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단어장: 핍진성
문학에서의 의미
문학에서의 핍진성은 사실적 실감, 현실과의 일체감을 의미한다. 프랑스의 문학비평가인 제라르 주네트(Gérard Genette)가 서사물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의 신빙성을 지칭하기 위해 고안해 낸 개념이다. 핍진성은 텍스트 외부의 현실과 대응하는 정도가 아니라, 오직 텍스트 안에서 등장하는 인물, 인물의 행위, 언어, 상황과 개연성들이 신뢰할 만하고 현실적인 측면을 보일 때, 핍진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초자연적이나 공상적인 내용을 포함하는 텍스트 역시 내부적인 요소들이 만들어내는 플롯 내부 현실의 개연성에 의해 고도의 핍진성을 가질 수 있다.
예술에서의 의미
예술에서의 핍진성은 작품이 대상을 모방하는 정도이다. 고전주의 미학에서 다루던 작품의 미덕은 작품의 모델의 미덕과 동일했어야만 했다. 아름다운 여인을 그대로 모사하는, 핍진성이 높은 작품이 훌륭한 작품이었다. 하지만 19세기 이후 예술작품은 실물을 얼마나 정확하고 진실되게 복제하는지에 따라 그 작품의 가치가 결정되지 않게 되었다. 프랑스의 화가인 폴 세잔은 회화의 직사각 형태를 위해 핍진성을 희생시켰다. 비핍진성은 회화에서뿐만 아니라 문학에서도 반영되기 시작하였는데, 프란츠 카프카는 소설을 신화로, 제임스 조이스는 환각과 행위를 뒤얽히게 하였고, 윌리엄 포크너 역시 시간 질서를 전복시켜 핍진성을 약화시켰다.
과학철학에서의 의미
과학철학적인 개념으로서 핍진성은 진리와 관련되어 보이는 것 혹은 진리같이 보이는 것들과 거짓된 주장이나 가설들을 구분하는 데 사용된다. 핍진성의 문제란 거짓된 이론이 다른 거짓된 이론에 비해 얼마나 더 진리에 가까운지를 밝혀내는 데 있다. 이 문제는 과학철학자인 칼 포퍼에 의해 중요성이 대두되었다. 과학적 탐구의 목표는 진리에 다가가는 것이라는 입장을 받아들이는 포퍼는 이때까지 과학의 역사에서 제시된 대부분의 위대한 과학적 이론이 엄밀하게 말하자면 거짓이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만약 이 거짓 이론들이 진리 탐구를 위한 초석으로 깔려 있다면, 적어도 하나의 거짓 이론은 다른 거짓 이론들보다는 더 진리에 가까운 것이 가능할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하나의 이론이 다른 이론보다 더 진리에 가깝다는 기준은 진리와 내용이라는 두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 어떠한 이론이 더 많은 진리를 담고 있을수록, 진리에 가까운 것이라 판단된다. 다시 말해, 이론 A보다 이론 B가 핍진성이 더 높다는 것은 곧 이론 B가 더 많은 참인 결론과 적은 거짓된 결론을 가진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와 뉴턴의 움직임에 대한 이론을 비교해 보았을 때, 두 이론 다 결함을 내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뉴턴의 이론이 더 많은 진리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더 진리에 가깝다. 예를 들어, “다음 주 일요일에 비가 올 것이다”라는 주장이 만약 참이라면, 논리적으로 더 약하지만 역시나 참일 수 있는 주장인 “다음 주 일요일에 비가 올 것이거나 화창할 것이다”보다 더 진리에 가깝다.
[네이버 지식백과] 핍진성 [verisimilitude, 逼眞性]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