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가 있는 철학 서재 - 동화에 빠져든 철학자가 전하는 30가지 인생 성찰
이일야 지음 / 담앤북스 / 201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그림책을 좋아한다. 어렸을 적에는 별로 책을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스스로 그냥 호기심이 없는 아이인줄 알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어렸을 때 무엇을 좋아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삼삼오오 모여 놀이터에서 잡기놀이를 하거나 교회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다니며 예배 드리고 함께 숙제하고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밤이 되면 혼자 책상앞에 앉아 공부를 한 것도, 책을 읽은 것도 아닌데 무언가를 끄적이거나 내가 소중히 여긴 작은 물건들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을 즐겼던 것 같다.

커서는 밝은 사람이 되고 싶고, 잘 웃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일부러 더 많이 웃고 다녔던 것 같다. 내 감정과 다른 표정은 숨긴채.

그리고 생각하기를 두려워했다. 아마도 생각을 깊게 하다보면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어 나중에는 부정적인 생각으로 빠지게 될까봐 두려웠던 것 같다. 그래서 마음이 힘들고 지칠 땐 우울한 감정에 빠지기 싫고 내 상황과 환경을 비관하고 낙담하게 될까봐 자는 것으로 모든 것을 외면하려 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내 일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그런 나는 자연스레 변했고, 변할 수 밖에 없었다.

어린 자아를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기엔 이 세상은 참으로 각박하고 무지막지하고 냉혹하기에,

또 그런 세상에서 우리 순진무구한 내 새끼들이 자라가는 것을 지지하고 끌어주려면 내가 강할 수 밖에 없으므로....

그래서 엄마가 되고 나를 들여다 보게 되었다. 나의 좋은 점부터 안 좋은 점, 내 아이가 닮지 않았으면 하는 점까지 들여다 보았다. 그리고 '어떤 어른, 어떤 엄마가 되고 싶은가.'를 생각하며 살게 됐다.

그러는 중에 그 동안 나조차도 무시하고 외면했던 내 생각, 내 감정들을 하나 하나 면밀히 살펴보게 되었고, 아이를 잘 키우려면 내가 건강해야 된다는 생각, 특히 내 마음이 건강해야 한다는 생각을 절실히 하게 되었다.

지금은 내가 좋다. 예전엔 이런 점이 싫고, 이런 점이 못나보이고 했다면 그런 모든 점들도 '이래서 이럴 수 있고, 이런 점은 저래서 꼭 나쁜 것만은 아니고.'라며 있는 그대로 나를 인정하고 좋아하게 되었다.(사실 내 블로그도 이런 생각으로 "나대로 괜찮아, 이대로 괜찮아"라고 이름을 지었다.)

제일 처음에 언급한 대로, 나는 그림책을 좋아한다. 이유인즉, 우선 예쁘다. 그림책의 색감도 질감도 이야기도 그림책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동물, 식물 모두. 커서 보는 그림책,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이지만 저마다 깊은 울림과 철학이 담겨 있다. 글밥도 어른 책에 비하면 엄청 적지만 그 짧은 글에 담긴 뜻은 참 깊고도 오묘하고 지혜롭다.

아이를 보다가 지칠 때면 어쩌다 내가 소장하고 싶었던 그림책을 하나씩 사곤했다.

지금도 사실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을 사기보단(아이들 그림책은 주로 빌려서 보여준다) 내가 마음에 들어 갖고 싶은 그림책을 산다.

사실 부끄럽게도 얼마전까지 그림책과 동화책의 구분이 없던 나에게 그림책은 그림위주의 책이니 어린 아이들이 보는 책이고, 동화책은 글밥이 많으니 초등학생이 보는 책으로 구분을 했는데, 얼마전 우연히 알게 된 「동화가 있는 철학 서재」이란 책의 제목을 보고 '난 그림책을 좋아하니 이 책도 왠지 흥미있을 거 같아.'란 생각이 들었고, 이 책을 집어들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이일야'라는 필명을 쓰고 있다. 전북대학교와 연이 깊은지, 이 분은 전북대학교에서 철학과 학부와 석,박사과정을 하고 전북대학교, 전주교육대학교에서 철학과 종교학, 동양사상을 강의한 그리고, 현재는 전북불교대학 학장을 맡고 있다고 한다. 그가 낸 책들도 다수 있는데, 거의 불교와 관련된 서적들이었다.

나는 책을 볼 때 저자의 이력은 대충 살피고 목차를 먼저 유심히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가 관심이 있는 챕터를 찾아 먼저 읽기도 하고, 그냥 단조롭게 읽고 싶은 날은 머릿말부터 순서대로 본다. 그리고 중간까지 보다가 책이 마음에 들면 다시 저자의 이력을 꼼꼼히 살핀다. 만약 중간까지 봤는데 책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 책 제목만 보고 책을 선택하거나, 디자인만 보고 선택하지 말아야지.'하고 책 선택을 신중히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중간부터는 재빠르게 속독을 하는 편이다.

그리고 책을 읽었을 때, 저자가 어떤 종교관을 갖고 있느냐를 별로 난 중요시하지 않았다. 종교서적을 고른 것이 아니기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만난 책처럼 일반 서적같은데, 저자 이력이나 머릿말에서부터 '종교적 색채'를 드러내는 것을 보면 거부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어찌보면 단순한 사람이기에 나와 같은 종교라면 오히려 반가워하지만......

서론이 오늘은 엄청 길었는데, 아무래도 내가 생각한 방향과는 다른 책이라 생각이 많아져서 그런 듯 싶다.

「동화가 있는 철학 서재」 이 책은 부제목으로 "동화에 빠져든 철학자가 전하는 30가지 인생 성찰"이라고 붙어 있다.

내지를 펼치자, 일러두기에서 "이 책은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월간 송광사>에 연재된 내용을 모아 다듬은 것이다"라고 써 있다.

머리말에서도 안내하듯이, 이 책은 어린 시절 할머니 무릎에 누워서 들었던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와 초등학교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 들었던 익숙한 동화들이 많이 등장한다. 저자는 동화를 통해 우리 자신을 성찰해보자는 취지에서 이 책을 묶어 냈다고 한다. 그리고 저자의 글을 재밌게 읽고 있다는 선생님으로부터 아이들의 인성교육을 할 때 활용하기 위해 '인성'과 관련된 동화를 다뤄주길 원한다는 바람으로 책을 냈다고 한다.

우리에게 솔직하고 당당하게 살 수 있도록 희망과 용기를 주는

또 다른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아이들이 읽는

동화가 그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동화는

우리에게 어떤 힘을 주는 것일까?

프롤로그 중

「동화가 힘을 갖는 이유는 그것이 비록 어른들에 의해 쓰이긴 했지만 아이들을 위한, 아이들에 의한, 아이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에 비해 몸집도 작고 물리적인 힘도 약해 보이지만, 그들은 성인들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강력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솔직함과 당당함이라는 에너지가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힘이 있게 때문에 동화를 읽게 되면 한없이 부끄럽기도 하며, 솔직하게 살아오지 못한 자신을 돌아보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아이들의 눈과 마음으로 쓰인 동화는 자기 자신을 비추는 거울과 같다 할 것이다.」 P11

「이제부터 동화와 함께 떠나는 인문학 여행을 시작하려 한다. 비록 지금은 초라한 모습으로 살고 있지만 여행을 마쳤을 때 솔직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변화된 자신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P15

목차를 보면 저자가 어떤 동화 30가지를 택했는지 한눈에 볼 수 있다. 책을 많이 안 봤던 나도 아는 동화가 대부분이다. 그럼 저자는 그 동화들로 어떤 인생철학을 나누고 싶어했을까?

저자가 선택한 30가지의 동화 중 나는 가장 인상깊었던 동화가 "날 지켜줘, 그림자야"라는 동화이다.

이 동화는 <희망TV SBS>를 연출했던 이호석 PD의 창작동화라고 한다.

처음 본 동화라 살짝 옮겨왔다.

하늘나라 그림자 마을에 살고 있는 아기 그림자는 아침 해가 뜨면 땅으로 내려오고 저녁이 되면 다시 마을로 돌아간다. 아기는 마티의 그림자이기 때문에 늘 붙어 다녔는데, 웬일인지 다른 친구들은 마티를 몹시도 싫어했다. 그래서 마티가 지나가면 친구들은 놀려대곤 했다. "저기 하얀 괴물 미티다! 괴물이래요~괴물이래요~"

그랬다. 마티는 아파서 다른 친구들과 달리 피부가 하얀색이었던 것이다.

P37

동화 속 마티는 백생증 환자이고, 친구들은 그런 마티를 놀린다. 그런데 어느날 하얀 피부의 아이들만 잡아가는 괴물로부터 숨느라 마티는 어두운 동굴에 있게 되고, 그림자 아기는 그림자 마을에 있는 엄마의 목소리를 듣게 되고 마티를 지켜준다. "엄마의 목소리에 힘이 난 그림자는 괴물을 향해 큰 소리로 "넌 누구냐?"라고 외치면서 동굴 밖으로 나왔다. 그때 달님이 그림자를 환하게 비춰주자 아기는 괴물보다 훨씬 큰 그림자로 변해 있었다. 괴물은 자기보다 휠씬 힘센 도깨비인 줄 알고 목숨만 살려 달라고 애원하면서 멀리 도망갔다."

얘들아, 지금 달빛에 비친 그림자를 보렴. 모두 똑같은 색깔이지?

피부색이 달라도 그림자 색깔은 다 똑같듯이 너희들은 모두 똑같은 친구란다."

그림자는 마티와 친구들을 껴안았다. 그리고 달빛 아래 모두의 그림자는 하나가 되었다. 앞으로 마티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이제는 곁에 친구들이 있으니까.

P39

위의 문장을 보면 '백색증'이라는 핸디캡을 딛고 마티는 친구들과 화해하고 좋아지게 된다.

다시 돌아와서 <<동화가 있는 철학 서재>>의 저자는 이 동화를 통해, 다음과 같은 철학적 해설을 덧붙인다.

어찌 보면 차이는 오히려 나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고마운 존재다. 나의 정체성은 차이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나'는 '너'와의 차이에서 드러나며, '흰색'은 '검은색'과의 차이에서 드러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너는 나의 존재 이유이자 근거라고 할 수 있다. 차별이 아니라 존중하고 사랑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략)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마티들이 있다. 이들을 지켜줄 그림자와 달님들은 다른 사람이 아닌 우리 스스로가 되어야 한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차별하지 않는 사회, 아니 나와 다르기 때문에 서로 존중하는 사회, 우리가 꿈꾸는 세계도 이런 곳이 아닐까?

P43-44

가볍게 여러 동화를 다시 읽으며 옛 이야기의 기억을 더듬는 재미, 저자만의 철학이 언급한 동화에 어떻게 스며들었는지 읽어보는 재미가 있는 책이었다.

하지만, 나와는 좀 맞지 않았다. 뭔가 너무 거창한 것을 기대한 탓이리라. 그리고 좀 더 따뜻하고 감명깊은 동화들을 통한 저자만의 독특한 시각과 성찰을 보고 싶었는데 조금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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