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디자인이 예뻐서 이리저리 살펴봄.
전작 <그림이 있어 괜찮은 하루>는 저자가 임신 중에 책을 쓰면서 펴낸 것이고, 오늘의 책 <나의 다정한 그림들>은 아마도 아이가 태어난 이후의 일상을 담은 에세이인 것 같다.
책을 받자마자 책이 예뻐서 두 손으로 책을 쓰담으며 자연스럽게 갓 인쇄된 책 냄새를 맡아 보았다. 책 표지가 예뻐서 한참이나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감상했다. 이렇게 예쁜 색감의 책을 만나면 책에도 첫인상이 존재한다는 걸 느낀다. 펼쳐 보지 않아도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 연보랏빛의 서체. 깔끔한 흰색 하드 표지에 머금은 예쁜 그림. 한순간에 마음을 뺏겨 버렸다. 그레이 청색의 하늘, 건물, 아치형 다리 풍경과 물에 비친 건물. 폭신한 초록 풀밭, 키가 큰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 주는 산책 가를 걷는 두 사람의 뒷모습 실루엣. 그림에서 뒷모습은 항상 애정의 시선이다. 풍경에 또 하나의 그림이 된 두 사람과 날씨 좋은 날의 산책. 아이의 손을 잡고 가는 엄마와 하얀 모자를 쓴 아장아장걸음걸이 3살 아이의 모습이 평화롭다.
<나의 다정한 그림들> 연보랏빛 내지에 담긴 글. 내 취향 100% 만족 컬러. 컬러 테라피.
각각의 장마다 그림과 저자의 에세이(그림+관련 글귀 및 책+자신의 이야기)가 좌르륵 실려있다.
그중에서, 책 표지의 그림이 실려 있는 한 부분을 소개한다.
-비교당하지 않을 권리를 위하여-
이 글에 담긴 저자의 스토리는 직접 책을 보세요.
그림을 보면서 자신의 방식대로 삶을 살아가고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은 있지만 그림처럼 평온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는 저자의 이야기다.
저자의 비교 및 아쉬움: 나보다 남편이 전공 공부를 훨씬 더 많이 했지만, ~ 나는 남편보다 훨씬 다양한 분야의 책과 영화를 흡수했다. 책 78쪽
남과 비교할 일 없는 나만의 스타일에 집착하고, 인생의 단계 단계에 걸맞은 역할을 수용하는 것이 성숙한 태도라고 생각한다는 자신의 생각을 백수린의 책을 인용하면서 밝힘. 책 79쪽
저자가 얼마나 예술을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하는지 책을 통해 많이 느껴졌고, 읽는 내내 나와 비슷한 취향과 성향을 갖고 있어서 친근하게 와닿았다. 글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대충은 파악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저자의 취향과 정서를 알 수 있고 이 책은 또 에세이라 본인의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어 더 가깝게 와닿았던 것 같다.
나와 비슷해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글을 쓰고 편집을 하고 정신적인 노동을 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에는 육체적인 노동을 하고 싶다는 바람과 글을 보거나 쓸 때 시각적 심상이 떠오른다고 하는데 나도 글을 읽을 때 이미지가 떠오르고 음악이 떠오른다. 글을 보면 그림과 음악이, 그림을 보면 음악과 글이, 음악을 들으면 그림과 글이 상호 연상 작용이 되어 오감이 맴돈다. 이렇게 맴. 맴. 맴. 맴. 맴돈다.
그런 과정들을 자연스럽게 어느 순간부터 하게 되었고 그것이 나의 퍽퍽한 삶에서 일종의 휴식 같은 놀이?라고 해야 하나? 예술 작품을 보고 나만의 상상을 하고 나만의 생각을 하는 것이 정답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는 제때에 뭔가 완성품을 내지 않아도 될 여유, 그 다양성과 애매모호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유로운 시간으로 허락되는 것 같아 즐기고 있고, 피곤해도 퇴근 후 극장과 전시회를 자주 찾는 것도 자유롭게 내가 나로서 느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어서 기꺼이 시간을 내어 찾아가게 된다. 그곳은 현실과 분리된, 오롯이 보낼 수 있는 나의 재충전 시간이기 때문이다.
또한 작가로서의 고충과 편집자로서의 수월함. 그 두 작업 간의 차이점이 공감이 되었다.
마치 예술가(창작자)와 예술가의 작품을 전달하는 메신저(해설자) 같은 관계라고나 해야 할까?
나의 고민도 같이 맞닿아 있는 부분이라 공감이 갔고 나는 절충하여 밸런스를 맞추며 시간을 적절히 잘 분배해서 살고 있다.
읽다가 사진으로 찍어둔 몇 컷을 올린다.
하나의 그림으로 삶의 태도를 바꿀 수 있다.
나의 예술가를 가질 권리. 그림의 진가는 감상자의 몫
휘슬러. 감상자로서 글로 그림을 말하기. 예술 없이 평범함에 머무는 글은 쓸 필요가 없다. 외면 일기에 남기기
예술의 본질은 같다. 줄줄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 음악가를 제외한 시인의 위대함.
휘슬러의 그림. 안개. 그림. 파란색. 은색.
꾸준함이 예술이 된다. 이우환. 점. 선. 면. 반복작업.
객관적인 평가에 아파하지 않고 인정하고 수긍해서 긍정적으로 발전시키기
보기 위한 책. 삽화 데생의 아버지 상페.
삶의 자세가 중요. 학술적인 이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행동 그 자체가 중요한 것.
가까이 보고 오래 보아야 예술도 느낌.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한 게 아니라, 그 일상을 꼭 지키고 싶은 것이다.
예술은 우리가 좋아하고 좋아하는 것을 허용한다.
조르주 쇠라, <아침 산책> 점묘법. 모든 것이 다 들어있는 그림.
미술 에세이를 쓸 때 저자는 총 4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1. 우선 정보 없이 그림을 마음껏 감상한다. 마음에 드는 이미지나 그림을 정한다.
2. 자신이 고른 그림과 어울리는 화가의 스토리나 화가의 말 혹은 미술평론가의 문장을 찾는다.
3. 화가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없다면, 그림/화가에 자신의 성격/사건/습관/감정선을 연결한다.
4. 마지막으로 '왜 이 그림이 내 삶에 필요한가'를 두 번 생각한다.
나의 다정한 그림들 129, 130쪽
나도 전시회에 가서 그림을 감상할 때 사전 정보 없이 내 식대로 감상하고, 내가 의미 부여한 그림에 초점을 두어 그 그림에 대한 감상평을 주관적으로 남기고, 후에 그림에 관련된 정보를 찾는다. 순서가 뒤바뀔 때도 있지만. 그림과 음악은 직관적으로 불시에 만나게 되더라도 내가 가진 느낌으로 자유롭게 감상을 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것이니까.
책에서도 마리아 발쇼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말한다.
어떤 작품이 좋고 별로인지 정해 주는 미술관은 나쁜 미술관이다. 미술관은 모든 사람이 서로 동의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의 몇 안 되는 열린 장소이다."
- 마리아 발쇼
나의 다정한 그림들 130쪽
전적으로 동감하고 그런 이유에서 음악과 예술을 사랑한다. 옳고 그름이 없는 그 자유로운 공간. 마음대로 상상하고 사유해도 되는 시간들. 지나쳐도 부족해도 일탈을 꿈꿔도 감정을 격하게 표출해도 되는 예술적 허용의 공간을 사랑한다. 좋아하는 것이 있어서 인생이 즐겁고 예술가들의 작품에 대해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더 알고 싶고 예술에 담긴 의미를 같이 해석하고 싶다. 한 가지 책을 보다가도 관련된 책을 또 찾아보고. 그러면서 더 확고한 취향이 생긴다.
대부분의 일상은 책임감을 토대로 묵묵히 살아내야 할 시간들이라면 그 시간들 사이로 조금 허락되어 내어준 시간들을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울 수 있음에 항상 감사한다. 진짜 창작자, 연주자로서 예술가의 삶을 사는 이들에게 항상 서포터로서 응원하는 마음이 든다. 예술을 좋아하지만, 예술가로서의 삶과는 거리가 멀고 창작 행위자로서 예술을 할 엄두가 안 나는 다른 일상을 살고 있지만, 나의 꿈같은 이상을 실현하고 있는 현재형 예술가들을 항상 만나고 싶고 그들의 고된 창작 과정과 연습 과정을 지지하고 존경한다. 어릴 때부터 예술가를 동경하고 좋아했고 예술가들이 치열하게 창작해 놓은 아름다운 결과물을 감상하고 감탄하는 것이 좋았다. 나와 비슷한 감정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해 놓은 것들을 보면 희열을 느끼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 감동시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어서 종종 그런 창작품들을 볼 때마다 더 깊이 있게 작품 속으로 들어가 본다. 예술적 깊이를 충분히 느끼고 음미하지만 정작 훌륭한 작품을 볼 때마다 그냥 스치고 지나갔는데 더 오랫동안 감흥을 기억하고 즐기는 방법은 그 감동받았던 시간들을 복기하고 기록하는 방법이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짧게라도 후기를 남겨두는 것이 좋은 방법 같다. 그 순간을 담아둘 수 있는 것은 내 기억 속 떨림과 인상을 기록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음악은 음악회에 다녀오면 시간에 흘러 음들이 귓가에서 사라지고 느낌만 남고, 미술은 그 공간을 벗어나면 더 이상 실재 있는 직관적인 감상은 불가하다. 비싼 미술 작품을 소장하는 것도 부담이고 미술 작품을 놓을 공간도 없는 현실이라면 내가 느낀 감정을 즉시 기록하는 것이 나름의 효율적인 감동 저장 방법이다.
이제는 젊을 때처럼 더 이상 화려하고 어려운 테크닉을 구사하는 연주를 욕심내기에는 역부족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예술 접근 방법은 내가 느낀 예술을 기록하고 같이 공유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예술가를 선망하고 되고 싶어 했고 좋아하지만 위대한 예술가는 예술가들의 몫, 감상하는 것은 나의 몫으로 남겨두고.
끊임없이 배우고 결단하고 실천하고. 내 삶의 모토다. 행하지 않는 사랑은 죽은 사랑이다.
이 책에서도 나오는데, 아무리 좋은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도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되면 자신의 삶이 조금 더 좋아질 거란 희망을 품게 되고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동기부여가 되고 강력한 추진력이 된다. 좋은 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좋은 것을 내 곁에 가까이하게 될 때 나도 좋은 것을 생각하게 되고 좋은 것을 구분할 수 있고 좋은 것을 따라 하게 되는 긍정적인 영향력을 항상 기대한다. 물론, 그러면서 실질적인 자기 노력과 의지가 뒷받침되어야 하겠지만.
좋은 예술은 치유력이 세다. 좋은 예술을 통해 자신의 감정과 상태를 깨닫고 평생 수수께끼 같은 인생 퍼즐을 하나하나 맞추다 보면 미완성이라도 스스로 자족하리라 생각된다.
이 책도 결국에는 그림을 통해 삶을 말하고 있다.
아름다운 그림도 다 좋지만, 자신의 일상 속에 피어나는 예쁜 딸 여름이의 그림 한 점이 제일 소중하고 귀하다는 것을. (겨울을 싫어하는 작가님이 여름이라고 딸 이름을 지었다고 함)
그림을 통해 저자가 읽는 그 많은 책 속 주옥같은 글귀를 통해 저자는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 생각들을 충실히 잘 풀어나가고 그것을 아주 쉬운 문체로 술술 읽히게 써 놓았다. 평범해서 평온해서 더 아름다운 일상의 소중함을 글로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나도 천천히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했는데도 금세 읽어버렸다.
그림은 또 따로 보겠지만, 작가님의 글은 작가님의 따뜻한 온기도 느껴졌고 딸이 어린이집에 간 사이 육아 사이사이 시간을 쪼개 피자, 김밥 한 줄 먹으며 글 쓰는 열정도 느껴져서 반가웠다.
그리고, 그림이 자신의 속마음을 제일 잘 알아주는 친구처럼 느껴졌고, 그림으로 글로 자신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네는 일상인 것 같았다.
그림 에세이라 한 폭의 풍경화처럼 운치 있는 장소에서 커피와 함께 편안한 마음으로, 카페에서 마치 전시회에 온 것 같은 혼자만의 공간감으로 여유롭게 이 책을 즐기시면 좋겠다. 책장에 전면으로 꽂아 놓기만 해도 기분전환이 될 것 같은 책. 아기자기 소품이 있는 예쁜 공간에 걸려있는 파스텔톤 그림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의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