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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에 다가가기 - 우정과 상실 그리고 삶에 관한 이야기
후아 쉬 지음, 정미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11월
평점 :

대만계 미국인 후아 쉬는 <뉴요커>의 전속 작가이며 뉴욕의 예술대학 바드 칼리지에서 문학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1977년 미국 일리노이주 어배너 샘페인에서 태어났다. 현재 뉴욕 브루클린에 거주 중이다.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교를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22년 미국에서 출간된 회고록 《진실에 다가가기》로 2022년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회고록 부문, 2023년 퓰리처상 전기. 회고록 부문에서 최종 수상하였다. 아시아계 미국인 연구, 대중문화와 서브컬처, 민족학 연구에 관심을 두고 있다.

어떤 제스처를 충분히 반복하면 진짜가 되기 마련이다. 주인공 후아는 원래 술, 담배를 하지 않았는데 켄과 기숙사 3층 발코니로 이야기를 나누러 가면서 피우지도 않는 담배를 피우러 갈까?라는 말이 둘의 신호처럼 사용되었다. 그 이후 술을 먹으면 담배를 피우던 켄과 담배를 피우지 않는 후아가 같이 담배를 피우게 되었다. 그리고 후아는 담배가 좋아졌다고 했다. -75쪽

켄과의 대화 내용을 다 기억하고 있어서 쓴 것일까?
관계에서 한 사람이 죽음으로 먼저 갈 때 진실은 산 자가 기억하는 유언 같은 기억.
산 자의 기록은 진실일까?
이 책은 지은이의 회고록이다. 자서전과 회고록은 다른 것이니까 자신의 인생 중 어느 한 부분을 기억하며 쓴 책이다. 이 책에서는 저자의 대학교 생활이 나온다. 저자를 둘러싼 친구들 이야기가 나온다. 한참 젊은 때의 지루하거나 금방 금방 바뀌는 관심사, 음악 취향, 독서 취향, 대학 생활이 그려진다. 주인공이 대만계 미국인인 이민자의 2세로서 선택하는 진로, 경향성에 대해서는 언급된다. 불만 없이 성실하게 자신의 일을 묵묵히 다하며 주류 사회로의 편입하는 사람들의 성격도 그려지고 일본계 미국인인 켄처럼 자신을 그냥 미국인이라고 생각되어 동화된 아시아계 미국인의 모습도 소개된다. 미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아시아계 대학생들의 이야기이며 그들의 우정, 사랑, 상실, 슬픔, 애도의 기록이다.
이 책 말미에 보면 20년 동안 이 책을 썼다고 나온다. 그러니까 이 책의 시점이 버클리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얼마 안 있어 일어난 일 중심으로 쓴 것이기 때문에 20대부터 20년이 지난 40대까지 자신의 기억 속 시절을 담아두고 기록한 것이다. 책 내용이 전지적 작가 시점일 수밖에 없고 자신을 둘러싼 친구 관계를 묘사한 것이라서 철저히 일방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책을 읽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 꼼꼼히 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후반부에 뭔가가 더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과거의 이야기로부터 연결된 현재의 상황과 감정은 나오지 않는다. 후아 신이 대학원 시절에 상담을 받은 시간까지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화자가 경험했던 그 당시의 대학 생활과 자신의 관심사, 친구 관계, 제일 친했던 켄과의 의미 있는 대화, 켄과의 추억들이 아주 자세하게 묘사되어 나온다. 후아 신이 켄과 공유했던 20대 대학생이라면 나누었을 법한 연애(후아 신과 미라의 연애), 음악, 감정, 책, 사상, 가치관, 철학, 문화, 예술, 진로, 미래 그리고 호기심에 경험한 담배, 술, 파티 등 버클리 대학 생활의 면면이 나온다. 서로의 관심사와 감정의 공유로 다른 듯하지만 서로에게 호감을 갖고 발전해 나가는 관계, 서로를 이해하는 부분들이 나온다.
저자가 1977년 생이라 그 시절의 감수성 짙은 음악과 문화가 개인적 경험으로 소개되는데 어렴풋이 상상해 보며 읽었다. 책을 읽으며 후아 신의 친구들이 들었던 음악을 연상하니 그들이 느낀 감정이 더 잘 느껴지는 것 같았다. 젊은 객기와 호기로 누렸던 시간과 자유와 방탕함의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이들이 나누었던 다양한 생각들을 같이 읽어 나갔다. 미국에서는 마리화나, 엑스터시 마약을 하는 게 한때 접한 것으로 마무리가 되는 것인가.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후아 쉬가 대학 4학년 때 한국계 미국인인 조이를 만나고 약에 취했던 이야기가 나온다. 슬픔과 상처의 극복을 한 일기장에 자신의 이야기를 쓰며 공유하는 것까지는 이해가 되었으나 서로 약에 취했다는 지점에서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켄과 함께 담배를 태우러 옥상 발코니에 간 것. 함께 유리창을 깨고 도망친 것. 친구라면 위험한 동조 현상도 있음을 느낀다. 서로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친구 관계.
책을 읽으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 우정을 나눈다는 것은? 누군가와 친밀하게 지내며 자기를 날 것 그대로 나누고, 뭔가를 공유하는 것. 그대로를 보여줘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주는 것.
어떤 친구는 우리를 더 완전하게 만들고 또 어떤 친구는 우리를 더 나쁘게 물들인다. -68쪽
서로를 물들이는 친구의 존재.
대학 때 친구가 생각나는 책이다. 대학 때 만났던 친구를 지금까지 만난다는 것과 더 이상 볼 수 없는 친구도 있다는 것에 공감하는 바가 있어 자세히 들여다봤다.
데리다 같은 이론가들의 설명에 따르면, 현대의 삶은 중심을 찾아다니며 삶의 원동력에 의문을 갖는, 원자화된 개인들로 가득하다. - 이미 예견된 핵개인의 사회. -86쪽
우정의 친밀함은 상대의 눈에서 자신을 알아보는 느낌에 있다고 썼다. -86쪽
아무도 읽지 않게 되더라도 내가 쓴 문장에 나 자신을 담아낼 수 있는 그런 자유로운 저녁 시간이 좋았다. -96쪽
나는 항상 이런 자유로움이 좋아 소리 나지 않아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글이 좋다. 정말 동감하는 문장!
글에는 진심을 숨김없이 쓰며, 소리 내서 말하기엔 엄두도 나지 않을 만한 얘기를 담았다. - 97쪽
한때 일기장은 이런 용도의 글쓰기였다. 하지만, 공적인 글을 써야 하는 어른이 되면 진실과 상관없이 드러내도 타격감 없는 나를 가린 죽은 글만 쓰는 시간들이 더 많다. 그래서 글을 써도 답답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다. 읽히는 글을 쓴다는 것은 다 그런 것이지 않을까? 의식하지 않고 쓰는 글은 일기밖에 없을까? 때론 일기도 나를 의식해서 쓰는 글인 것 같은 생각도 있다. 현재 나에 대해 쓰고 있지만, 미래에 나를 기억하기 위해 쓰는 다분히 미래의 나를 의식하는 글.
우정에서 중요한 것은 이해받으려는 마음이 아니라 알아주려는 마음이다. -110쪽
켄은 세상 속에서 존재감을 갖고 싶어 했다. -120쪽
세상 속에서 존재감을 갖고 싶어 하는 열망은 누구나 있지 않을까?
진정한 자신이 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121쪽
진정성은 진성성의 부재를 통해서만 의미를 갖는 개념이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허식을 부릴 때 비진정성과 거짓을 알아본다. -121쪽
그보다 더 싫은 건, 켄의 주도로 애들이 다 같이 노래를 따라 부르며 'God Only Knows'의 완벽한 화음을 덮어 버릴 때였다. 내 차였지만 더 이상 내 왕국이 아니었다. 숀, 벤, 켄은 음정은 신경도 안 쓰고 고래고래 노래하길 좋아했다.
그 소음 속에서 안도감이 느껴졌다. 원곡이 선사하는 것보다 더 나을지도 모르는 그런 느낌이.
노랫소리가 귀를 간질이는가 싶다가 이어서 몸 전체를 간질여 함께 따라 부르게 되는 그런 체험이었다. 누군가에 이어 또 한 사람이 음정을 틀리고, 그러다 어느새 모두가 과감히 자신만의 독창을 뽑으며 심한 불협화음을 연출했다. 나는 마침내 음악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몸으로 느꼈다. 불신자들의 합창이 신에게로 향했다. 우리는 함께 뭉쳐 만들어 낸 화음으로 가사 속에 흐르는 비극을 압도할 수 있덨다. 사람들이 함께 힘을 모을 수 있다는 증거였다.
143쪽
→ 다 함께 음정, 박자 틀리며 떼창을 할 때 느끼는 묘한 감정을 이 책에서는 아주 섬세하게 묘사해 준다. 같이 부르는 동질감, 다 같이 제각각 불러도 어우러지는 화음감.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함께 소리 낸다는 것 자체만으로 형제애를 불러일으키는 묘한 불협화음의 화음감!
나는 대학에 가면 내 사람들을 찾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나라는 테마의 변형. 하지만 너무 늦은 걸지 모르겠으나, 깨닫게 되었다. 내가 원했던 것은 단지 같이 음악을 들을 친구들이라는걸.
*친구의 죽음으로 인한 애도의 방식이 기억하기와 글쓰기. 글쓰기를 통해 저자가 슬픔을 느끼고 죽은 자를 기억하고 범죄자에게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글에 담겨 있다.
누군가를 추모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산자의 주관적인 감정에서 비롯되는 것.
*친구의 죽음으로 인한 죄책감 : 충분히 책 속의 상황이라면 죄책감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나왔고 혼자 두었고, 그냥 지나쳤고, 스윙 댄스 추러 가자고 전화하라고 했을 때 진실한 자기 마음이 아니었으니까 전화 오지 않기를 바랐던 마음이 연관성은 없지만 진짜 전화 못 하는 상황이 되었으니까. 평생 트라우마 생길 만하다. 상실감, 애도, 상처 극복.
범죄의 피해자가 되는 것. 산자의 고통. 양심의 가책을 못 느끼는 범죄자. 사고로 인한 이별. 젊은 시절 예기치 못한 친한 사람의 죽음.
*후아 쉬는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상처를 극복했을까?
*후아 쉬는 자신의 불완전함과 불안정함을 인정했다.
*켄의 죽음에 대한 산 자의 해석 : 인종차별적인 관점, 대학생이라서 범죄의 표적이 됨, 누군가의 죽음을 자기 자식의 죽음으로 대치했다는 부모의 위안적인 의미 부여(영웅), 자식을 잃었을 때 울지 않았지만 죽을 때까지 웃지 않을 것 같다는 후아 신의 해석, 켄의 죽음을 방조한 여자 그리고 이버슨의 살해에 대한 방조범이 아니라 '나쁜 사마리아인'이라고 표현한 캐시(캐시는 결국 버클리대에 입학했다.), 후아 신이 그날 파티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하는 되돌릴 수 없는 과거를 후회하는 죄책감
*켄의 마지막 순간을 생각하는 후아 신 : 자기 차 트렁크 안에 갇혔을 때 기분이 어땠을까? 남겨 두고 갈 것들에 슬퍼했을까, 아니면 탈출에 온 정신을 모으고 있었을까? -228쪽
→ 이 부분에서 우리나라 영화 고 이은주 배우 주연의 '주홍 글씨'가 오버랩되었다. 정확하게 내용이 생각나지는 않지만 트렁크 신이 너무 끔찍했던 기억이 났다.
*친구의 죽음 앞에 산 자의 삶의 방향과 형태는 자신의 선택이다. 슬픔에 빠져 일어서지 못할 정도로 자기 삶을 망가뜨리는 것과 다시 살아가기 위해 자기 삶을 재정비하는 것은 산 자의 몫이다. 죽은 이를 기억하며 글로 자신의 슬픔을 승화시키는 것과 자신의 곁에 죽은 이를 묶어 두고 의지하며 죽은 이를 안 보내는 것도 자기 선택. 상실 수업 책이 생각난다.

내 마음이 아플 땐 때론 균형과 아름다움이 더 나를 아프게 할 때가 있다. 상실의 고통으로 회복되지 않았을 때 이 세상의 밝음과 따뜻함이 나와 동떨어져 있다고 느낄 때.

메아리를 따라 노래하고 싶었던 것

불완전함과 불안정함을 인정했어. 행복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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