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치콕 얘기를 좀 해야겠다. 반세기가 훌쩍 지나서도 끈임없이 화자되는 이유는 설명할 필요도, 설명할 가치도 불필요 하게 느껴진다. 서스펜스의 거장. 스릴러의 거장. 서스펜스랑 스릴러가 뭔차이가 있던, 고추장과 된장의 차이건. 순수하게 히치콕의 영화에 대한. 아니 히치콕과 영화에 대한 잡념을 적어보려 한다. 


히치콕 영화단상 1

 <싸이코, Psycho, 1960>



PSYCHO

Alfred Hitchcock's Psycho , Psycho, 1960

감독 알프레드 히치콕

배우 안소니퍼킨스 베라마일즈







 영화를 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는 것은 다양하게 해석 될 수 있을 것이다. 등장인물에 대한 연민의 카타르시스일 수도 있고, 영화의 내용과 사건에 대한 카타르시스일 수도 있다. 혹은 영화에 관련한 사람이라면 영화 감독의 테크닉과 표현법에 느낄 수도 있겠고. 여하튼 히치콕은 영화적기법으로 '스릴러'를 다뤄내는 최고의 감독이다. 그는 그 자체로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는 감독이다.


 대부분이 그랬을 거라 믿는다. 나도 흑백영상이 이루고 있는 욕실에서, 입이 찢어질 듯 소리지르는 전라의 여자의 모습이 연상되는 '싸이코'를 가장 먼저 봤다. 영화초반부터 후반까지, 일관적으로 유지되는 어두운 분위기와 음습한 기운들이 이 영화를 하나의 스릴러 작품으로 연상시키는데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수도 없이 인용되고 거론되고 심지어는 연구되었을 장면이겠지만, 욕조신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커튼을 치고 개인적인 공간에서, 게다가 입고있는 옷 하나 없는 인물의 현상황이 가지는 공간적인 공포감. 마치 무서워 이불을 머리까지 덮어올렸을때 찬바람이 쌩하고 지나가는 허전한 발처럼 심리적인 여백이 남겨주는 공포 속에서, 칼을 쉴새없이 여자의 신체 부위를 여기저기 난도질한다. 컷들은 여자의 입, 눈, 코, 팔을 지나 배수구로 흘러내려가는 핏물을 비치면서 순간적으로 인물이 감당할 수 있는 모든 고통의 형태들을 캐치하듯이 빠르게 나열한다. 


 히치콕의 영화는 흔히 공포물에서 보이는 사건과 사건의 더미 속에서 가해지는 충격의 이미지들과는 많이 다른점을 볼 수 있다. 사건이 발발하는 상황설명과 이유를 알 수 없고 심지어는 그 범인조차 알 수 없다. 다양한 사건들에 의해 설명되고 분명한 행위가 아닌, 근본적인 공허함 속에서 가해지는 공포인 것이다. 거기에 치밀하게 계산 된 카메라 구성과 소름끼칠 정도로 냉혹한 사운드 트랙이 그 공포감을 더한다. 히치콕은 설명될 수 없는 대상으로 부터의 근본적인 공포감을 선호했다. 


 히치콕이 후대 영화계에 남긴 유산은 분명하게 일컬어 진다. 인물의 심리를 묘사하는 특유의 카메라 구도. 스릴러 영화로써 배경음악이 가지는 의미. 사건이 꼬이면서 관객들에게 사건의 여지를 숨기거나, 극단의 공포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공간의 설정등. 하지만 이런 테크니컬한 부분들이 히치콕의 손에 의해 나올 수 있기까지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겠다. 난 한명의 감독은 한명의 철학자라고 생각한다. 히치콕이 가진 대중성과 더불어 그가 동시에, 결코 놓치지 않으려 했던 '작품성'에 그의 철학이 녹아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느끼는 공포의 본질적인 근원과 편중된 감정이 가지는 왜곡의 공포들에 대한 연구와 분석. 그것들에 대한 끈임없는 노력들이 후대 스릴러 장르에서 테크닉컬이라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용되고 차용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ozwonsuv

<다음은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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