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읽게 되면 계속 쭉 읽을 수 밖에 없는 소설이다.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그것을 파헤치는 경찰관과 사건의 범인을 알고 옛 사건에 관여한자와 연루된자로서 같은 사건이지만 입장이 다른 두 사람의 관계와 범인을 찾아내고자 하는 서로 다른 입장에서 범인을 쫒는 자,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자신의 친부를 찾기 위해 정현의 수사를 도와 정현을 통제하고 조정하는 범죄자의 딸 세현.
누군가에게 메스는 살인도구이자 해부하는 용도로. 끔찍하다. 책 중간에 세현이 본과 1학년 때 해부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장면도 섬찟하다. 의학을 배우는 목적으로서의 해부와 살인피해자의 시체를 처리하기 위해 메스질하는 사람이 동일인물일 수 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 중에서도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소름 끼친다.
흔한 경우는 아니겠지만, 마치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처럼. 인간이 속죄하지 않고 죄를 안고 살아가면 자기 본래의 감정도 묻히게 되고 무시하고 더 괴물이 되지 않을까? 다른 사람의 감정을 헤아리지 못한다는 것은 참 끔찍하다.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소시오패스에게 나타나는 일련이 특징들. 살아있는 고양이를 죽이고 해부하고 날아다니는 참새의 다리를 부러뜨리거나. 상상 외의 것들을 실행하는 서세현의 모습에서 섬찟함이 느껴진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세현이가 부검의로서 자신의 적성에는 맞는 것 같지만, 말을 수시로 바꾸는 그녀의 멘트에서 감정 널뛰기하는 모습을 느꼈으며 과연 그런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자신의 친부를 소환하게 되더라도 영 마뜩지 않았다.
소설 내용 자체는 어디서 들은 이야기 같기도 하다. 아빠는 살인자이고 엄마는 아빠에게 죽임을 당하고 이런 내용은 좀 많이 봤고 플롯이 익숙해 자꾸 뒤페이지가 궁금하게 만드는 이야기었다. 예전 이영학 사건이 떠오르기도 하고.
아이가 범죄를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 다시 그 자리를 계속 다른 사람으로 치환되는 것이 공포스러웠다.
범죄 피해자의 시선으로 보면 너무나 안타까운 장면도 있고 실제 유사한 사건도 떠올라서 공포스럽고 괴기스러웠다.
삼인칭 관찰자 시점이지만, 각자의 캐릭터가 두드러지고 전체 줄거리가 흘러가기 때문에 쉽게 읽힌다.
개연성과 현실성이 떨어지는 점은 세현이가 책을 좋아한다는 묘사와 배우는 재미를 느껴 의대에 진학하게 되어 의사가 되는 장면이다. 오두막에서 거의 고립 상태로 지냈는데 의대를 갈 수있는 공부가 일어날리 만무하고 아빠와 탑차가 낭떠러지로 떨어지더라도 꿋꿋히 살아가는 모습이 있다. 똑똑한 사람은 변변한 교육 한번 받지 못하고도 의사가 될 수 있는 점이 신기했다. 형사 정현의 아빠와 이 사건의 연관성이 다소 느슨하다. 설명이 부족하다. 내가 빨리 읽어서 못 발견한 것일 수도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느낀 점,
1. 아는 사람이 진실을 더 금방 깨닫고 상대의 피해를 더 간파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 세현이는 메스로 시체를 해부했고 훼손했다. 그리고, 의사가 되어 아주 능력있는 부검의가 되었다. 잘 안다는 것이 내가 경험한 것일수록 더 분명해진다.
2. 모든 직업에서 의미없는 행동은 없다. 경찰들이 범인을 잡기 위해 cctv를 48시간 봐야 하는 장면이 있다. 그것이 아주 힘들고 지루할 수도 있고 전혀 도움이 안 되는 행위일 수 있지만, 하나의 증거라도 찾기 위해서는 그 48시간의 기록을 봐야 한다. 경찰은 범인을 잡는 것이 역할이니까.
나도 간혹 내가 하는 일이 사소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마음을 다잡는다. 이것도 다 내가 해야 할 일이고 내가 처리해야 되는 일이라고 자기 안위할 때가 있다.
3. 살인자의 자녀로 살아간다는 것의 죄책감, 압박감, 수치심, 무게감. 심리적인 극복이 될까? 마치 나치의 선봉에서 유태인 학살에 가담했던 선조를 둔 후손들의 심정이지 않을까? 지우고 싶은 과거.
가족 내에서 어린 자녀에게 가스라이팅하고 부모에게 혹은 어른들에게 조정당하는 삶.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존을 위해 살아가지만 점점 괴물 아빠와 비슷해져가는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