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서재가 있는 사람이라면, 가장 애뜻한 공간이 서재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침대 위의 포근한 이불이 꿈 속으로의 안락한 통로를 열어준다면, 서재의 책들은 또다른 세상으로의 통로를 열어주는 공간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 꿈을 꾼다는 것. 혹은 이 일상을 살아가며, 차곡차곡 쌓인 일상의 기록들이 한 사람의 인생이라는 이름으로 정의되는 삶을 살아간다면, 그 모든 것은 자기만의 작고 소소한 서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서재는 나를 바깥세상과 내면의 공간 사이에 작은 벽을 만들기도 하고 동시에 허물어 주기도 한다. 겪어보지 못했던 인생에 대하여 함께 고민하게 하며 내안의 내면을 다시금 곱씹어 보게 한다. 문득 바깥 바람이 서재 창문을 스치며 들어 올때면, 유독 더 쓸쓸하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책의 내용을 이해하건, 이해하지 못하건 읽는 다는 행위 자체에 책이 내포하고 있는 지적인 향락을 어느정도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떠들석하며 지지고 볶는 일상 속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찾는 다는 그 시간. 그 자체가 주는 여유와 자기 반성의 시간들. 하지만 어떤 작가는 한권의 책을 펼치기 전과, 덮고 난 후 달라진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 모든건 시간낭비라는 말을 한적이 있다. 그렇다. 그럴 수 있다. 책이 지식인들만의 사유물이 아닌, 다양한 이성과 감성을 각자의 것들과 수렴해 공감하는, 그리고는 책을 덮고나서 각자의 내면으로 융화시키는 행위들. 아름답다. 하지만 말이 아름답다고 전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읽는 다는 것'에 대한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다. 책을 들지 않는 한 손으론 왼쪽 허벅지의 박피를 벗겨내면서 제인오스틴의 <이성과 감성>을 읽는 행위 따위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진지함은 다른 곳에 있다. 흘려 읽든, 완독을 하던, 더 나아가 필사를 하든 읽는 다는 행위가 주는 의미에 내 모든 것을 우선 맡기자. 그리고선 수렴한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일상적인 권태를 들춰내며 공감대를 형성하는 자기계발서 따위가 주지 못하는, 기척없이 내 가슴으로 스며드는 조곤한 향기들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켜켜이 쌓인다. 중요한 것들은 늘 예상하지 못할 때, 나도 모르게 드러난다.









 시대를 뒤틀었던 사상과 이념은 대부분은 '책'에서 시작했다. 모든 선언들도 몇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책이었다. 세상의 모든 위대한 변화들 가장 깊은 곳에는 늘 책이 있었다. 그 모든 영향력을 내포한채, 책들은 조용히 우리의 오른손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넘겨진다. 정보와 지식들이 설명될 수 있는가 없는가의 여부도 책의 존재 여부와 연관이 되어있다. 수없이 변천한 문명의 역사 속에서 책이 사라지고 있다. 그렇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결국 모든 것은 책의 형태로 굴착되고 말것이다. 기록으로써, 탐구로써, 세대의 문명을 담아내는 그릇으로써, 책은 성분에 대해 끈임없이 질문을 던짐으로써 그 자체로써 번식 할 것이다. 우리의 일상이 모여 하루가 되고, 하루가 모여 인생을 일구듯이. 그 일상의 기록들과 타인을 바라보는 행위들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더 정의롭게 만들까. 그렇던 말던, 예쁘장한 수사들 다 집어 치우자. 책을 읽는 방법을 떠나, 읽는다는 행위 그 자체의 지적인 향락이, 우리의 인생을 그나마 견디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나만이 느끼던 부조리가 결코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때 느끼는 것들 말이다. 책이 사람을 바꾼다는 말. 세상에서 가장 절박한, 그래서 슬픈 거짓말이다.  문득 서재에 달린 좁은 창문 틈으로 새어들어오는 바람이 쓸쓸함인지, 세상이 나에게 보내는 연민의 목소리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날이다.-ozwonsu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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