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림책을 좋아한다. 어렸을 적에는 별로 책을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스스로 그냥 호기심이 없는 아이인줄 알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어렸을 때 무엇을 좋아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삼삼오오 모여 놀이터에서 잡기놀이를 하거나 교회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다니며 예배 드리고 함께 숙제하고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밤이 되면 혼자 책상앞에 앉아 공부를 한 것도, 책을 읽은 것도 아닌데 무언가를 끄적이거나 내가 소중히 여긴 작은 물건들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을 즐겼던 것 같다.
커서는 밝은 사람이 되고 싶고, 잘 웃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일부러 더 많이 웃고 다녔던 것 같다. 내 감정과 다른 표정은 숨긴채.
그리고 생각하기를 두려워했다. 아마도 생각을 깊게 하다보면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어 나중에는 부정적인 생각으로 빠지게 될까봐 두려웠던 것 같다. 그래서 마음이 힘들고 지칠 땐 우울한 감정에 빠지기 싫고 내 상황과 환경을 비관하고 낙담하게 될까봐 자는 것으로 모든 것을 외면하려 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내 일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그런 나는 자연스레 변했고, 변할 수 밖에 없었다.
어린 자아를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기엔 이 세상은 참으로 각박하고 무지막지하고 냉혹하기에,
또 그런 세상에서 우리 순진무구한 내 새끼들이 자라가는 것을 지지하고 끌어주려면 내가 강할 수 밖에 없으므로....
그래서 엄마가 되고 나를 들여다 보게 되었다. 나의 좋은 점부터 안 좋은 점, 내 아이가 닮지 않았으면 하는 점까지 들여다 보았다. 그리고 '어떤 어른, 어떤 엄마가 되고 싶은가.'를 생각하며 살게 됐다.
그러는 중에 그 동안 나조차도 무시하고 외면했던 내 생각, 내 감정들을 하나 하나 면밀히 살펴보게 되었고, 아이를 잘 키우려면 내가 건강해야 된다는 생각, 특히 내 마음이 건강해야 한다는 생각을 절실히 하게 되었다.
지금은 내가 좋다. 예전엔 이런 점이 싫고, 이런 점이 못나보이고 했다면 그런 모든 점들도 '이래서 이럴 수 있고, 이런 점은 저래서 꼭 나쁜 것만은 아니고.'라며 있는 그대로 나를 인정하고 좋아하게 되었다.(사실 내 블로그도 이런 생각으로 "나대로 괜찮아, 이대로 괜찮아"라고 이름을 지었다.)
제일 처음에 언급한 대로, 나는 그림책을 좋아한다. 이유인즉, 우선 예쁘다. 그림책의 색감도 질감도 이야기도 그림책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동물, 식물 모두. 커서 보는 그림책,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이지만 저마다 깊은 울림과 철학이 담겨 있다. 글밥도 어른 책에 비하면 엄청 적지만 그 짧은 글에 담긴 뜻은 참 깊고도 오묘하고 지혜롭다.
아이를 보다가 지칠 때면 어쩌다 내가 소장하고 싶었던 그림책을 하나씩 사곤했다.
지금도 사실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을 사기보단(아이들 그림책은 주로 빌려서 보여준다) 내가 마음에 들어 갖고 싶은 그림책을 산다.
사실 부끄럽게도 얼마전까지 그림책과 동화책의 구분이 없던 나에게 그림책은 그림위주의 책이니 어린 아이들이 보는 책이고, 동화책은 글밥이 많으니 초등학생이 보는 책으로 구분을 했는데, 얼마전 우연히 알게 된 「동화가 있는 철학 서재」이란 책의 제목을 보고 '난 그림책을 좋아하니 이 책도 왠지 흥미있을 거 같아.'란 생각이 들었고, 이 책을 집어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