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는 대로 낭만적인 - 스물여섯, 그림으로 남긴 207일의 세계여행
황찬주 지음 / 흐름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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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타자기가 생각나는 글씨체


유리알과 같은 호기심으로 떠난 세계 여행 7개월 여행 에세이

지은이 : 황찬주

실내 건축을 전공한 제일기획의 7년 차 리테일마케터. 퇴근 후엔 글 쓰고 그림 그린다. 중요한 가치는 모든 것의 균형. 삶과 꿈.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대학 시절 다녀온 7개월의 세계여행을 가슴에 품고, 험난한 세상을 헤쳐 나간다.

책이 꽤 두껍다. 총 493쪽 분량의 에세이다. 처음엔 책 표지도 책 안 활자도 타자체라 가독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내용이 많고 세로로 긴 형태의 책이다. 책 지면 모서리 자체에 여백이 적어 읽다가 시선이 책 밖으로 향하는 것이 느껴진다.

차례 : 3개의 파트로 나누어져 있고 18개국 50여 개 도시를 지나온 여행 에세이와 그림.


지은이가 여행한 곳의 지도


지은이가 그린 로마의 그림과 글

이 책은 7개월 동안 아시아, 유럽, 남미 3개 대륙의 18개국 50여 개 도시를 군대에서 알게 된 K와 함께 세계 여행하며 글을 쓰고 플러스펜과 연필로 그림을 그린 것을 엮은 것이다.

다양한 나라를 경험하며 저자가 쓴 생각과 느낌을 읽는 것 자체가 책으로나마 나도 같이 동행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여행기이지만 저자가 생생하게 작품이나 상황을 묘사해 읽는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아직 가 보지 못한 나라의 도시들을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젊었을 때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는 것이 정말 값진 경험이고 앞으로 살 날들에 대한 자양분이 되어서 힘들 때마다 추억을 꺼내보고 자신이 써 놓은 이 책을 읽으면 정말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저자의 결단력과 추진력이 부러웠다. 망설이면서 선뜻하지 못하는 세계 여행을 실행에 옮기고 자신의 언어와 그림으로 기억을 저장해 놓은 것이 대단한 일 같다. 그냥 여행만 다니면 서서히 잊힐 기억들인데 이렇게 책으로 엮어 놓으니 정리도 되고 자신의 경험을 다른 이와 공유할 수 있으니 정말 뜻깊은 일 같다.

나는 많은 나라 중에서도 특히 로마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나의 경험과 오버랩되며 저자가 갔던 곳을 같이 다시 한번 여행하는 느낌으로 읽어 내려갔는데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았다.

특히,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에서 내가 느꼈던 부분과 일치해 신기했다. 그 압도되는 분위기와 왠지 모를 성스러움에 넋을 잃고 봤던 기억이 나도 오랫동안 남았기 때문이다. 세상의 관점으로 봐도 굉장히 슬프고 비극적인 일이다. 아들을 잃은 슬픔은 어떤 슬픔보다도 더 무겁고 힘든 일일 테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그냥 인간 성모 마리아의 인간 아들 예수의 관점으로 보면 한없이 슬프다. 인간 마리아의 보편적인 슬픔이 느껴졌고 사랑하는 자녀를 먼저 보낸 지극히 평범한 어머니의 모습이 더없이 비극적으로 다가왔다.

또, 콜로세움을 갔던 기억도 새록새록 떠올랐다. 저자가 콜로세움을 그리며 여러 번 사진에 담고 구상하고 스케치하는 과정을 글로 옮기는 것을 읽는 재미도 쏠쏠했다. 역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다르구나. 나는 콜로세움을 보고 상당히 위용 있고 웅장하다는 외관과 내부의 이질적인 느낌 때문에 순간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겉만 봐서는 화려한 로마의 제국을 연상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지만 막상 내부의 실상을 보고 나면 로마의 화려한 시절도 다 과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석조 골조만 남아 있는 그 공간에서 단지 과거의 영광을 찾아내기는 역사의 힘을 빌려야만 할 수 있는 것 같다. 나도 콜로세움에서 찍었던 사진을 기억한다. 그런데, 별 의미 없이 보기만 했던 것 같다. 텅 빈 공간에 군데군데 무너져 버린 콜로세움에서 영광에 찬 과거의 흔적은 온데간데없고 나에게 로마의 살이 붙여지지는 않았다.

저자는 콜로세움을 그리면서 현재의 E를 생각한다. 이 부분에서 나는 마치 소설 같은 연애 스토리를 기대하면서 읽었다.

"좋은 관계를 만드는 일은 마음에 드는 그림을 그리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267쪽

공감한다.

문학의 구성, 음악의 작곡, 그것이 인간관계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것은 물론 내 몫이었다.

그림을 그리는 일과 사람을 만나는 일은 닮아 있었다. -270쪽

-> 음악을 만드는 일과 사람을 만나는 일은 닮았다? 음악을 만드는 것도 나이고, 사람을 만나는 일도 나이기 때문에 다를 수 없다. 나의 일하는 방식과 사람을 대하는 방식, 사람을 만나는 방식을 비슷할 것이다.

역시나 베네치아에서 E와의 짧은 연애 일기도 있었고 베네치아에서 K하고도 각자의 길을 간다.

다른 사람의 여행기이지만, 각 나라의 명소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저자가 재미있게 풀어놔서 읽는 재미가 있었다.


자유로움과 현실의 균형이 필요한 사람.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의 아름다운 균형을 찾는 삶을 지향하는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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