며, 앞으로도 힘차게 단단한 두 발로 내딛을 것이다. 두려움은 정면으로 마주보는 순간 서서히 옅어진다. 대단하지 않은 사람을 두려워할 게 아니라, 오늘을 사랑하지 못하는 초라한 나의 마음가짐을 두려워해야 하는 것 아닐까. 상처투성이라 생각했던 지나온 시간들을 마음으로 안아본다.」 - 「괜찮은 어른이 되는 법은 모르지만」 P157





한심한 감정들을 모아 버렸다

「일부러 (쓰레기)봉투를 빨리 채워 버리려고 닦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사소한 욕심 때문에 채우며 배를 불리려 무리하고 있는 건 아닐까? 조금 비어 있는 대로 두거나, 굳이 지금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을 억지로 해 스스로를 불편하게 하고 있지는 않을까? 쓰레기봉투를 묶으며 남는 공간에 한심하고 아집투성이인 생각도 같이 집어넣는다. 봉투가 터지려고 한다. 정말 버려야 할 건 이거였구나. 」 - 「괜찮은 어른이 되는 법은 모르지만」 P169


나도 한심한 나의 감정들을 비어있는 쓰레기 봉투속에 모조리 담아 버리고 싶다. 쓰레기통 비우듯 감정버리기가 쉬운 일이라면 지금껏 숱한 날들의 베개를 적시지 않았으리라. 요즘 나의 감정을 너그러이 담아주는 블로그가 새삼 고맙다. 여기에라도 담아두니 차고 넘치기 직전까진 가지 않아 다행이다.
오랜만에 일상에서 벗어나, 좋아하는 커피 한 잔과 느긋하게 예쁜 책 한권을 음미하며 보니 다시금 일상안으로 저벅저벅 들어갈 힘이 생긴다.
참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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