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의 철학자들 - 위대한 경제사상가들의 생애, 시대와 아이디어
로버트 하일브로너 지음, 장상환 옮김 / 이마고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Robert L. Heilbroner, The Worldly Philosophers, Touchstone, 1999.
장하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부키, 2010.
John Maynard Keynes, 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Chapter 24)
Paul Krugman, The Return of Depression Economics and the Crisis of 2008, Penguin Books, 2008.


사회는 수많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각자 맡은바 일을 수행할 때에만 안정적으로 존속할 수 있다. 원시 사회처럼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거나 사회 구성원 전체가 혈연으로 연결되어 있는 경우라면 사회가 존속하기 위해 별다른 조직 방법을 고안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스스로의 몸을 자연으로부터 지켜내는 것이 어느 정도 수월해지고 사회의 규모가 확대되어 더 이상 구성원들 모두가 혈족관계에 있지 않게 되면, 사회 구성원들의 상호 협력을 보장하기 위한 방법이 마련되어야 한다. 인류는 이제껏 사회를 효과적으로 유지하고 존속시킬 수 있는 조직방법을 세 가지 찾아냈다. 최초에는 세대를 걸쳐 전해져 내려오는 전통과 관습을 사회의 조직원리로 사용했고, 그 후에는 지도자의 명령과 이에 대한 복종을 통해 사회를 조직했다. 그리고 오늘날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시장을 사회 조직방법으로 사용한다. 억지로 협력을 강요하는 대신에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게끔 내버려 둠으로써 모든 사람들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것이 바로 시장 제도의 역설적이면서도 찬탄할 만한 특징이다. 자원의 배분과 재화의 생산, 그리고 생산된 재화의 배분까지도 모두 사회 구성원들의 자율에 맡기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시장 제도가 사회의 조직방법으로 자리잡음에 따라 '경제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이 세상에 등장했다.

로버트 하일브로너의 '세속의 철학자들 The Worldly Philosophers'은 이처럼 인간 사회의 조직방법에 대한 역사적 고찰에서 시작한다. 그 뒤를 이어서는 새롭게 등장한 '경제학'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걸어 온 여정에 저마다의 방법으로 발자국을 남긴 사람들의 삶과 그들의 생각을 차례차례 짚어나간다. 그들 중 몇몇은 우리에게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제공해 주었고, 경제학의 물줄기를 바꾸어 놓았다. 또 몇몇은 기초가 닦인 경제학의 길을 넓히고, 바닥을 다져 더 오고가기 편한 길로 만들었다. 그리고 몇몇은 때로는 도발적인, 때로는 위협적인 질문을 던지며 경제학의 길에 갖가지 굴곡을 만들어냈다. 이처럼 경제학의 길에 발자국을 남긴 사람들 중에는 누구 하나 독특한 매력이 없는 사람이 없다. 별로 힘 안 들이고도 위대한 학문적 성취와 명예를 손쉽게 일궈낸 것 같은 애덤 스미스나 리카도, 케인즈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위대함을 갈구하고 누구보다 노력했으나 그에 한참 미치지 못한 기인(奇人) 생시몽 같은 사람도 있고, 고난으로 가득찬 비참한 인생을 살면서도 날카로운 눈으로 현 세상에 종말을 고하는 괴물같은 예언을 토해낸 마르크스 같은 사람도 있다.

하일브로너는 이들 '세속적 철학자들'의 독창적인 사상을 조망해 나가면서 결코 그들의 개인적인 삶과 성격을 먼저 살펴보는 것을 잊지 않는다. 맨 먼저 이들이 '인간 사회의 조직방법'이라는 거대한 틀 속에 자리하고 있음을 짚고 넘어간 데서도 분명히 드러나듯이, 한 사람의 사상을 그 사람이 놓여 있던 역사적 상황과 개인적 삶의 경험과 무관하게 고찰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덕에 독자들은 흥미진진한 전기를 읽는 기분으로 지루한 줄 모르고 경제학의 역사를 따라갈 수 있으니 깊이와 재미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서술방식이다.

스미스에서 맬서스와 리카도를 거쳐 마르크스를 만나고, 뒤이어 빅토리아 시대의 경제학자들에 이르러 우리는 '정치경제 Political Economy'가 '경제학 Economics'이 되어가는 모습을 본다. 이제껏 언제나 사회의 다른 모든 영역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존재였던 경제학은 사회적 요소들을 모두 사상한 채 무색무취한 기호와 깔끔한 그래프로 표현되는, 수학과 자연과학을 닮고 싶어하는 학문이 되었다. 수식에 의해 결론이 명쾌하게 도출되고 논리필연적으로 타당한 증명이 이루어지는 작업을 하면서, 경제학자들이 진리를 찾아내고 있다는 뿌듯함에 약간은 너무 사로잡힌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하일브로너는 최근의 경제학에 나타난 뚜렷한 경향으로 '과학화'를 이야기한다. 경제학자들이 경제학을 물리학 같은 자연과학과 유사한 것으로 파악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일브로너는 이와 같은 경향에 우려를 금치 못한다. 알프레드 마셜이 말했던 것처럼 "경제학은 항상 변화하는 미묘한 인간의 작용을 다루기 때문에 정확한 물리적 과학과 비교될 수 없다"는 것이 그가 드는 첫번째 이유고, 두번째는 "인류의 사회적 삶은 그 본성상 정치적"이라는 것, 즉 "모든 사회는...귀족제도에서 노예제까지, 계급에서 카스트까지, 재산권에서 빈곤의 불이익에 이르기까지 이익과 불이익의 분류를 만들어낸다"는 것, 그리고 "자본주의도 이 일반적인 명제에서 예외일 수 없다"는 점이다. 다시말해 부의 재분배의 수준은 얼마나 되어야 하는가, 또는 세금과 상속제도와 같은 제도가 정당한가 하는 문제는 사회 구성원들이 논의를 거쳐 합의를 통해 결정해야 할 성질의 것(=정치적인 것)이지, 결코 중력과 같은 자연적 법칙에 의해 결정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경제학이 자연과학이라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착각하는 문제에 대해 하일브로너가 지적한 위의 두 가지 (타당한) 반론에 더하여 한 가지를 덧붙이고 싶다. 애초에 자기 스스로 파레토 최적을 달성해 낸다는 '완전자유시장'은 현실에서 그 전제조건을 모두 실현하는 것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한 가지 전제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나머지 조건을 최대한 완전시장에 가깝게 한다고 해서 파레토 최적에 가까운 결과가 달성되지 않는다는 점, 즉 어차피 완전시장의 전제조건 가운데 하나라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나머지 조건들도 완전시장에 맞지 않도록 변형시키는 것이 오히려 결과적으로 낫다는 점(이른바 '차선의 이론'으로 알려져 있다)이다.

경제학이 자연과학의 방법론을 채택하게 되면서, 그 탐구의 대상으로 삼는 인간 사회가 자연법칙에 의해 지배받는 자연세계와 동일한 성격을 갖는다고 오해할 수 있다는 하일브로너의 문제제기는 분명 새겨 들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 나타나고 있는 우려스러운 현상은 비단 인간사회와 자연세계를 혼동하는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시장경제가 승승장구하는 가운데 '시장의 법칙'을 어쩔 도리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절대불변의 법칙으로 여기는 현상 또한 나타나고 있다. 전문 경제학자들의 경우에는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른바 '시장의 법칙'에 따르는 상태가 유지되는 데에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이러한 주장을 정치적으로 선전하면서 일반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지게 된 경우가 많다고 보인다.

그러나 이와 같은 태도는 인간의 지성과 인류 문명의 역사 전체를 거부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설사 '시장의 법칙'이 자연법칙처럼 절대적인 성격을 갖는 것이라고 가정하더라도(위에서 보았듯이 이 가정부터가 틀린 것이긴 하지만), 인간이 그 법칙에 무조건 순응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인간의 역사는 자연법칙을 거스르고 길들여 온 역사다. 멀쩡히 나뒹구는 돌을 붙들고 서로 부딪혀 불을 만들어 냈고, 전기를 가두고 저장해서 온갖 기계장치를 움직이게 하는 법을 고안해 냈으며, 바다를 막아 땅을 만들었고, 중력을 거슬러 처음에는 아교로 접붙인 깃털날개를 달고, 나중에는 목이 긴 새 모양을 닮은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인간은 그의 행복과 욕망에 장애물처럼 버티고 있는 법칙에 굴복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인간은 그 장애물을 부수고, 에둘러 피해가는 길을 만들어내면서 수천 년간 오늘날 우리가 '문명'이라고 부르는 것을 일궈냈다. 이제와서 인간이 '시장의 법칙'에 맞서 우리의 행복에 더 기여할 수 있도록 시장을 고치고 길들이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장하준의 (술술 읽히면서도 유익한 내용으로 가득한)'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서 가장 중요한 문장은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인간의 힘으로 만들 수 있는 여러 세상 중 가장 나은 세상이 아니다."

자유 시장에 개입하는 것에 대해 '시장의 법칙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는 식으로 패배주의적 반론을 펴것은 결국 인간성 그 자체(humanity)에 대한 모욕이다. 올바른 문제제기는 다른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즉 하이에크가 이야기한 것처럼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결국 개인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게 된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그리고 경제학이 시장의 작용을 모두 파악하고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류이듯이, 인간의 제한된 지성으로 시장을 완벽하게 조종하여 원하는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또한 오만에 불과하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그럼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자유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고 시장의 법칙에 순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인간의 힘에 대한 모욕이다. 그러나 인간이 국가를 통하여 시장에 개입하기 시작하면 개인의 자유가 지나치게 축소될 위험이 있고, 효과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이것도 나쁘고 저것도 나쁘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케인즈가 하이에크의 책 '노예의 길'을 읽고 그에게 쓴 편지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다른 결론을 내리고 싶습니다. 나는 우리가 원하는 것은 아무 계획도 없는 것, 심지어 계획을 줄이는 것도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더 많은 계획이라고 나는 거의 확신합니다. 그러나 그 계획이 실행되는 사회는 지도자이든 추종자이든 할 것 없이 가능한 한 최대로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도덕적 견해[=자유의 중요성, 인용자 주]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적절한 수준의 계획은, 그 계획을 실행하는 사람들의 정신과 마음이 도덕적 문제에 있어서 올바로 잡혀 있다면 충분히 안전할 것입니다."

자유의 중요성과 자율이 낳는 창조적 힘을 온전히 인식하고 존중하면서 동시에 인간이 적절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 케인즈의 이와 같은 신중한 입장은, 그의 가장 유명한 책 '고용, 이자 및 화폐에 대한 일반 이론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의 마지막 장에 잘 드러나 있다. 책의 결론에 해당하는 마지막 장은 짧고, 경제적 사전지식이 전혀 없는 나같은 사람이 이해하는 데도 지장이 없다. 원문은 [여기]서 볼 수 있다. 격정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날카롭고 세심하며 건조한 문장이지만(그러면서도 유려하다는 게 시기심마저 불러일으킨다) 케인즈는 실로 읽는 이의 심금을 울린다.

하일브로너의 책은 생소한 단어가 쉬지않고 등장하는 나머지 그 내용이 단숨에 읽어내려가고 싶을 정도로 재미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어를 찾느라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케인즈의 글은, 유려한 문장이 언제나 어느 정도는 그렇듯이 쉽다고 할 수는 없다. 구어체에 가까운 평이한 문장으로 좋은 책을 써내는 건 폴 크루그먼이다.

2008년의 금융위기를 맞아 기존의 책에 내용을 추가하여 낸 "불황의 경제학 The Return of Depression Economics and the Crisis of 2008"은 90년대 초반 남미의 통화위기, 90년대 후반 아시아의 통화위기와 일본의 장기 경기침체를 분석한 뒤, 2008년의 금융위기를 그 강도와 범위에 있어서 가공한 것으로 만든 이유를 비은행 금융권의 확대와 자본의 세계화 경향이라고 진단하고, 그에 대하여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통해 현재의 불황을 타개해야 하고 장기적으로는 비은행 금융권을 은행과 비슷한 수준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처방을 내놓는다. 이 책은 하일브로너나 장하준의 책처럼 경제학 자체에 대한 논의('메타경제학'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에 중점을 둔 책이 아니고, 경제학의 틀 안에서 역사적으로 발생한 경제위기에 대해 분석하고 처방을 내놓는 책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진행되는 논의를 따라가다 보면 그 논의를 관통하는, 경제 문제에 관한 크루그먼의 기본적인 입장을 읽어낼 수 있다. 우리는 역사적 사건으로부터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를 얻어야 하며, 적절한 개입을 통해 시장의 힘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 이는 하일브로너나 케인즈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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