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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아이 1등 공부법
90쪽

객관식 시험은 군부통치의 결과물이다.
유럽의 대부분의 나라들과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의 모델이 된 미국까지, 셀 수 없이 많은 나라들이 아이 스스로 탐구하고 스스로 쓰며 답을 찾게 하는데 왜 굳이 우리나라만 이렇게 객관식 문제에 집착하는것일까? 그것은 우습게도 우리나라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객관식 시험이 도입된 시기는 대표적인 군사 쿠테타기로 일컬어지는 1960년대 초반이다(그 이전의 시험은 대부분이 주관식이었다. 고려, 조선시대의 과거제도를 생각해 보라), 국가의 시험 개입은 혼란한 시대 상황 속에서 ‘혼란을 만드는 곳인 교육 현장을 억제하려는 의도는 뒤로 숨기고 공정, 효율, 객관 등 더 나은 것의 추구라는 명분으로객관식 시험의 무기를 강력하게 작동한다. 다시 말해 혼란한 시기에 온란을 부추길 수 있는 다양한 주관적 목소리를 듣지 않도록 주관싹을 잘라버린 것이다. 더욱이 혼란한 시대 상황 속에서 국가가 시험을

관리하게 되면 국가 정당성은 높아지고, 이를 통해 국가는 교육 현장을 간단히 지배할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 객관식 시험을 보면서 교육 현장은 자연스럽게 정권 밑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잃고 말았다. 특별히 1961년 군사정권은 어떤 형태의 자율적인 시험도 허용하지 않았다. 군사정권은 국가가 강력히 통제하는 사지선다형 시험을 치르도록하고, 그 시험에 의해 개인의 능력을 판정하는 사회야말로 객관적이고, 공정하다는 것을 국민들이 믿도록 했다.
객관식 시험에는 누구도 개입하기 어려운 불변의 정답이 있기 때문에 객관성 또는 공정성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신화의이면에는 다양한 능력에 대한 진정한 평가, 비판적이고 창조적인 생각 따위는묻어버려도 좋다는 정치적 선택이 들어 있다. 이를 통해 우리 국민들은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것은 믿지 않아도 시험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환상에 사로잡혔으며, 한 걸음 더 나아가 객관식 시험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고 굳게 믿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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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의 로마서 강해
253쪽

 나는 종교혁명을 원한다. 나의 언사에는 일체 금기가 없다. 종교문제는 근원적으로 금기의 대상이 아니다. 지금 우리사회의 진보를 가장 크게 가로막고 있는 것이 바로 기독교세력이다. 올해부터 통계숫자상으로 기독교인구가불교인구를 넘어섰다는데, 종교인구는 전체적으로 줄고 있지만 기독교인구의 비례는 늘어난 것이다.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그만큼 시대흐름을 선취하지 못하는 복합적인 원인으로 불교의 위축이 심한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가제아무리 우리사회의 권력상층부를 장악하고 있다 해도 오늘의 타락상은 결국 교계 자체를 소돔과 고모라로 휘몰아가고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의 최초의 기독교모임은 1779년 겨울 천진암天眞庵 주어사走魚寺에서 열린 세미나였다.

이 세미나에 참여한 사람은 이벽(25세), 정약용(17세), 정약종(19세), 정야전(21세), 이승훈(23세), 이총억(14세), 권철신(44세) 등 주로 10대와 20대의젊은이들이었다. 이들은 기독교라는 신사조를 알기 위해 일을 동안 숙식을 같이하면서 『천주실의』 등 관련서적을 읽었는데, 주자의 책과 장재張載,
1020~1077(북송의 대사상가로서 주자의 선하)의 『서명西銘』 등을 같이 읽었다.
이들은 모두 성호星湖 이익李漢, 1681∼1763의 제자들이었다. 성호는 판토하Diego de Pantoja, 1571~1618(스페인 출신의 중국에서 선교활동한 제수이트, 북경에서마테오 리치를 보좌함) 신부의 선교책자인 『칠극七克』을 읽고 극기복례克己復禮의 공정功에 도움이 크다고 생각하였다. 남인의 진취적 사상가였던 그는낡아빠진 유교의 관념 속에만 머물러있을 것이 아니라, 유교적 이상을 달성하는 방편으로 신사조들은 무엇이든지 받아들여도 좋다는 개방적 태도를 견지했던 것이다.

그 후 이 세미나에 참석하였던 이승훈李承薰, 1756~1801이 아버지 서장관이동욱李東都을 따라 북경에 갔다가 프랑스 신부 그라몽Jean de Grammont에게서 영세를 받고 베드로(반석)라는 세례명을 가지고 귀국하여, 서울 수표교부근에 있던 이벽李藥, 1754~1786의 집에서 이벽에게 세례를 줌으로써 조선땅에 최초의 신앙공동체를 이루었다. 이 1784년의 사건을 우리역사에서 조선교회의 창설로 본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조선교회의 창설이 외래 선교사에 의한 외인성外因性의 exogenous 사건이 아니라, 조선의 유학자들이 자신의 내재적 모순을 통하여 스스로 개척해나간 내인성內因性의 endogenous 사건이라는 것이다. 조선의 기독교는 어디까지나 갈릴리 지평의 예수의 소유나,
부활 지평의 바울의 소유가 아니다. 조선의 기독교는 오로지 조선인의 조선역사의 내재적 종교활동일 뿐이다.

내가 이 책을 쓰는 이유는 기독교를 이해시키기 위한 것이다. 대부분의 기도교인들이 기독교를 "이해 하려 들지 않는다. 그냥 믿기만 하려하고, 타인에게 믿음을 강요하는 에반젤리즘을 기준으로 해서 자신의 신앙의 품표를 살으려고 한다. 기독교를 신앙하는 사람은 기독교를 이해하지 않으려는 경향이있다. 이해하게 되면 신앙심이 줄어든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신앙과 이해는 별개의 문제이다. 아무리 열렬한 신앙을 고집해도이해는 신앙을 위해서도 필히 수반되는 과제상황이다. 우리가 살고있는 21세기는, 이미 불트만이 비신화화를 말할 필요도 없이, 역사, 환경, 의식, 일상적삶, 그 모두가 비신화화 되었다. 다시 말해서 까발겨질대로 까발겨진 세기라는 것이다. 이 새로운 세기 속에 기독교는 새로운 신화를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새로운 신화는 반드시 "이해"를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해란 무전제적인 토론을 의미하는 것이다. 기독교인이 나와 토론하는것을 거부한다면 그들은 점점 독단의 굴레 속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들이꾸며가는 사회는 KKK나 트럼프류의 독단과 광포를 지향해갈 수밖에 없다.
한국기독교는 기껏해야 200년밖에 안된다. 교회는 사람이 가지 않으면 문을닫아야 한다. 장사가 안되면 그만이다. 한국의 기독교가 과연 이 모습대로 앞
‘으로 1세기나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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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의 로마서 강해
45쪽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서문학의 주제를 역사라고 생각했지만, 그들이 생각한 역사라는 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된 사건들을 기술하는 크로노스의 역사가 아니다. 역사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윤리적 요구를 드러내기 위한 하나님의 기획의 실현의 과정일 뿐이다. 그리스인들은 역사의 중심에 정치를 두었다. 그리스인들은 역사를 정치가들을 위한 교육의 수단으로 생각했다. 그리스인들에게 역사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과거에 있었다. 과거라는 시간 속으로 객관화되어 있는 사건들 속에 함장되어있는 과학적 법칙 같은 것을 현재의 치자들에게 던지는 교훈으로 그려내려고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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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듣는 연구방법론
16쪽

세상 속에 존재하는 자료는 편의상 1차와 2차 자료로 나뉘는데,
1차 자료(primary or generic data)는 뭐라 할까? 제시된 연구문제 해겨을 위해 연구자가 모종의 과학적 사고과정을 거쳐 자체 생산한 다당성(validity)이 인정된다고 보는 순수한 자료를 말하지. 설문조사나 면담 등 일련의 과학적 절차와 과정(scientific process)을 거쳐 생사된 자료는 일단 막 생산된 따끈따끈한 고급 자료라고 봐야겠지 그런 자료들은 해당 연구문제가 처한 독특한 상황과 맥락 속에서 생산된 것들이라서 1차 자료라고 말하곤 하지. 연구자가 생산해야 하는 자료는 바로 이런 자료를 말하는 거야. 반대로, 2차 자료(second- ary data)는 이를테면 다양한 통계자료, 날씨와 온도 등과 같이 기계적으로 관측된 자료, 작품해설과 같은 전문가의 견해나 철학적 기반 등과 같이 지극히 단편적인 자료를 말하지. 이러한 2차 자료는구체적으로 연구문제 해결에 직접적으로 관여되기 보다는 문제 해결에 필요한 상황과 맥락과 무관하게 인위적으로 가공된 보조 자료들이라고 하지. 이러한 자료는 해당 연구문제가 놓여 있는 구이상황과 맥락과 별도로 존재하는 것들이라서 직접적으로라서 직접적으로 문제해결에 도움을 주지는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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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듣는 연구방법론
14쪽

어느 순간부터인가 문득 교수의 강의내용이 흥미롭다는 생각으했다. "연구는 영어로 research라고 하는데, re와 search가 합쳐진합성어란 말이야. 문명에 득이 되는 전혀 새로운 것을 발명하거나,
발견하는 단순한 활동이 아니라, 세상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현상의 본질을 논리적으로 해석 및 재해석하는 행위가 곧 연구야, 그래서 다분히 주관성과 예술성에 의존해서 오브제를 독창적으로 창조하는 일을 하는 디자이너의 사고와는 전혀 다른 사고를 요구하지. 왜냐하면, 연구는 무엇을 단순히 창작하는 활동이 아니란 말이지. 어떤 형태로 표출되어 인식되든 간에, 세상 속에 이미 존재하는현상의 본질 즉 왜 그런가를 논리적이며 객관적으로 해석하는 일이란 말이야. 그래서 re + search란 단어가 나오게 된 거야. 자네 이거 아나? 연구에서 객관성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사실적인 자료(data)나 정보(information)에 의존해서 논리를 펴 나갈 때 우리는 이를 객관적이라고 말하지. 알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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