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읽기
이승우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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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1일 토요일, 문학동네에서 주최한 이승우 작가의 북토크에서 이동진 평론가는 이렇게 말했다. 이승우를 통해 다른 책을 만나려고 이 책( 『고요한 읽기』)을 읽는 것이 아니라, 다름 아닌 바로 ‘이승우’를 읽기 위해 이 책을 읽는다고.

이보다 적확한 감상을 말할 수 있으려나. “나, 사람, 세상”을 정말로 잘 읽어내고자 책과 책 사이에서 분투한 소설가의 흔적들. 그 안에서 나 역시 오롯이 이승우를, 이승우의 시선을, 이승우의 세계를 반복해 만나고 읽었으니까.

(소설가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이 (외적으로) 아름다운 책”에 담긴 모든 문장은 그동안 그가 다다르고 이루고자 했던 ‘지점’의 해답들이 아니라, 앞으로도 그가 치열하게 천착할 ‘지향’의 질문들. 나 또한 계속해서 그와 함께 삶을 묻고 읽으며 살아가고 싶다.

이승우가 읽고 쓴 책은, “문학으로 인생에 복무”하고 있다는 그의 걸음과 믿음을 돌아볼 광학기구로 두고서. 
이승우를 통해 다시 읽고 새로 읽은 책은, 불가해한 사람과 세상을 향한 내 불완전한 이해를 도와줄 광학기구로 삼고서.

“다만 사람에 대한 탐구”를 삶의 꾸준한 의무로 이어가는 그처럼,
사랑을 다하고 사랑에 다다르는 좌표 위에 나의 문장과 하루를 하나씩 찍어가기를 바라며.




내 옆의 당신에게 ‘이승우’라는 세계를 만나보길 권하고 싶을 때마다, 그곳으로 가닿는 단단하며 든든한 한 권의 돌다리로써  『고요한 읽기』를 건넬 수 있게 되어 어찌나 기쁜지. (이달에만 세 권을 선물했다지-)

당신이 ‘읽는’ 사람이라면, “나, 사람, 세상”을 읽는 방법에 관한 고민의 명도를 높여가는 고요한 기회로. 
당신이 ‘쓰는’ 사람이라면, 어디서든 어떻게든 ‘계속’ 쓰는 마음에 대한 고민의 채도를 높여가는 고요한 과정으로.

그런데 결국 모든 당신은 어떠한 형태와 방식으로든 삶을 부단히 읽고 쓰고 있으니, 결국 이 책은 모든 우리를 위한 책이라고. 감히 이렇게 말하고 싶은 마음을 떨리는 손으로 용기 내어 한 글자씩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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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나는
다비드 칼리 지음, 모니카 바렌고 그림, 정림(정한샘).하나 옮김 / 오후의소묘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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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단어를 어느 때와 어느 곳마다 다 다른 동사(verb)로 살아 왔나요. 그렇게 살고 있거나, 살고 싶나요.

‘사랑‘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함께 구축해 온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나요. 그리워하게 될 건가요.

’사랑’이라는 단어가 펼쳐놓은 시간은 내게서 떠났거나 떠날 이의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을 것을, 알고 있나요.

떠났거나 떠날 이를 더는 만날 수 없는 이곳의 시간만이 내가 살아 왔고 살고 있고 살아갈 시간의 전부가 아닐 것을, 알게 됐나요.


이 모든 물음 앞에 세차게 고개를 내저을 수 없어서. ‘그리움’이라는 단어를 어느 때와 어느 곳마다 다 다른 동사로 살아가고 있는 이의 말에 두 귀를 기울여 본다. ‘그리움’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홀로 끌어안고 있는 이의 모습을 두 눈에 담아 본다. 이곳의 시간에서 “당신과 커피 한잔 함께 마시고 싶다”고 말하며 여전하지 않은 ‘당신과 나(TOI ET MOI)의 카페(café)’를 여전한 마음으로 오가는 이의 걸음 위에 두 손을 포개어 본다. 



⊹ 

당신과 함께 있었고, 당신과 함께 했었고, 당신과 함께 먹었고, 당신과 함께 맡았고, 당신과 함께 헤맸고, 당신과 함께 걷고 뛰었던 모든 ‘사랑’의 시간을, 나는 여전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당신과 내가 만들었던, 당신이 내게 남겨두고 간, 우리의 기억 안에서. 당신 없이, 당신과 함께, 여전히 나는.


당신이라는 바다는 시간의 흐름과 방향을 거스르지 못하여 조금씩 나의 해안에서 멀어져가고 있지만. 이곳에서, 당신과 함께 ‘사랑’을 했던 이곳에서, 당신과 함께 ‘사랑’을 살았던 이곳에서, 당신과 함께 ‘사랑’이었던 이곳에서, 여전히 나는.


당신이 없는 하루들을 쌓아갑니다. 당신과 내가 빚었던 천국의 기억을 헤아리며. 당신이 내게 두고 간 기억의 천국을 거닐며. 당신이 있는 하루들을 살아갑니다, 여전히 나는.


🔖 최진영, 「홈 스위트 홈」,  『쓰게 될 것』, p.290 /

또한 나의 천국은 다음과 같은 것. 여름날 땀 흘린 뒤 시원한 찬물 샤워. 겨울날 따뜻한 찻잔을 두손으로 감싸 쥐고 바라보는 밤하늘. 잠에서 깨었을 때 당신과 맞잡은 손. 마주 보는 눈동자. 같은 곳을 향하는 미소. 다정한 침묵. 책 속의 고독. 비 오는 날 빗소리. 눈 오는 날의 적막. 안개 짙은 날의 음악. 햇살. 노을. 바람. 산책. 앞서 걷는 당신의 뒷모습. 물이 참 달다고 말하는 당신. 실없이 웃는 당신. 나의 천국은 이곳에 있고 그 또한 내가 두고 갈 것.  



⊹ ⊹

사람과 사랑과 삶 때문에 깊게 헤메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다독이면서 얕은 잠에라도 들고 싶은 밤. 그럴 때마다 펼치는 그림책에는 어떤 목적과 바람이 깃들 수밖에 없고.


지금의 내게 즉각적인 위로를 보내는 그림들로 푹 젖은 눈을 폭 감아주는 그림책. 

지금의 내가 알아차리기 힘든 모호한 신호를 흐려진 눈 너머로 가리키는 그림책.

지금의 밤이 지나면 조금은 더 선명해질 안부를 머리맡에 살포시 올려두는 그림책.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이 모두가 [ 오후의 소묘 ] 출판사를 통해 만나고 품었던 모니카 바렌고의 그림책 네 권에 관한 설명이자 고백처럼 느껴지네. 숱한 오늘과 모르는 내일마다, 내 어두운 밤과 방에서, 그럼에도 사람과 사랑과 삶의 편에 나와 함께 설 아름다운 그림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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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할 일
김동수 지음 / 창비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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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의 생각과 행동에 ‘순수‘라는 경계를 세우거나 한계를 채우지 않는 일. 그것은 자신의 제1 독자를 어린이로 두고 있는 ‘그림책’이 수행해야 하는 의무와 역할 중 하나이지 않을까요. 어린이는 (마땅히 어른과 같은) 한 사람으로서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자신의 필요를 채워가고, 자신의 소망을 찾아갑니다. 자신의 기쁨과 슬픔을 표현하고 자신의 잘못과 실수를 반성합니다. 그리고 어린이는, (마땅히 어른의 것이기도 한) 자신의 해야 ‘할 일’을 합니다.


파란 물빛을 가득 안은 이 그림책에서 만나는 어린이에게도 할 일이 있습니다. 강물에 버려진 쓰레기를 발견하는 일. 그러고는 그 주위에 쪼그려 앉아 작은 나뭇가지로 쓰레기를 하나둘 건져 올리는 일. 주변에 자신을 지켜보는 존재라곤 백로와 오리 세 마리밖에 없는 강변에서, 어린이는 아마도 자주, 혹은 매일 묵묵히 ’오늘의 할 일’을 해왔을 겁니다. 


아니요, 이 어린이를 지켜봐 온 다른 존재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강물 속에 사는 ‘물귀신’들이었죠. (갑자기 분위기 호러 아님. 아무튼 아님…) 출판사의 그림책 소개 글에 의하면, 이 물귀신들은 인간이 더럽히고 망쳐놓은 것을 “묵묵히 자정 작용하는” ‘자연’의 상징입니다. 심각한 오염으로 인해 자정의 한계를 느낀 물귀신들은 강물 밖의 어린이를 강물 속으로 초대합니다. 그리고 어린이에게 다정히 요청합니다. 맑은 물로 돌려놓기 위해 애쓰고 있는 자신들을 도와달라고요.


🔖 “반가워요, 오늘의 어린이. 오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오늘 우리를 도와줄 수 있을까요?”


그런데 잠깐, ‘오늘의’ 어린이라니요. 그렇다면 어제의, 엊그제의, 일주일 전의, 한 달 전의 어린이가 있었다는 말일까요. 언제든 어디서든 할 일을 해 온 덕에 할 일을 부탁받은 다른 어린이들이 있었다는 것일까요. 뽀글뽀글 뿜어나오는 작은 의문은 금세 사라지고 맙니다. 어린이와 물귀신의 곁에서, 누구든 어렵지 않게 그 답을 발견할 수 있거든요. 


물귀신들에게서 ‘오늘의 할 일‘을 부탁 받은 어린이는 기꺼이 돌봄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할 일의 목록을 하나씩 지워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내내, 우리는 작가님이 부려 놓은 유쾌한 재치의 마법에 홀라당 빠져들 수밖에 없습니다. 한바탕 재미를 느끼고 마음껏 웃음을 터트리고 나니, 무언가가 “주르르르륵” 흘러나옵니다. 그것은 어린이와 함께 물귀신들로부터 초대받은 우리를 위한 물귀신들의 기념품일수도, 물귀신과 우리 모두를 향한 할 일의 목록일 수도 있겠습니다. 


작은 나뭇가지로 강가에 버려진 캔 하나, 페트병 하나, 과자 봉지 하나 집어 올리는 일을 그저 별거 아닌 작은 일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요. 그 영향과 가치를 순수하게 믿는 일을 그저 어리고 순진한 발상과 믿음일 뿐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요. 한 달 전에도, 일주일 전에도, 엊그제에도,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작은 나뭇가지를 손에 쥐고서 강변에 쪼그려 앉을 어린이를 알게 된 우리는 어린이와 함께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해야만 할 것입니다.


바라는 바에 다다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과 해야만 하는 일을 아는 존재는,

아는 데서 그치지 않고 묵묵히 그 일을 하는 존재는,

그렇게 바라는 바로 함께 섞여가며 되어가는 존재는

결코 작지 않다고. 


8년 만에 세상에 나온 김동수 작가님의 신작을 펼쳐보는 일은 오랫동안 기다리며 기대했던 ‘오늘의 할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어린이의 옆에서, 어린이와 함께 물귀신들의 다정한 요청 위에 올라타는 일이기도 했고요. 『오늘의 할 일』을 다하는 순수(純水)로의 모험에서 순수(純粹)의 의미를 되찾아가는 일. 그렇게 순수의 책임을 다하며 순수로 되어가는 삶을 함께 꿈꾸는 일. 함께 사는 일. 그것이 우리로서 함께 하고 싶은, 함께 해야 하는 ’오늘의 할 일’이라 용기내어 적어보며 어느 날 어느 책에서 만났던 문장을 나눠봅니다.


📚 마리아 투마킨,  『고통을 말하지 않는 법』, 을유문화사, p.349 /

나는 오스트레일리아 철학자인 조앤 포크너가 순수함을 대하는 방식이 마음에 든다. 포크너는 순수함에 관해서는 가지 커다란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번째 문제, ‘순수함 자기중심적인 어른들 자신을 위한 판타지다. 번째, 순수함은 어른들이 이상 그것을 지니고 있지 않다고 여겨지는 아이들을 포기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마지막으로 그것은 아이들이 윤리적인 , 시민으로서의 삶에 동참하지 못하게 막는다.




* 창비 출판사로부터 그림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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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누워 있고 일어날 생각을 안 한다 민음의 시 322
임지은 지음 / 민음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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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중에 짬을 내 앞의 시 6편을 읽었는데요. 더는 안 되겠다 싶어 바로 시집을 덮었습니다. 내 마음과 상황이 누구와 무엇의 방해도 받지 않을 때,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안에 온전히 누워있을 수 있을 때 다시 펼치려고요. 그 시간을 기다리며, 벅찬 마음으로, 저도 써봅니다. 임지은 시인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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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 - 정재율 김선오 성다영 김리윤 조해주 김연덕 김복희
박참새 지음 / 세미콜론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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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맴도는, 시로 다가가는, 시가 이끄는, 시로 통과하는, 시를 애호(愛好)하는 마음이 오가는 자리. 시인은 시인을 만나 함께 물었고, 물으며 함께 들었고, 들으며 함께 답했다. “이 책을 만들다 시인이 됐다”고 자신을 소개한 박참새 시인이 만난 일곱 시인과의 대담집 『시인들』. 책꼴을 갖춘 대화를 펼치기 전. 정재율, 김선오, 성다영, 김리윤, 조해주, 김연덕, 김복희 시인을 가리키는 띠지의 문장에 시선을 오래 꽂아두었다. 그렇게 마음이 곧장 꽂혀버렸다. 그들의 문장으로 넘어가고 그들의 마음으로 뻗어 나갈, 그들의 ‘다음’에.

 



시는 무엇인지. 시를 쓰는 일이란 무엇이어야 하는지. 시를 읽는 행위란 무엇이길 바라는지. 시인에게 시인(詩人)이라는 “상태와 직업(p.167)”의 의미는 무엇인지. 시와 언제까지, 어떻게 함께 살아가고 싶은지.


정답 없는 물음마다 시인들은 ‘시인으로서’ 품고 있는 저마다의 믿음을 꺼내어 보여주었다. 어떤 시인의 말은 그의 시집을 읽었을 때 퍼져 온 파동을 선명히 기억하게 했다. 어떤 시인의 말은 그의 시집을 읽어 나갈 때 겪어 갈 요동을 선연히 상상하게 했다. 모든 시인의 말은 그들로 시를 쓰게 하고 시와 살게 하는 원동(原動)을 응연히 수긍하게 했다.




시인의 시간과 시차를 두고서 시인을 만나며, 시와 시인의 사이를 채우고 메우고 지키는 것이 무얼까 생각했다. 가늠했다. 가능한 알아차림은 하나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시심(詩心)이라는 단어로 쉽게 가리키고 가리고 싶지 않다. 여덟 시인이 보여줄 다음의 시에서, 여덟 시인이 초대할 미래의 시집에서 ‘재확인reconfirming’하고 싶다. 하게 될 것이다. 그들의 시를 읽는 “사람으로서 가지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p.49)”이다.


 『시인들』에는 아직 발표되지 않은 ‘시인들’의 신작시 일곱 편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한 시인과 한 시인의 만남 이후, 한 페이지만 넘긴다고 바로 다 가실 리 없는 여운에 잠겨, 낯선 시를 읽었고 만났고 품었다. 가슴을 내려치기도 쓸어보기도 다독이기도 하면서. 


김복희 시인의 신작시 「미래의 시인에게」로 문을 닫는 대담은 “읽고 쓰며 살아가(p.9)”는 삶으로 담대히 나아갈 모든 당신을 응원한다. 시를 맴도는, 시로 다가가는, 시가 이끄는, 시로 통과하는, 시를 애호하는 마음을 함께 품은 모든 당신에게 ‘시인들’은 시로, 말한다. 


영원이라는 단어로

경계를 아름답게 놓아버리자.


고통만으로 사라지지 않기 위한

사랑의 문을 부르자,

열려 있어.


나만의 방식으로 허락받을

말을 안에서 만지고 끝으로 살펴보자.



** 세미콜론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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