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eaks of the Game (Paperback)
David Halberstam / Hyperion Books / 200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딕셔너리닷컴(Dictionary.com)에서 ‘breaks’를 검색하면 일흔일곱 번째 항목에 다음과 같은 정의가 나온다. “the breaks, informal. the way things happen; fate.” 직역하면 “사태가 벌어지는 모양새, 숙명” 정도가 된다. 그렇지만 ‘숙명’이라는 말은 우리말 어감상 적절한 번역어는 아닌 듯하다. ‘사태가 벌어지는 모양새’를 좀더 자연스런 말로 옮기면 ‘일이 돌아가는 꼴’이 되겠다. 그리고 이 책에서 저자 데이비드 핼버스탬이 말하는 경기(the Game)는 농구, 보다 정확하게는 미국 프로농구(NBA)다. 결국 이 책의 제목은 “NBA가 돌아가는 꼴”이 된다.

이 책은 NBA의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Portland Trail Blazers 구단의 1979~80 시즌에 관한 이야기이다. 핼버스탬은 이 시즌동안 트레일블레이저스 팀과 생활을 같이하면서 선수들과 감독들을 비롯한 구단 관계자들을 인터뷰했고 현장에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1979~80 시즌 트레일블레이저스 팀의 여정을 그리면서 핼버스탬은 그들을 통해 당시 NBA의 모습, 그 리그가 ‘돌아가는 모양새’를 그려낸다. 무엇이 그 당시 NBA를—농구선수들, 감독들, 수카웃들, 구단주들—을 움직이고 있었는지, 그 사람들은 변화하는 리그 환경과 자신이 처한 상황에 어떻게 반응했고, 그것은 또 리그의 모습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그 이야기는 단지 한 팀의 한 시즌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NBA의 한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막 열리려 하고 있던 순간에서 바라본 리그의 역사 전체의 이야기이자 리그 구성원들 모두의 이야기이다.

NBA는 바뀌고 있었다. 미디어와 프로 스포츠가 서로 손을 잡으면서 프로 스포츠 세계의 지각변동이 일어나던 시기였다. TV 방송사가 먼저 손을 뻗은 것은 야구(MLB)와 미식축구(NFL)였다. 미디어 자본이 프로 스포츠 리그에 유입되자, TV 중계료가 구단들에게 예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수익을 가져다 주었다. 이제 더 이상 구단들의 주 수입원은 티켓 판매가 아니었다. 구단의 수입이 증가하자 그에 발맞춰 선수들의 연봉도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NBA는 MLB와 NFL에 비하면 후발주자였지만, 여기도 예외는 아니었다. 70년대 초, 거대 TV 방송국이 NBA와 중계 계약을 맺었고, 그에 따라 구단주와 선수들이 버는 돈은 대폭 상승했다. 돈이 된다는 이야기가 돌자 더 많은 사람들이 농구팀 경영에 뛰어들었다. 신생 구단이 빠른 속도로 생겨났다. 여덟 팀에 불과했던 리그는 스무 팀이 넘는 규모로 성장했다.

자본의 유입은 단지 리그의 양적 팽창만을 불러온 것이 아니었다. 선수들이 농구를 대하는 태도와 서로를 대하는 태도 또한 바뀌었다. 계약을 갱신하거나 새로 리그에 들어오는 선수들은 예전에 비해 훨씬 높은 금액의 연봉을 받게 되었다. 아직 계약기간이 남아 있는 선수들, 이미 전성기가 지나 선수생활이 내리막길에 접어들고 있기 때문에 새로 큰 돈에 재계약을 할 수 없는 선수들은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자기보다 실력이 못한 선수가 훨씬 더 많은 돈을 벌고 있는 모습을 보며 선수들은 재계약에 응해 주지 않는 구단에 배신감과 분노를 느꼈다.

리그가 양적으로 팽창하기 전, NBA는 말이 프로 리그였지 사실상 농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실력을 겨루는, 아마추어 냄새가 짙은 소규모 동네 리그나 다름없었다. 프로농구 선수가 되는 것을 평생의 직업으로 생각하기에는 수입이 너무 적었고, 선수생활이 오랫동안 보장되는 것도 아니었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농구를 하는 것이 즐거웠기 때문에 힘든 프로 생활을 견뎌냈다. 같은 팀의 선수들 사이, 선수들과 감독 사이에는 가족과 같은 관계가 존재했고 끈끈한 전우애가 있었다. 그들은 비좁은 버스를 함께 타고 원정 경기를 떠났고, 작은 모텔에 함께 묵으며 시즌을 보냈다. 감독은 가부장과 같은 권위를 갖고 선수들을 훈련시키고 팀을 이끌었다. 60년대를 주름잡았던, 빌 러셀Bill Russell과 레드 아이어바흐Red Auerbach의 보스턴 셀틱스Boston Celtics가 바로 그 전형적인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 선수들은 진정한 프로의식을 가지고 농구를 대했다. 그들에게 프로농구는 다른 무엇보다도 직장이었고, 돈을 버는 수단이었다. 선수들은 보다 많은 연봉을 받아내기 위해 구단주와 지리한 계약협상에 나서는 걸 마다하지 않았다. 선수들이 변호사를 고용해서 연봉협상의 대리인으로 세우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감독들보다 선수들이 훨씬 더 많은 연봉을 받게 되고, 구단 내에서 선수의 지위가 상승함에 따라 감독들은 더 이상 예전처럼 선수들을 휘어잡고 그들을 지휘할 수 없게 되었다. 경기 외적인 요소에 의해 선수들이 타 구단으로 트레이드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연봉재계약 협상이 틀어져서, 혹은 좀더 많은 관중과 TV중계권을 확보하기 위해서 팀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선수들을 보내고 팀 전체의 분위기와는 무관하게 기록이 뛰어나고 인기가 좋은 선수들을 불러모으는 구단이 많아졌다. 선수들 사이에 끈끈한 전우애는 더 이상 없었다. 오로지 형식적인 직장 동료 관계만이 남았다.

자본의 유입만이 NBA를 변화시키는 동력은 아니었다. 미국에서는 60년대 민권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고, 이 때부터 프로 스포츠계에 흑인 선수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70년대에는 스포츠계에 흑인 선수들의 진출이 대폭 확대되고 그들이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농구는 다른 어떤 스포츠보다도 빨리, 그리고 더 많이 ‘검게’ 변한 스포츠였다. 다른 어떤 스포츠보다도 농구에서 흑인들은 백인들을 압도하는 운동 능력을 자랑했다. 더 빠르고, 더 높이 뛰는 흑인 선수들은 미국 농구계를 사실상 장악해 나가고 있었다. 그에 따라 경기의 모습도 바뀌었다. 정적이었던 과거의 농구경기는 사라지고, 스피드가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동시에 경기의 무대는 지상에서 공중으로 점점 더 ‘높아져’ 가고 있었다(NBA는 80년대 중후반 이후로는 완전히 공중 경기로 자리잡았다. 84년에 리그에 들어온 마이클 조던Michael Jordan이라는 선수가 그 변화의 정점에 섰다).

미국 사회의 모든 분야가 표면화된 인종 갈등으로 몸살을 겪고 있었다. 흑인들의 진출이 다른 사회 분야에 비해 더 빠르고 광범위했던 NBA에서 인종 문제는 더 첨예하게 나타났다. 모두 백인 뿐인 구단주와 감독들, 그리고 흑인이 대부분인 선수들 사이의 갈등에는 언제나 인종 문제가 덤으로 끼어들었다. 선수들 사회 내부에서도, 백인 선수들과 흑인 선수들 사이에 긴장관계가 존재했다. 오늘날의 미국 사회에서도 여전히 그러하듯이, 인종 문제는 일견 그와는 무관해 보이는 갈등에서도 불쑥불쑥 튀어나와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새로운 자본의 유입, 그리고 흑인 선수들의 진출 확대로 인해 NBA는 분명 격변기였다. 그에 더해서, 격변기가 아닌 때에도 언제나 존재했던 문제들이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선수들은 리그의 살인적인 경기 일정 때문에 체력적으로 시달렸고,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도 뛰어난 재능을 타고난 선수들이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제대로 실력을 발휘해 보지도 못한 채 리그에서 쓸쓸히 퇴장해야 했다. 신체적 조건과 운동능력만을 보고, 잠재력에 기대를 걸고 드래프트에서 높은 지명순위로 선택된 어린 선수들이 주변의 높은 기대치로부터 오는 중압감과 부담감을 이기지 못한 채 자신의 잠재력을 꽃피우지 못하고 사라져 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팀 내에서 확고한 자리를 보장받을 정도의 실력은 안 되는, 특출난 장점이 없는 선수들은 언제 엔트리에서 제외당할지 모르는 불안한 상태를 감내해야 했다.

리그의 양적 팽창 또한 새로운 문제를 야기했다. 실력 있는 선수들이 리그에 유입되는 속도보다 리그에 신생 구단이 생겨나는 속도가 더 빨랐다. 한정된 인재 풀에 있는 선수들이 스무 개가 넘는 팀으로 흩어지다 보니, 각 팀의 전체적인 실력은 하향평준화되었다. NBA의 경기 수준이 저하되었다. 경기력의 저하는 농구경기의 재미를 떨어뜨렸고, 이는 TV 시청률의 하락으로 나타났다. 시청률이 나오지 않는 NBA는 방송국의 편성에서 점차 우선순위가 밀려났다. 1979~80 시즌의 결승전은 당시 리그의 후원 방송국이었던 CBS에서 생방송을 타지도 못했다. 황금시간대를 한참 벗어난 심야시간에 녹화방송으로 중계되었을 뿐이었다. TV자본의 유입을 맞아 성급하게 팽창을 추구한 것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 리그의 존속을 위협하고 있었다.

이런 위기의 시대에, 1976~77년의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와 같은 팀이 출현할 수 있었던 것은 실로 기적이었다. 그 블레이저스는 ‘완벽한 팀’이었다. 센터 빌 월튼Bill Walton(지금은 농구중계 해설자로 활약하고 있다. 현재 LA 레이커스 선수인 루크 월튼Luke Walton의 아버지다)을 주축으로 한 그 팀은, 새로운 시대의 농구를 완벽하게 구현해 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선수들은 개인적인 기록을 앞세우기보다는 팀 전체를 위해 뛰었다. 철저한 연습과 체력관리를 바탕에 둔 조직적이고 탄탄한 수비, 월튼을 비롯한 빅맨들의 리바운드, 가드들이 달려나감과 동시에 뿌려지는 패스, 그에 이은 속공. 조직력과 팀의 단합이 스피드와 더해지면 얼마나 강력하고 아름다운 농구가 가능한지를 보여 준 팀이었다. 그만한 키와 체구에 비해 경이로운 패스 능력과 시야를 보유한 월튼의 특출난 재능이, 그 재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동료들과 어우러지고, 여기에 철저한 연습과 규율을 통해 조직력과 팀플레이를 강조하는 감독 잭 램지Jack Ramsey의 지도력이 결합한 결과물이었다. 77년, 블레이저스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정규시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고, 결국 그해 우승을 차지했다.

‘완벽한 팀’은 오래 가지 못했다. 팀은 우승한 다음 시즌인 1977~78 시즌 막바지에 월튼이 부상으로 결장하면서 급속히 무너져 내렸다. 전력상 완벽을 보여 준 팀이었지만, 그 팀이 돌아가는 모양새 또한 70년대 말 여느 NBA 팀과 마찬가지였다. 몸상태가 좋을 때 누구보다 강력한 구심점이 되어 주었던 빌 월튼은 만성적인 발 부상에 시달리면서 예전의 모습을 좀처럼 회복하지 못했다. 계속되는 부상은 결국 팀 의료진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고 결국 월튼은 78년 시즌이 끝난 후 트레이드를 요구했다. 월튼의 부상과 팀 이탈을 기점으로 그 동안 잠복해 있던 문제점들이 표면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주력 파워포워드 모리스 루카스Maurice Lucas(월튼은 루카스의 애칭을 따서 자신의 셋째아들의 이름을 ‘Luke’라고 지었다고 한다)와 스몰포워드 라이오넬 홀린즈Lionel Hollins는 적은 연봉액수에 불만을 표시했다.
연이어 드래프트에서 훌륭한 신인선수 발굴에 실패하면서 월튼처럼 부상을 당하거나 떠나간 선수들의 공백을 메우지도 못했다. 결국 우승컵을 들어올린 지 2년 남짓한 기간 만에 1976~77년의 ‘완벽한 팀’의 멤버였던 선수들은 모두 부상으로 은퇴하거나 다른 팀으로 자리를 옮겨 버렸다. ‘완벽한 팀’의 증발은 그 출현만큼이나 갑작스러웠다.

분명 이 책이 쓰여진 1980년 당시 NBA는 위기였다. 경기의 질이 저하되고 인기가 떨어지면서 TV 방송국의 후원도 기대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다. NBA는 격변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몰락의 길을 걷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잘 알듯이 NBA는 몰락하지 않았다. 오히려 80년대에 중흥기를 거쳐 90년대에 전례 없는 인기를 누렸고, 21세기에 접어든 지금은 세계 무대로 시장을 넓혀 가고 있다.

NBA를 몰락으로부터 구원한 것은, 80년대에 전에 없이 대규모로 유입된 출중한 선수들 때문이었다. 재미있게도 이 책이 다룬 1979~80 시즌에 80년대 NBA 중흥기를 선두에서 이끈 두 명의 선수가 리그에 들어왔다. 그들은 이제껏 보지 못했던 화려함과 정교함을 갖춘 실력, 경기에 대한 열정, 스스로보다 팀을 앞세우는 플레이를 선보이며 경기력 저하에 신음하던 리그를 새로 일으켜 세우는 견인차가 되었다. 신생 구단이 늘어나고 선수들이 재배치됨에 따라 사라져가던 팀들 간의 라이벌 구도에 그들은 다시 불을 지폈다. 그들은 흡사 미국 사회의 근저에 존재하면서 NBA를 위협하던 갈등축을 모두 다 둘이서 봉합해 버리겠다는 듯이, 한 명은 흑인, 다른 한 명은 백인이었다. 한 명은 동부, 다른 한 명은 서부의 주요 도시를 연고지로 삼은 팀에 들어갔다. NBA가 무너져내리기 일보 직전이었던 바로 그 1979년, 두 사람의 구세주가 나타난 것이다. 그들의 이름은 매직 존슨(Magic Johnson), 그리고 래리 버드(Larry Bird)였다.

매직 존슨과 래리 버드는 리그에 들어오기 전 대학 시절부터 유명세를 타고 있었고, NBA에 들어오자마자 그 즉시 눈에 띄는 활약을 보여주었다. 블레이저스의 1979~80 시즌을 밀착해서 관찰한 핼버스탬 또한 당연히 그들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이 쓰여질 당시에는 아직 두 사람이 장차 NBA를 구원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는 없었다. 그러나 당시에도 두 선수가 보기 드문 비범함을 갖춘 사람들이라는 것만큼은 분명했던 모양이다. 핼버스탬은 래리 버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Bird was the rarest kind of media player, someone even better than advertised. Every player on the Celtics improved when he was on the court. … His sense of the court was absolute. He seemed to know where every player was at every moment. … He was, with that eyesight and those huge hands, perhaps the best passer ever to play forward. If a teammate got free, the ball came to him. Though he was a seemingly limited player physically, with a body that was weak by NBA standards, and had limited flex in his feet (which made him run up and down the court like an elderly woman) he was nevertheless one of the league's top rebounders."  

 [버드는 가장 희귀한 중개적 선수였다. 세간에 알려진 것보다 오히려 더 뛰어났다. 그가 코트에 서면 셀틱스 모든 선수들의 실력이 향상되었다. … 그는 코트를 보는 감각이 절대적이었다. 그는 매 순간 모든 선수들의 위치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 그 시야와 거대한 손 덕택에, 그는 어쩌면 역사상 가장 패스를 잘하는 포워드일지도 몰랐다. 팀메이트가 오픈되면, 그에게 볼이 배급되었다. NBA 기준으로 보면 약한 몸을 가진, 신체적으로는 제한된 선수였고 발의 유연성 또한 제한되어 있었지만(그 때문에 코트를 왔다갔다 뛰어다니는 모습이 흡사 나이든 할머니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바운드에 있어서 리그 상위권이었다.]

핼버스탬은 79년, 신인이었던 버드를 두고 “4~5년에 한 번 나오는, 보기 드문 능력을 가진 선수(a player of rare ability, the kind who comes into the league every four or five years)”라고 평가했다. 아니었다. 버드는 40~5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우리 생에 다시 볼 수 없는 능력을 가진 선수였다. 그리고 그건 매직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80년대 중반 리그에 대거 유입된 유례 없는 우수한 인력(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이름들이 82~87년에 NBA에 들어왔다. 클라이드 드렉슬러Clyde Drexler, 하킴 올라주원Hakeem Olajuwon, 패트릭 유잉Patrick Ewing, 데이비드 로빈슨David Robinson, 찰스 바클리Charles Barkeley, 칼 말론Karl Malone, 존 스탁턴John Stockton, 스카티 피펜Scottie Pippen, 아이제아 토마스Isaiah Thomas, 조 두마스Joe Dumars. 그리고 90년대 NBA의 전성기에 황제로 군림한 마이클 조던까지.)과 함께 고사 직전에 있던 리그를 부활시켰다. 물론 이 책은 81년에 쓰여졌기 때문에, 이들 슈퍼스타들에 관한 언급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책을 탈고한 이후, 농구를 좋아했던 핼버스탬은 아마 이들을 보며 누구보다 즐거워했을 것이다.

저널리스트이자 역사가로 이름을 날리던 저자 데이비드 핼버스탬은 2007년 4월 23일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이 책은 프로 스포츠와 스포츠 저널리즘이 세계에서 가장 대규모로 발달한 미국에서도 스포츠 저널리즘의 모범으로 꼽힌다. 한 농구팀의 한 시즌을 시간 순서대로 따라가면서, 그 이면에 놓인 선수들, 구단주들, 감독들의 고민과 갈등, 그들에게 영향을 주는 당대의 사회적 문제들까지 드러내는 날카로움 때문이리라. 농구의 팬으로서, 그리고 스포츠의 팬으로서 아직 스포츠 저널리즘은 물론이고 프로 스포츠도 비중 있는 문화영역으로 정착하지 못한 우리나라의 실정을 떠올리며 책을 읽는 내내 부러웠다. 새삼 저자의 때이른 죽음이 안타깝다. 핼버스탬의 유작은 다름아닌 한국전쟁을 다룬 'Coldest Winter'라는 책이다. 이 책과 함께 주문해 두었다. 이 책만큼만 역량을 발휘했다면, 읽어 볼 가치가 충분하리라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