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내가 모든 인류라면, 그들은 내가 없는 그들 자신일까? 그리고 그는 소리쳐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 중 누구도 그를 구할 수 없었기에."
외로움의 공부, 체스와프 미워시의 시
뜻밖의 책이다. 전혀 기대를 하지 않고 봤는데 감동이 있어서 끝까지 정독했다.
젊은 여성 과학자의 회고록이다. 그녀가 풀어놓은 이 책에서 많은 것에 공감했고 특히 교육에 관련된 그녀의 의견에 많이 공감이 되었다.
교육 시스템에서 성공하지 못한다고 인생이 실패하지는 않는다라는 말이 특히 공감이 되었다. 수학과 과학을 가르치는 전통적인 교육 시스템은 시키는 대로 정확하게 수행하고, 멈추거나 지나치게 생각하지 않으며, 새로운 행동과 아이디어를 제안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잘했다고 격려한다고 한다. 이 부분은 비단 수학, 과학뿐만이 아니라 제도권 안에서의 교육 시스템이라면 다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특히, 예술 분야의 평가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고 본다. 그래서, 진정한 예술가는 제도권 교육에서 만들어질까? 라는 의구심이 든다. 예술 교육의 다양한 목적과 목표가 있지만 진짜 예술가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스킬과 기초 소양은 배워서 기존의 것을 답습하는 것이 목표라면 제도권 교육이 효율적이다. 하지만, 새로운 것과 남과 다른 아이디어를 싹 틔우고 완성시키는 것은 교육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생각된다. 특히, 여러 명이 수업을 받는다고 표현하는 그 공간에서는 제약이 당연히 많다. 모든 학생이 여유롭게 질문을 하거나 일대일 피드백은 시간과 공간, 자원의 효율성 때문에 충분하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그래서, 우리의 위대한 위인들은 학교에서 엉뚱함과 기발함을 표현하면 산만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학교 부적응자로 낙인 찍혔다. 에디슨도 학교에서는 ADHD라고 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얼핏 있다. 천재는 자기가 집중하는 분야에서는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하지만 다른 부분에서는 많이 허술하고 사회성이 약한 면도 있는 것 같다. 0.01%의 천재를 교육하기에는 제도권 교육은 부적합하다. 제도권 교육은 말 그대로 제도권 안에 들어있는 지식과 기준을 충족시키는 사람들을 만들어내기에 적합하다. 그러니, 혹시나 남들이 안 하는 새롭고 엉뚱한 질문을 한다고 하면 잘 살펴봐야 한다. 사회성과는 별개로 그 아이의 특별함을 존중해 주고 발전시키는 교육 환경을 찾아 나서야 할 것이다.
<질문하기에 대한 생각>
보통의 사람들은 질문하기를 두려워하는데 그 이유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질문을 했을 때 질문을 받는 권위자나 교수, 답변자들의 전문성, 지위에 따라 질문에 대한 답변이 오류를 범했을 때 답변자가 질문자를 대하는 태도에서 상처를 받기에 다음부터는 질문하기를 꺼려 한다고 한다. 즉, 수치심과 굴욕감을 준다고 한다. 이 말은 맞는 것 같다. 좋은 질문도 분명 있지만, 질문자의 상태에 따라 질문의 질이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교육을 받는 학생은 그 질문의 질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냥 단지 궁금하고 호기심이 생기기 때문에 질문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질문에 대한 냉정하고 혹독한 평가를 받는다고 생각하면 질문을 한 학생은 당장에 위축감이 들고 새로운 것에 대한 앎의 확장이 이루어지기가 힘든 내면 상태를 만들게 된다. 그래서, 누군가가 학습에 질문을 한다면 주의 깊게 들어주고 질문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것에 대해 신중해야 함을 느낀다.
이 책에서는, 과학자이지만 교육에 관한 자신의 철학도 많이 서술되어 있어 많은 공감이 되었다.
세상이 더 나아지려면 학생들이 질문을 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학생인 만큼, 우리 모두가 질문을 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나는 이런 저자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그리고, 이 저자의 수업 방식이 굉장히 좋다고 생각이 들었다. 자신만의 탐구 주제를 찾기 위해, 질문하기, 연구하기, 종합하기, 의견 내기의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고 하는데 모든 수업에서 학생의 능동적인 참여는 학생이 원하는 주제를 찾고 원하는 목표를 설정할 때 교육의 목표는 이뤄진다고 본다.
그래서, 일률적인 학습 목표에서 한 가지의 평가 방법은 요즘 같은 정보화 시대, AI시대에서는 구시대의 유물이라 생각한다. 한가지의 정보를 알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인간의 노력보다 더한 똑똑한 기계를 활용하면 된다. 그것보다 필요한 것은 어떻게 조합하고 내가 필요한 정보를 찾아서 활용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은 다수의 학습자를 수용해야 하고 효율성을 따지는 상황과 환경이다. 왜냐하면, 그런 이상적인 방법은 실행하기가 굉장히 힘들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도 '메타 인지'를 거론하는데, 학습의 기본은 정말 자신이 얼마큼 알고 있고 어떤 것을 알고 싶은가? 내가 어떤 것을 알기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하는가? 등 자기 인식이 중요함을 다시 한번 느낀다.
제도권 교육은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 누군가의 출제에 의해 문제가 만들어지고 그 한가지 정답을 맞혀야 하니까. 결론은 권위자, 전문가, 출제자에 준하는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고 학습해야 한다. 그것이 정해진 도출된, 정답이기 때문에. 그것이 시험에 나오기 때문에. 그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학습한 내용에 대한 아웃풋이 온전하게 표현되어야 하니까.
초반부 1부에는 저자의 일생과 삶, 어린 시절의 성적 학대, 부모님의 영향, 가족 관계가 나오는데 그로 비롯된 긍정적인 영향과 부정적인 영향 모두를 다 조금씩 보여준다. 그 부정적인 상황, 모든 것을 극복하고 자기 삶을 개척하는 데 상담치료가 도움이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자기 표현, 정직함에서 나오는 자기 트라우마 극복 사례인 것 같아 아주 유심히 봤다. 그리고, 한 번의 결혼, 이혼, 2년간 아들과 떨어져 산 이야기, 싱글맘으로 학업을 이어간 이야기, 우울증, 상담치료, 재혼 과정, 자녀 이야기도 나온다. 삶의 비교적 밑바닥까지 드러내는 그녀의 용기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가 발전하고 성공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자신의 상태를 인정하고 극복하고. 그녀가 말하는 자기 앞에 놓인 합리적인 위기 앞에서 합리적인 위기 대처 방식을 잘 실천하며 자신의 삶을 잘 개척한 것 같다.
소행성을 연구하는 과학자이지만 자기의 아픔을 극복한 힘으로 인간 이해의 폭을 넓히고, 리더십을 가지고 프로젝트를 성사시키는 것을 볼 때 자신이 경험한 인사이트와 극복의 힘을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도 적절히 잘 대입하여 잘 살아내고 있는 것 같다.
마지막 부분에, 자신의 난소암 투병도 담담하게 써 내려가는 데 전혀 호들갑스럽지 않고, 자신의 상처도 객관적으로,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감정도 솔직히 말하는 부분이 굉장히 인상 깊다.
후반부에 저자가 퀘이커 교도라고 하는데, 나는 그런 종교가 뭔지 몰라서 찾아봤는데 일반적인 기독교는 아닌 것 같고 침묵의 종교 의식을 행하고 칼뱅주의와 청교도 분파와 완전히 대척점인 종교인 듯하다. 퀘이커는 남녀평등을 굉장히 중요시하여 교육을 중시하고 가격 차별 정책도 퀘이커가 주장했다고 한다. 저자의 신념이 반영된 종교를 믿는 것 같다.
여성이라고 편견을 갖거나 차별하기 쉬운 시대, 혹은 분야에서의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이 책에서는 특히, 과학 분야에서의 여성 진입과 성공이 얼마나 힘든지도 보여준다.
한 사람의 회고록을 읽으며 즉, 삶을 말하며 다 옳다고 말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그녀가 어떤 업적을 이뤄냈건, 어떤 성장 배경을 가졌건, 종교를 믿건, 그녀가 귀결한 삶이 아름답다고 생각되었다. 주저하지 않고 그녀가 생각한 대로 그녀 자신이 주체가 되어 삶을 이끌어 가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말미에 그녀가 여지껏 최선을 다해서 살았기에 말기 난소암을 치료하면서도 지금 이 순간에 죽어도 후회가 없다는 말에 굉장히 부러웠고, 놀라웠다.
후회 없는 삶을 살기가 어찌 쉬운 일인가?!
과학자 이야기이지만, 인생 전반에 걸쳐 포기하지 않고 상처를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간 삶을 산 스토리, 삶의 태도 및 배울 점이 많은 한 여성의 삶을 들여다 보고 싶으면 이 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