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외로운 지구인들에게 - 이방인의 시선이 머무른 낯설고도 애틋한 삶의 풍경
홍예진 지음 / 책과이음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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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앞표지

지은이 : 홍예진

산업디자인과를 나와서 프랑스에서 무대미술과를 졸업한 뒤 아트디렉터로 활동했으며 대학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는 소설을 쓰고 주변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고 프랑스 중부와 남부, 파리, 미국 뉴욕과 보스턴과 미시간을 거쳐, 지금은 코네티컷의 바닷가 마을에 살고 있다. 남편과 두 아들이 있다.



프롤로그 중에서 공감이 갔던 부분 : 지은이의 글을 보면 얼마나 한 문장 한 문장을 공들여 쓰는지 알 수 있다.



책 구성 : 하나하나 읽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책을 읽고 나서

지은이가 얼마나 글 쓰는 것을 사랑하고 좋아하는지 책을 읽으면서 느꼈다. 프롤로그에서부터 지은이가 쓴 문장 앞에서 멈췄다. 사전을 찾아보고 싶은 단어들이 프롤로그에서부터 나왔다. '핍진함' 그게 뭐지? 핍진 : 형용사로 첫 번째 뜻은 실물과 아주 비슷하다. 두 번째 뜻은 사정이나 표현이 진실하여 거짓이 없다는 뜻.

대개는 휘발되거나 기억 장소에 머물다 희미해질 것들을 손에 잡히는 책으로 만들어놓는 이 행위의 의미를 묻는다면,

거시적인 것들에 가려진 미시적인 것들의 핍진함을 붙들려는 몸짓이라 답하고 싶다.

- 프롤로그 7쪽

나의 외로운 지구인들에게

나를 위한 단어장: 핍진성

문학에서의 의미

문학에서의 핍진성은 사실적 실감, 현실과의 일체감을 의미한다. 프랑스의 문학비평가인 제라르 주네트(Gérard Genette)가 서사물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의 신빙성을 지칭하기 위해 고안해 낸 개념이다. 핍진성은 텍스트 외부의 현실과 대응하는 정도가 아니라, 오직 텍스트 안에서 등장하는 인물, 인물의 행위, 언어, 상황과 개연성들이 신뢰할 만하고 현실적인 측면을 보일 때, 핍진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초자연적이나 공상적인 내용을 포함하는 텍스트 역시 내부적인 요소들이 만들어내는 플롯 내부 현실의 개연성에 의해 고도의 핍진성을 가질 수 있다.

예술에서의 의미

예술에서의 핍진성은 작품이 대상을 모방하는 정도이다. 고전주의 미학에서 다루던 작품의 미덕은 작품의 모델의 미덕과 동일했어야만 했다. 아름다운 여인을 그대로 모사하는, 핍진성이 높은 작품이 훌륭한 작품이었다. 하지만 19세기 이후 예술작품은 실물을 얼마나 정확하고 진실되게 복제하는지에 따라 그 작품의 가치가 결정되지 않게 되었다. 프랑스의 화가인 폴 세잔은 회화의 직사각 형태를 위해 핍진성을 희생시켰다. 비핍진성은 회화에서뿐만 아니라 문학에서도 반영되기 시작하였는데, 프란츠 카프카는 소설을 신화로, 제임스 조이스는 환각과 행위를 뒤얽히게 하였고, 윌리엄 포크너 역시 시간 질서를 전복시켜 핍진성을 약화시켰다.

과학철학에서의 의미

과학철학적인 개념으로서 핍진성은 진리와 관련되어 보이는 것 혹은 진리같이 보이는 것들과 거짓된 주장이나 가설들을 구분하는 데 사용된다. 핍진성의 문제란 거짓된 이론이 다른 거짓된 이론에 비해 얼마나 더 진리에 가까운지를 밝혀내는 데 있다. 이 문제는 과학철학자인 칼 포퍼에 의해 중요성이 대두되었다. 과학적 탐구의 목표는 진리에 다가가는 것이라는 입장을 받아들이는 포퍼는 이때까지 과학의 역사에서 제시된 대부분의 위대한 과학적 이론이 엄밀하게 말하자면 거짓이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만약 이 거짓 이론들이 진리 탐구를 위한 초석으로 깔려 있다면, 적어도 하나의 거짓 이론은 다른 거짓 이론들보다는 더 진리에 가까운 것이 가능할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하나의 이론이 다른 이론보다 더 진리에 가깝다는 기준은 진리와 내용이라는 두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 어떠한 이론이 더 많은 진리를 담고 있을수록, 진리에 가까운 것이라 판단된다. 다시 말해, 이론 A보다 이론 B가 핍진성이 더 높다는 것은 곧 이론 B가 더 많은 참인 결론과 적은 거짓된 결론을 가진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와 뉴턴의 움직임에 대한 이론을 비교해 보았을 때, 두 이론 다 결함을 내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뉴턴의 이론이 더 많은 진리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더 진리에 가깝다. 예를 들어, “다음 주 일요일에 비가 올 것이다”라는 주장이 만약 참이라면, 논리적으로 더 약하지만 역시나 참일 수 있는 주장인 “다음 주 일요일에 비가 올 것이거나 화창할 것이다”보다 더 진리에 가깝다.

[네이버 지식백과] 핍진성 [verisimilitude, 逼眞性]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작가가 고심해서 한 단어, 한 문장 쓴 티가 역력하고, 서술어에 대한 수식이 아름답다. 문장을 읽을 때 마치 정돈되고 잘 꾸며놓은 가정집에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읽는 내내 그림이 그려지는 문장이었고 묘사가 섬세해서 눈으로 읽으면서 머릿속으로 상상하게 만들었다. 오감을 열어놓은 듯한 저자의 꼼꼼한 성품이 느껴지는 글이다. 한 문장 안에서 어떤 상황이나 순간을 설명할 때 눈으로도 그려지고, 귀로도 들리고, 냄새도 맡아지고, 촉감도 느껴지고, 맛도 느껴져 내 취향의 문장이 많이 있었다. 글을 읽을 때 그저 지은이가 써 놓은 대로 쭉 상상하다 보면 그림이 그려진다. 하얀 도화지에 하나씩 그림이 그려진다. 지은이의 약력 중에 산업 디자인과를 나왔다는데 그런 영향이 글에도 묻어나는 것일까?

글을 읽는데 이렇게 선명하게 그림이 잘 그려지는 것도 신기했다. 저자가 생활하면서 항상 뭔가를 쓰려고 염두에 두면서 단어 채집하듯, 글감 채집하듯 일상을 주의깊게 관찰하며 사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만큼 일상의 시간들을 허투루 지나치지 않고 인상주의 화가가 순간을 포착하듯 저자도 순간을 글감으로 저장해 놓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잘 표현하는 것 같다. 뭔가 직접적이고 딱딱한 문체보다 아름답게 포장하고 우아한 문장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 같다.

글이 쓱쓱 잘 읽히고 친한 누군가와 대화를 주고받는 것 같은 내적 친밀감도 생긴다. 지은이의 이야기가 공감이 많이 되어서 그런 것 같다. 특히, 이방인으로서 다양한 나라에서 살면서 겪었던 경험들을 저자의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놓은 것이 공감이 많이 갔다. 또, 책 속의 책으로 내가 인상 깊게 읽었던 《연을 쫓는 아이》의 내용과 저자의 이야기가 어우러지는 장면에서는 저자가 같은 한국인으로 느끼는 안타까움 너머로 그런 경험들을 할 때 같이 오버랩되는 것이 삶을 닮은 예술(소설) 이어서 공감이 많이 되었다. 저자의 따뜻한 마음과 타국에서 같은 한국인으로 살아가면서 이웃의 가족일 뿐이고 알지도 못하지만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연대감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저자의 시선이 그렇게 자기 주변의 이웃, 또 모르지만 가까운 이야기들에서 감정을 글로 표현하는 것에서 나도 저자와 마음이 같이 머무르고 한 번도 보지 못한 책 속의 그 사람(낸시의 시동생)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에세이를 읽으면서, 평소에 지나쳤던 혹은 그냥 일상적인 일들도 지은이처럼 글로 써 놓으니 한편의 그림처럼 훌륭한 작품이 되고 생각할 거리가 있음을 느꼈다.



너를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

지은이의 글을 읽으면 계속 연상 작용을 하게 된다. 글의 중량감이 크지 않고 글이 그려지는 문장들. 문장 한 개 한 개가 모여 스케치가 되고 채색이 되고 하나의 풍경이 되는 것 같은 글들.

읽고 있는데 관조하게 되는 부분도 있고, 아예 글로 빠져들어 나라면 어땠을까라는 부분도 있고, 꼭 재미있는 단막극을 여러 개 보는 것 같다.

책 제목이 왜 '나의 외로운 지구인들에게'일까?라고 읽기 전에는 의아했는데, 읽으면서 지은이가 꼭 나한테 하는 말 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지은이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풀어 놓은 부분이 있는데 나와 비슷한 면이 많아서 동질감을 느꼈다. 읽다가 그중에서 내가 썼나 싶은 나랑 비슷한 면이 있는 지은이의 문장을 발견했다. 외로운데 외로움을 느끼는 포인트가 비슷하고 위로를 받는 포인트도 비슷해서 신기했다.




나는 외로우면 서점에 간다. - 동감

언젠가부터 왜 이렇게 서점 가는 것을 좋아하지? 도서관을 왜 자꾸 가지? 나 자신에게 물었더니, 여러 가지 감정 중에 외로움도 컸던 것 같다. 나는 종종 도서관에 간다. 아무 이유없이 가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외로웠던 시간들에 책을 보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던 것 같다. 도서관에 가면 직접 사람을 마주하지 않아도 되고 내가 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선택해서 실컷 볼 수 있으니 좋다. 혼자여서 외롭지만, 자유롭다. 외로운데 구속받기는 싫을 때 도서관에 간다. 나만의 휴식처.





맨해튼 5번가에서 : 대마초가 코네티컷 주에서는 합법이라고 한다. 만 18세 이상이면 누구나 의료용 목적의 대마초를 여섯 포기까지 집에서 기를 수 있다고 한다.

줄리아 로버츠의 영화 <벤 이즈 백>도 마약 중독자인 아들에 관련된 이야기인데 책에서도 나온다. 마약 중독자들의 심각한 상태를 최근에 영상으로 본 적이 있는데 그 장면과 같이 떠올랐다. 우리 나라도 이제 쉽게 마약을 구할 수 있고 마약 중독자도 많다고 하는데 어린 자녀들을 키우는 부모는 한결같이 걱정된다. 이렇게 마약을 쉽게 구할 수 있고 마약을 허용하는 사회가 있다니.



여기서도 핍진이라는 단어가 또 등장.



"탐미는 인간의 속성이다. "라는 말에 동감한다.

짧은 글의 묶음이지만, 글마다 다양한 이야기와 소재가 있어서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저자가 생활하는 그 곳에서의 문화와 생각들도 알 수 있었고 삶에서 지나칠 수 없는 문제도 저자의 예리한 눈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지은이의 에필로그 문구에서 '어쩌면 나만큼이나 외로울지도 모를 당신에게'라고 표현한 것처럼, 여기 외로운 사람 하나 더 있소!라고 책을 다 읽고 말해주고 싶었다. ^^

가을 감성 나는, 찬 바람 슬슬 불고, 조금은 쓸쓸하고 외로울 때, 삐딱한게 아니라 온갖 다양한 스펙트럼의 색을 품고 있는 우리 주변의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있다면 공감하고 읽을 책이다.


 



읽으면서 자꾸 내 생각을 쓰고 싶어지는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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