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의 탄생 - 문자라는 기적
노마 히데키 지음, 김진아.김기연.박수진 옮김 / 돌베개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한글 탄생의 배경을 다각도로 조망할 뿐만 아니라, 한글이 문자로서 갖는 특성에 대해서도 상세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를 통해 많이 알려진 것처럼, 세종의 한글 창제에는 진입장벽이 높은 한문과 그로 인한 지식의 독점,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기존 지식의 보존과 전승을 유지하고자 했던 기득권층과, 문자의 대중화를 꾀하고자 했던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의 이념적 대립이 배경에 깔려 있었다. 


한글 자체의 '신묘함'에는 절로 혀를 내두르게 된다. 기존에 존재하는 말에 사용할 문자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야 하는 상황에서,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은 뜻을 형상화한 글자가 아닌 소리를 형상화한 표음문자를 택하고, 그러면서 초성 중성 종성을 분간해 내고, 음소 단위로 분절되어 있으면서도 음절 단위로 결합되어 있는(ㄱ, ㅏ, ㅇ 이지만 동시에 '강'), 따라서 의미단위까지 글자 자체로 보존할 수 있는(오로지 소리나는 대로 '무를 마시다'라고 쓰는 대신 '물을 마시다'라고 쓸 수 있어 '물'의 의미단위가 문자의 차원에서 보존된다), 실로 위대한 문자 체계를 고안해 냈다.


기존 지식체계의 존속과 전승이냐, 아니면 보다 대중적인 새로운 지식체계의 창출이냐를 두고 격돌했던 최만리파와 세종과의 대립에서 우리는 비단 한 시대, 한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 인류에 보편적인 거대한 사상적 대결을 본다. 그리고 기존에 존재하는 말에 적합한 문자체계를 고안하고 마침내 훈민정음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어 낸 것에서, 우리는 각종 소리와 음절, 단어를 인지하고 분별해 낸 뒤 이를 종합하고 정리하여 체계를 세우는, 인간 이성의 고유한 능력이 극한으로 발휘되는 모습을 본다. 그리고 '어리석은 백성들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문자를 보급하겠다는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의 의지, 그래서 사대부의 물건인 붓으로 쓰는 글씨가 아니라 흙바닥에 작대기로 쓸 수 있는 모양의 글씨를 만들어낸 그 의지(최초 훈민정음은 붓글씨의 삐침과 흘림이 없는, 밋밋한 고딕체에 가까운 글씨체로 쓰였다. 궁서체는 후일 붓으로 한글을 쓰면서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다)에서는 따뜻한 마음씨를 느낀다.


'훈민정음'의 후서에 정인지가 쓴 글, 그리고 '훈민정음 해례본'의 발견 경위를 소개하는 대목에서는 바로 이렇게 굳은 의지를 갖고 극한으로 발휘된 인간의 이성이 얼마나 위대한지에 전율하게 된다.


정인지는 '훈민정음'의 맨 뒤에 서문을 달면서 이렇게 썼다.


"바라건대 <(훈민)정음>을 보는 자가 스승 없이 스스로 깨우치게 되기를."


"훈민정음 해례본은 1940년 경상북도 안동의 고택에서 발견되었을 당시에 지붕 밑 다락에 잠들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었으나, 실제로는 소장자에 의해 여성들의 한글 교육에 쓰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훈민정음은-'사람마다 쉽게 익혀서 편히 쓰게 하고자' 했던 세종 임금의 뜻대로 쓰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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