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개의 단어에 담긴 말의 사연
이 책은 프랑스에서 쓰이는 34개의 단어에 담긴 의미, 역사, 문화, 정치, 철학, 지혜, 말에 담긴 경험의 응축성, 사회 현상에 대한 에세이 형식의 글이다.
고등학교 때 불어를 배웠지만 살면서 불어를 쓸 일이 별로 없었다. 쉬운 불어 회화 정도는 조금 알아들을 수 있었던 수준에서 이젠 거의 퇴화되어 단어만 반복 청취해야 뜻을 파악한다. 언어도 사용하지 않으면 무생물이 된다. 더이상 프랑스어를 들을 때 연상되는 것이 없어지는? 하긴, 카를라 브루니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프랑스가 내 옆에 그려지는 느낌이 들곤한다. 프랑스의 음악들. 프랑스어의 말맛이 느껴지는 억양, 특유의 발음, 액센트, 리듬감..불어 배울 때는 너무 어렵다 생각했는데 지금 다시 불어를 들어보면 운치있고 그 때 동경했던 파리의 시간들, 낭만 감성이 있다.
내가 평소에 프랑스 문화, 음악, 미술, 예술, 건축, 사회에 관심이 있어서 틈틈이 다양한 책을 봤지만 언어에 관련된 책은 실로 오랜만이다. 저자가 프랑스에서 사용되는 단어의 쓰임새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어떤 의미인지 또 왜 그렇게 의미 변화를 가지는지 언어의 역사 혹은 언어의 생성과 소멸, 발전, 언어의 고착에 관한 기본적인 흐름 위에서 살아있는 언어의 세계를 맛보게 해주었다. 각 나라의 언어가 그 사회에 맞게 생성되고 변화되고 혹은 소멸되거나 축소되거나 확장되어 곤고해지는 과정이 비슷함을 알 수 있었다. 그 시대에 자주 사용되는 단어는 그 시대가 필요로 하고 결핍의 증거이기 때문에 자주 쓰이거나 함축적으로 쓰인다는 것은 한국도 마찬가지라는 점. 마치 한국이 선진국과 K-ㅇㅇ라는 단어가 많이 쓰이는 것처럼 그 시대의 생각과 철학이 담겨 있어 언어 속에 많은 것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프랑스인들이 사용하는 언어의 습관과 살아남은 단어, 생성되는 신조어의 이유를 잘 설명해 놓아 언어를 통해 프랑스 사회, 문화를 깊이 있게 알 수 있어 재미있었다.
나는 프랑스에 능통한 한 유튜버의 프랑스 문화 해설 보기를 좋아하는데 이미 아는 내용도 있었지만 잘 모르는 단어도 있어 새롭고 신선했다.
단어의 맛은 이렇게 다양한 문화를 같이 풀어놓는 책으로 접근하는게 좋은 것 같다. 책을 읽으며 슬쩍 슬쩍 책에 나와 있는 단어를 오랜만에 발음해봤는데 프랑스어 공부 동기가 생기는 마법. 더불어 프랑스 여행도 꿈꾸고, 프랑스어를 다시 공부하고 싶은 욕구도 잠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