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바퀴벌레
이상문 지음 / 하움출판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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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렘과 폭소와 따뜻함까지 다 있는 로맨스, 액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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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바퀴벌레
이상문 지음 / 하움출판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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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바퀴벌레'

이 소설의 제목을 보았을 때, 책에 대한 소개글이 궁금했다.

표면적인 스토리는 바퀴벌레로 환생한 죽은 애인과 사랑을 이어간다는 것이었다.

이 부분에서 대부분이 그랬을테지만 망측하고 꺼림칙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소설을 선택한 것은 그 뒤에 나오는 '결벽증 남자'가 애인인 바퀴벌레와 지내면서 강박증에서 벗어나고 인생을 배운다는 설명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소개에 쓰여진 스토리라인이 전부가 아니었다.




소설의 시작은 남녀 주인공 현수와 은서가 동거하는 아파트에서 둘의 자연스러운 사랑싸움을 보여준다.

3년 열애를 마치고 결혼 준비를 앞둔 둘의 모습이 소소하게 그려진다. 뒤이어 둘의 통통 튀는 첫 만남과 현수의 직장 풍경들이 그려질 때는 이것은 로맨틱코미디이구나 확신하게 되었다.




저자가 다수의 영화, 드라마에 참여한 영화인이여서 그런지 우리나라의 수많은 코믹한 히트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은서의 교통사고로 인하여 은서가 저승사자의 결제 하에 현수네 집에 바퀴벌레로 들어가서 사는 23일 동안,

재미의 차원은 엉뚱, 경악, 유쾌의 새로운 차원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마지막 미션을 가지고 다시 내려왔을 때는 로맨틱이란 말이 없어지고 액션, 무협이 등장하여 나의 소녀 감성은 당황하기도 했다.

그래도 이렇게 소설을 보면서 배꼽잡고 웃어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내 사랑, 바퀴벌레'안 에는 휴머니즘도 있었다. 교통사고 당시 은서 아버지의 사랑, 먼저 간 은서의 현수에 대한 사랑, 그리고 은서 바퀴벌레에게 사랑과 마음의 빚을 갚는 현수까지.

은서는 바퀴벌레일 때도 있지만 가끔 사람의 모습으로 있고 요리를 하기도 한다. 사람의 모습일 때는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한다. 사람의 모습이 될 수 있을 줄은 미처 생각 못했었는데 분량이 간간히 나와주어서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바퀴벌레를 격상시키는 스토리가 아니라 은서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바퀴벌레를 보는 시각에 혼란이 올까봐 내심 걱정했는데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내가 내린 결론은 이 소설 속의 바퀴벌레들만 귀엽다는 것이다.

가족의 사랑, 연인의 사랑, 동료간의 사랑으로 오랜만에 가슴 따뜻해지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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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산의 노래 - 가슴에 머문 바람
유광우 지음 / 하움출판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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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전, 북한 사람들의 삶이 어떠했는지 그려지고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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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산의 노래 - 가슴에 머문 바람
유광우 지음 / 하움출판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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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국토이지만 갈 수 없는 금단의 북녘땅에

지난 약 20년 전에 다녀온 얘기를

이제 차분히 알려 드리고자 합니다.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고, 더 늦기 전에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유광우 에세이 - '원산의 노래, 가슴에 머문 바람', 시작 전 드리는 말씀 中에서




약 20년 전에는 북한과 소통을 해본다고 북한땅이 조금씩 허가 하에 열리게 되던 즈음인 듯하다.

그 시기에 케도(KEDO)사업을 위해, 북한에 들어가서 환경조사를 했던 저자가 눈과 가슴에 담은 이야기를 에세이로 공개했다.



케도(KEDO)사업은 국제사회가 지켜보고 있는 경수로 원자력 발전소 건설 사업이었고, 미국이 주도적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기에 저자는 연안 환경조사 선박을 타고 강원도 고성 항구를 출발해 함경남도 신포항에 다다랐다.

해군장교 출신인 저자는 바다 위의 북한 경비정이 일차 검문을 하고 북한군을 보았을 때 자연히 긴장하게 되었고, 그 이후로 삼팔선 이북의 별나고 가난한 동족 국가를 보게 된다.

회의실에 들어가니 남측 방문단의 시야 앞에 김일성, 김정일 사진 액자가 보이게 자리를 배치하여 시선을 강탈하는 바람에 회의에 집중이 안되기도 했다. 북한에서 남한 사람들을 안내하거나 담당, 대화하는 사람들은 모든 호칭을 선생님으로 통일해달라고 요구했고, 북한선생들은 남한을 남쪽이라고 통일해서 불렀다고 한다.

그래도 국제적인 협약에 의한 방문객이기에 숙소도 괜찮은 곳으로 제공하고 북한의 고급 음식점인 옥류관이나 상점 등을 원하는 대로 이용할 수 있게 배려했다. 나중에는 북한 우체국에서 남한으로 엽서도 보낼 수 있다고 하여 내용은 검열하니 자세하게 쓰지는 못했지만 북한에 있는 동안 남한으로 엽서도 보냈다고 한다.

저자의 눈에 비친 북한 - 1. 가난


저자는 경수로 건설현장(반경 2km)을 넘어선 경수로 반경 10km에 대한 환경 조사도 맡았다. 북한의 생태 환경을 조사하려 민가에도 접근할 기회가 있다보니 북한이 최대한 주민들의 모습을 안보이려 해도 매의 눈으로 포착할 수 있었다. 한 할머니와 한 청년이 쌀 한 줌과 나무 한 지게를 물물교환 하는 것도 목격하고, 아직도 추운 북한의 4월에 네댓 살 된 맨발의 아이가 담벼락에서 볕을 쬐는 모습도 보았다.

나라에 원유와 전기가 부족하여 해안가 5층짜리 아파트에서 난방을 나무로 해서 하얀 아파트 창문마다 검은 그을음이 낀 모습, 어선을 띄울 기름이 없어서 고기잡이를 대량으로 하지 않아 연안 조사 선박이 저인망 그물을 끌자 물고기가 너무 많이 잡혀 배가 기우뚱해서 그물을 끊어야 했던 사연.

그렇게 물고기 천지인데 물고기 생태 조사는 하지 않아도 엄청나게 좋은 자연 환경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경수로 원자로에서 바다로 배출되는 배출수에 미량이지만 방사선 관련 물질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해양에 미치는 영향을 추적 조사하기 위해 연안의 서식 어종도 파악할 겸 물고기를 잡았다고 한다.

북한은 전기가 들어오는 지역만 들어오고 밤에는 암흑과도 같기 때문에 저자에게 접근이 허용된 북한 군인이 손전등 용 배터리를 구해가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어촌 마을에서 고기잡이도 마을마다 할당량이 있기 때문에 할당량을 못채우면 밤에 놀이용 보트같은 나무배를 세 명이서 타고 가운데 사람은 횃불을 들고 있고 양쪽에 있는 사람이 줄낚시를 하며 물고기를 낚는 모습을 보았다고 했다.

신포 부근에서 가장 큰 도시인 원산시 인근 기차역에서는 한 무리의 거지들이 도로에 앉아있는 것을 보기도 했다.

북쪽에서는 라면이 매우 귀하고 비싸서 라면 한 개가 북한 선생들 월급의 절반 정도의 가격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20년이나 지났으니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기는 하다. 20여년 전이 북한이 개성공단(2004년 10월 설립) 만들기도 전이거나 준비단계이다보니 더 외부의 물이 덜 든 날 것 그대로의 상태가 아니었나 싶다.

남한측 방문객과 북한 주민들의 접촉을 차단하고 북한 주민들의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경수로 건설 현장의 단체 식당에서는 식사시간을 나누고 건설 현장에 투입된 북한 노동자들이 식사할 때는 검은 커튼을 내려 안이 안보이게 했다고 한다. 케도 공사 인력의 일부를 북한 노동자로 쓰고 임금을 달라는 북한 측의 요청에 의해 북한 노동자들을 버스에 태워 데려오고 일을 하게 한 후 돌려보내는데 임금의 10% 정도만 개인에게 주고 대부분 당에서 가져간다고 했다.

저자의 눈에 비친 북한 - 2. 수령 우상체제와 아까운 인력들

북한에는 수없이 많은 김일성 또는 김정일 공원이 있다고 한다. 저자가 일행들과 함께 김일성 공원에 들어갈 기회가 있었는데 한 분이 소변이 급한데 화장실이 보이지 않아 잠깐 실례를 했다고 한다. 망원경으로 일행을 감시하던 북한 초소에서 신고했는지 공원을 나서는데 출입문에서 불러 세우더니 강하게 항의했다고 한다. 그래서 미안하지만 이 넓은 지역에 화장실 하나 없는 것은 문제라고 했더니 장군님 공원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고 한다.

평양 김일성 종합대학 교수들도 해양 환경조사에 참여하기로 해서 대화할 기회가 있었는데 해양 환경조사용 실험기구는 하나도 없지만 이론만큼은 평양 교수들이 더 앞설 만큼 많이 알고 있었다고 한다. 우수한 연구자들이 많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는데 역량을 펼칠 조건이 그때는 많이 부족하여 독자인 내가 봐도 아쉽다.

북한에서 만난 북한선생들은 말솜씨가 좋았다고 한다. 농담도 야한 얘기들도 모두 잘 정화하여 재치있게 얘기하는데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잘 유도했다고 한다. 북한 사람 특유의 재능인 듯 하다고 했다.

저자의 눈에 비친 북한 - 3. 개발되지 않은 천연의 자연, 바다와 밤하늘


'(신포 근처의 식당, 옥류관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식당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이내 식당 불은 꺼지고 사방이 깜깜해졌다. 식당을 나서고 이제 모든 순서가 끝났다고 판단했는데, 그러나 다음 무대를 위하여 식당 불을 모두 꺼 버린 것이었다. 우리 머리 위에는 자연이 인간에게 펼쳐주는 화려한 별들의 잔치가 있었다.'

(p.96)

'수많은 별들을 이어주는 흐르는 물과 같은 신비로운 은하수는 옥류관 식당의 소등과 동시에 너무나 황홀하여 우리를 실신하게 만들어 주었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별들이 와르르 쏟아졌다. 소름 끼치는 장관이었다.' (p.97)

'인공적인 불빛은 물론이고 달빛마저도 없어야 하며 또한 맑은 하늘의 조건을 갖추어야 비로소 장대한 은하수를 볼 수 있다.' (p.98)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니 긴장이 풀리고 좀 피곤했지만 바닷가에 가 보고 싶어서 동료들과 함께 바닷가로 갔다.

부서지는 파도에 빛이 현란하게 춤추고 있었다. 인광(Phosphorescence)이었다. 인광이라는 용어는 원소 '인(phosphorus)'의 발광 성질로부터 나온 말이다. (중략)

불빛이 없는 어두운 밤에 무덤이나 고목, 오래된 집 등에서 나타난다는 '도깨비불'은 사람의 뼈나 목재에 포함되어 있던 인이 공기와 접촉하면서 자연 발화되어 발생하는 빛이다. 우리 한국에서는 바닷가 주변의 인공적인 불빛이 너무 강렬하고 이러한 인광을 보기 힘들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 북한 해변은 매우 아름답게, 어릴 적 고향에서 보았던 바닷가의 야광을 마음껏 뽐내고 있었다. 실로 장관이라고 해야 할 것 같았다. 한참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갑자기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너무 아름답다는 생각과 동시에 왜 우리는 이런 강산을 두고 한쪽에서는 볼 수가 없을까 하는 생각들이 교차했다.' (p.53)

에세이 '원산의 노래 - 가슴에 머문 바람'을 통해 20여년 전 북한의 안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에세이를 읽으며 그 당시의 상황과 느낌 그리고 풍경이 그려지는 듯 했다. 고무줄 넥타이를 고쳐매던 도선사와의 대화와 인사.

그리고 항상 대화를 뒤에서 지켜보는 보위부 직원. 정확한 체류 기간은 알 수 없으나 충분히 그 때의 느낌과 냄새를 맡은 것만 같다.

이제 북녘에 있고 815 해방까지 공유했으나 다른 나라, 이상한 나라, 북한이 열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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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딸들 오! 혜원 규원 - 요덕수용소 어둠속으로 잠겨버린, 영화 [출국] 원작
오길남 지음 / 세이지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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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딸들 오!혜원 규원'은 가난을 딛고 서울대생이 되어 독일유학에 오른 1942년생 오길남 박사가 공산주의 사상으로 반한단체에 가입하고 월북을 한 뒤 탈출하기까지, 그리고 그 이후의 일들을 쓴 자전적 에세이이다.

저자 소개 부분은 오길남 박사의 인생 여정을 잘 정리해주고 있다.

저자 오길남은 혜원과 규원의 아버지다. 1942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부산고와 서울대 독문과를 졸업, 1970년 독일 튀빙겐으로 유학하여 1985년에는 브레멘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유학시 재독반한단체인 '민건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던 중 1980년에 독일에 정치망명을 했고, 1985년 12월 가족과 함께 북한으로 들어가 뜻하지 않게 '한민전'의 대남흑색방송요원으로 활동했다.

1986년 11월 재독 유학생 둘을 더 포섭하여 입북시키라는 지령을 받고 유럽으로 나오던 중 덴마크 코펜하겐 공항을 탈출했다. 그는 몇 년간 독일에서 가족의 석방을 위해 애쓰다가 실패, 서울로 돌아왔다.

남겨진 아내와 두 딸의 행적은 함경남도 요덕수용소에서 보았다는 목격자에 의해 확인된 바 있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행방도 소식도 묘연하다.

아내 신숙자는 오길남과 같은 해에 태어났고, 혜원은 1976년, 규원은 1978년생이다.

저자 소개 - 잃어버린 딸들 오!혜원 규원



오길남 박사의 44살의 북한행은 그와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그는 탈출에 성공했으나, 남은 가족을 빼내오지는 못했다. 이 책의 목차만 봐도 그의 스토리를 한 눈에 알 수 있다.

| 목차

코펜하겐 공항으로 탈출하다

죄지은 자가 자유를 되찾다

공산주의 사상으로 기울어가다

아내를 만나다

유신반대 운동에 빠져들다

두 딸이 태어나다

아이들이 바이올린을 배우다

독일로 정치 망명하다

브레멘에서 박사학위를 받다

어둠의 공화국으로 초대받다

윤이상으로부터 편지를 받다

막다른 골목에 이르다

동베를린 북한대사관에 머물다

모스크바를 거쳐 평양에 들어가다

산장에 남겨지다

북한 속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다

환멸이 시작되다

초대소를 떠나 평양으로 가다

대남방송 요원이 되다

독일에서의 자유를 몰래 그리다

밀봉교육을 받다

아내에게 뺨을 맞다

평양의 마지막 밤을 보내다

귀로에 오르다

동베를린에서 열병을 앓다

탈출 기회를 탐색하다

탈출에 성공하다

친구들을 찾아가다

아내에게 편지를 쓰다

북에 사과문을 쓰다

북한 공작원에 전화를 걸다

김종한에게 욕을 듣다

바닥으로 내려가다

독신자 숙소에 살다

송두율에 화가 치밀다

윤이상에게 질책을 듣다

숲을 배회하다

윤이상이 아내의 편지를 가져오다

윤이상이 아내의 두 번째 편지를 가져오다

악령의 집을 빠져 나오다

절망의 끝에 서다

조국으로 돌아오다

탄원문


오길남 박사는 85년 12월, 북한 공작원의 권유로 입북했다가 86년 11월, 탈출했으나 서독에 머물며 사회보장제도의 최소지원금으로 생활하며 남겨진 아내와 두 딸의 귀환을 위해 5년 가량 노력하다가 1992년 독일주재 한국대사관에 자수하여 서울로 돌아왔다.

오길남 박사의 7년은 그의 인생, 가족의 인생만 바꿔 놓은 것이 아니라 북한의 지식인 포섭과 대남선전에의 이용, 북한에서의 사상 교육 및 통제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오길남 박사의 아내 신숙자 여사와 두 딸이 하늘이거나 땅이거나 어디에 있던 안녕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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