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해 주는 멋진 말 스콜라 창작 그림책 74
수전 베르데 지음, 피터 H. 레이놀즈 그림, 김여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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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딛는 내 모든 걸음이 실패와 불가능으로만 향하는 기분이 들 때.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나의 노력이 그저 보잘것없게만 느껴질 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나아질 수 있는 내 안팎의 가능성에 고개만 내젓고 있을 때. 이렇게 말했던, 저렇게 행동하지 못 했던 자신이 후회되고 원망스러울 때. 내가 나를 믿지도, 아끼지도, 사랑하지도 못 하는 마음이 되려 내 안의 나를 본래의 나보다 비대하게 만들 때. 나 자신과 내 옆의 당신, 함께 하는 우리 모두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 하고 있을 때. 내가 내 모든 사이의 온도와 밀도를 망쳐버리는 사람인 것만 같을 때.


“난 이상해”, “난 문제야”, “그러면 안 돼”, “또 실패야”, “난 못 할 거야”, “난 왜 이럴까”, “다 나 때문이야”… 


바깥의 계절과 날씨와는 상관 없이 내 몸과 마음이 한없이 움츠러드는 모든 순간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이런 말 안에 쉽게 가두곤 합니다. 나를 낮추고 작아지게 만드는 말들이 나를 설명하고 표현하고 정의하도록,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이런 말 속에 자주 내버려두곤 합니다.


하루 한 번, 거울 속 내 모습을 바라보고서 살며시 미소를 지어주는 일. 애써 그 의도를 생각하고 그 의지를 불러오지 않으면 실천하기 꽤나 어려운 일입니다. 스스로에게 다정하고 친절한 말 한 마디 건네는 일도 마찬가지죠. 못난 나를 향해 모난 말을 던지는 밤은 왜 이리 자주 잦은지요. 지친 몸보다 처진 마음이 더 힘든 밤. 오고야 말 아침에 눈을 뜨는 일이 버겁게만 느껴지는 밤. 스스로를 부정하고 비난하고 평가하는 말들로 인해 우리의 마음은 바깥보다 더 춥고 어두워지곤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밤을 ‘멋진 말’로 채우고 비춰줄 그림책, 나에게 해 주는 멋진 말을 만나 조금은 다행인 겨울입니다. 사실 이건, 지난 몇 주를 지난하게 지나온 제 진심입니다.

 

이 그림책의 원제는 Who I am 입니다. 수전 베르데 작가의 섬세하며 다정한 문체, 피터 레이놀즈 작가 특유의 화려한 색감의 그림체로 전달받는 메시지는 명료합니다. 내가 나에게 들려주는 말이 곧 나를 설명하고 표현하고 정의하는 말이 된다는 것. 그러므로 내 안에서 나를 가리는 말을 잠재우고, 나를 알게 하는 말을 발견해 가자는 것.



내게서 나와서 나를 따스하게 감싸고 단단하게 세우는 말. 내 앞에서, 네 곁에서, 세상 안에서 내가 나로 서 있을 수 있도록 나를 지키는 말. “진정한 내 모습을 보여주고 내가 누군지 알게 해주는” 선한 한 마디, 다정한 한 문장을 매일의 나에게 건네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의도적으로 의지를 갖고서 나에게 멋진 말을 해 주는 그때만큼은, 스스로를 향해 활짝 웃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루 한 번은, 그렇게 내가 나를 지켰으면 좋겠습니다.


🔖“나에게 들려줄 말은 내가 스스로 골라요. 내가 지닌 선한 마음과 내가 해 온 노력을 품은 말을 골라요.”


지금의 나를 긍정하는 . 지금의 나를 응원하는 . 지금의 나를 닮은 . 나에게 주는 멋진 들로 자신을 말하고 만들고 다듬고 가꿔보자 응원하는 친절한 마음이 세상의 모든 색으로 담긴 듯한 그림책과 함께, 오늘의 저는 오늘의 저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 울었어, 그쳤어, 일어났어.”



** 위즈덤하우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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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언젠가는 베스트 세계 걸작 그림책 31
어맨다 고먼 지음, 크리스티안 로빈슨 그림, 김지은 옮김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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쫙 펼친 앞면지를 꽉 채운 쓰레기들. 모두가 아무렇지 않게 버렸기에, 모든 게 아무렇지 않게 널브러져 있습니다. 모든 게 아무렇지 않게 널브러져 있기에, 모두가 아무렇지 않게 그 곁을 스쳐 지나갑니다.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합니다. 거리의 쓰레기 더미를 아무렇지 않은 듯 지나치지 못 하는 한 아이의 눈길을 따라가면서요. 거리의 틈새에서 피어나는 희망을 지키고 키우고 피우는 여러 아이들의 손길을 따라가면서요. 


그렇게 이야기는 책장 밖 ‘바로 여기’로 이어집니다. 보고 듣고 마주칠 때마다 우리의 걸음과 믿음을 무너트리는 현실 속 크고 작은 사회 문제 더미들로요. 어느새 너무도 만연해져 바로 잡고 바꿔야 한다는 분노와 슬픔까지 조금씩 무뎌져 가는 현실 속 작고 작은 우리의 마음들로요.


그러나 이야기는 이렇게 끝나지 않습니다. 체념과 무시라는 쉽고 편한 선택지로부터 등을 돌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최선을 다해 ‘무엇이든’ 기꺼이 하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달라질 거란 믿음을 ‘연대’라는 이름의 현실로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같이 고쳐나갈 수 있다”는 희망과 책임을 일상 속 작은 실천을 꾸준히 지켜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야기는 계속해서 미래로 나아갑니다. 나이와 성별, 인종과 외양, 언어와 출신의 구분 없이 손을 모으고 맞잡은 모든 이들에 의해서요. 각자와 모두의 암울한 현실 앞에 무기력하게 고개 숙이지 않기를 선택한 모든 이들을 위해서요.


“어느 순간 네가 옳다고 믿은 것이 눈앞에 있을 거야. 네가 도와서 바로잡은 것들이 바로 거기에 있어. 처음에는 작았지만 커다랗게 달라져 있을 거야.”

- ⟪무엇이든, 언젠가는⟫ 中





마지막 장면에 적힌 ‘한 단어’의 실현을 꿈꾸는 일.

앞면지를 꽉 채웠던 쓰레기들이 모두 사라진 뒷면지로의 변화를 바라는 일.

이 모두를 “헛된 희망”이라 여기지 않고서 매일의 작은 행동과 더딘 변화를 선택하고 선택해 갈 모든 ‘누군가(somebody)’들에게, 무엇이든, 언젠가는(Something, Someday)은 든든한 응원이자 반가운 선물로 가닿을 것만 같아요. 


저마다의 마음 속에 담긴 희망의 씨앗을 확신하는 ‘어맨다 고먼’ 시인의 글. 그 믿음 위에 모두를 위한 행복과 사랑이라는 꽃을 피워낸 ‘크리스티안 로빈슨’ 작가의 그림. 명료하게 전달받은 용기와 지지의 마음 위에, 최근에 다시 읽은 책 속에서 만난 문장 하나를 올려두며 이 글을 마무리 지으려고 합니다. 어디서든 활짝 필 수 있는 해바라기를, 믿으면서요.


 유일한 희망의 말은모든 것이 변해야 한다이다. 깨버려야 것은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 일이 없다 생각이다.”

- 정혜윤, ⟪슬픈 세상의 기쁜 말⟫ , 위고, p.201-202







**주니어RHK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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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고양이와 수도사 비룡소의 그림동화 327
조 앨런 보가트 지음, 시드니 스미스 그림, 한정원 옮김 / 비룡소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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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봄의 어느 그림책 수업 시간. 그림책 원서 한 권을 함께 펼쳐보며 모두가 한목소리로 감탄한 적이 있었다. 두껍고도 매끄러운 아웃라인, 또렷한 눈망울, 새하얀 색채로 그려진 이 고양이를 어쩌면 좋죠… 아무렇지 않게 수도사의 방에 들어와 아무렇지 않게 자기 일에 몰두하고 있는 이 사랑스러운 고양이를 어쩌면 좋죠… 자신의 조그만 방 안에서 함께 지내는 흰 고양이를 지켜보며 입가에 옅은 호선을 그리는 수도사. 선생님의 나직한 목소리로 수도사의 시를 청해 들으며, 그와 흰 고양이의 모습을 다함께 감상하며, 나를 포함한 몇몇 이들은 이리 말했더랬다. (한숨 섞인 웃음과 함께) 왜 저만 고양이가 없는 거죠…… 왜 아직도 이 책의 한국어판이 나오지 않은 거죠……





지금으로부터 천 년도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시기에 고대 아일랜드어로 쓰인 시 팡구르 반. 21세기의 독자들이 이 오래된 시를 보다 더 평온한 마음으로 만날 수 있도록, 펜의 시 위에 붓의 시를 그려간 시드니 스미스 작가. 그의 익숙한 (그리고 사랑스럽고 사랑스럽고 또 사랑스러운) 그림체로 그려진 흰 고양이와 수도사의 이야기를 마침내 한국어판으로 만날 수 있게 된 겨울날. 생각지도 못한 때에 맞고 맡게 된 이 포근한 기쁨을 품 안에 소중히 끌어안아 본다.





자신의 작은 방을 함께 나눠 쓰는 친구, 흰 고양이 ‘팡구르’를 바라보며 수도사는 한 편의 시를 적어 내려간다. 서로를 방해하지 않고서 각자 몰두하는 ‘일(work)’의 다르고도 같음을 지켜보며 지키는 시를.


같은 밤, 같은 방. 그 안에서 흰 고양이와 수도사가 행하는 모든 ‘동사(verb)’의 목적어는 서로 다르다. 응시하기(stare), 추구하기(pursue), 배우기(study), 사냥하기(hunt), 찾기(find), 기뻐하기(feel joy)… 서로 접하지 않는 평행선 위에서, 둘은 각자만의 시선과 몸짓으로 각자의 무엇을 쫓아간다. 동시에 서로의 무엇을 함께 지켜본다. 서로의 다름을 지켜보는 방 안에서,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는 밤 안에서, 흰 고양이와 수도사는 함께 행복의 이야기를 적어 내려간다. 각자의 기쁨을 모두의 기쁨으로 이을 수 있는 ‘우리’로서의 맥락을 발견하며. 


뒷표지에 담긴 추천사 중에 이런 문장이 있다. “아이들을 차분하게 하고 명상의 시간으로 인도하는 탁월한 잠자리 그림책.”

탁월한 표현의 주어를 내 맘대로 바꾸면서, 이 그림책을 나의 잠자리 그림책장에 살포시 꽂아 넣었다. 하루동안 애써 쌓고 살았던 수많은 동사에 공감 어린 응원을 보내주고 싶을 때마다, 쉽사리 완료형으로 바뀌지 않는 수많은 동사로부터 파생되는 매일의 지난함이 나만의 것이 아님을 확인하고 싶을 때마다, 서로 다른 너와 나의 평행선 위에 희붐한 해(sun/answer)가 떠오르기를 바랄 때마다, 주저없이 꺼내어 펼쳐보고픈 흰 고양이와 수도사. 부디 나의 숱한 밤과 작은 방 안에서, 매일의 수고를 다한 ‘나’를 차분하게 하고 명상의 시간으로 인도해 주길.



** 비룡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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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머무는 자리, 그네 인생그림책 29
브리타 테큰트럽 지음, 김서정 옮김 / 길벗어린이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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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과 이후를 구분 지을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자리.

내게서 사라진 어떤 부재를 오롯이 통과하는 자리.

어떤 상상의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는 자리.

세대와 세대 사이 기억의 끈을 이어주는 자리.

온전한 쉼의 자리이자 충만한 기쁨의 자리.

슬픔을 마음껏 토로하는 자리이자 아픔을 나란히 나눠지는 자리.

계절의 변화를 유유히 느끼며 순간의 무언가를 담아가는 자리.

시간의 흐름을 완전히 잊고서 순간의 무언가에 몰두하는 자리.

무한한 바다를 바라보며 삶에 대한 질문을 무한히 품어가는 자리.

만남과 이별이 켜켜이 쌓여가는 삶의 후경이 되어주는 자리.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고 무슨 일이든 함께 할 수 있는 자리.

오랫동안 잊고 살아왔던 순간의 책갈피가 되어주는 자리.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순간의 가름끈이 되어주는 자리.


저마다의 서사 안에서 단순한 ‘공간’이 아닌 고유한 ‘장소’가 되는 자리, ‘그네’. 160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두께 안에 담긴 것은 편안한 색채로 구현된 삶의 모든 찰나. 그네의 옆과 위, 앞과 뒤에서 그리고 찍어낸 장면들을 하나씩 하나씩 이어본다. 활기차서, 외로워서, 흐뭇해서, 처연해서, 그리워서, 고마워서 아름다운 삶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아름답지 않은 순간에도 아름다울 수 있는 삶을 만난다.


원서의 제목은 단순히 ‘그네(Die Schaukel)’이지만, 김서정 선생님의 번역으로 만나게 된 이 책에는 ‘삶이 머무는 자리’라는 수식어를 품은 제목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쏙 들어간 제목의 자리를 손가락으로 문지르면서, ‘머무른다’는 표현이 머무를 수 있는 아무 곳을 생각해 본다. 누군가에게는 그네, 누군가에게는 산꼭대기의 표지석, 누군가에게는 집 앞 놀이터의 의자, 누군가에게는 강변의 트랙, 누군가에게는 집 근처 카페의 구석진 의자… 어느 마음과 어느 모습으로 머물러도 괜찮은 곳. 혼자여도 함께여도 괜찮은 곳. 멈출 수 있는 곳. 쉬어갈 수 있는 곳. 시작할 수 있는 곳. 언제든 괜찮아질 수 있는 곳. 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곳. 모든 순간의 나를 환대하는 곳. 모든 순간의 나를 영원히 기다리는 곳. 모두에게 똑같은 공간 위에 새겨진, 각자에게 다 다른 장소.


이 작품을 만날 다른 독자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먼저 처음부터 끝까지 그림만 쭉 감상한 다음에, 글과 함께 그림을 다시 감상해 보시길. 그림의 한 장면, 그네의 한 순간에 온전히 ‘머무는’ 시간을 먼저 가져보시길. 그 후 그네 옆에서, 그림 안에서 흐르는 문장의 ‘간결하며 묵직한 감동’을 경험해 보시길.


+


브리타 테켄트럽 작가의 전작 ⟪허튼 생각⟫ 삶을 지키고 세우는질문 책이었다면, 이번에 만나게 신작 ⟪삶이 머무는 자리, 그네⟫는 삶을 돌아보고 돌보는안부 책이라 말할 있지 않을까. 유년부터 노년까지의 생의 장면을 시간 순으로 그리고 담아낸 리사 아이사토 작가의 ⟪삶의 모든 색⟫ 함께, ‘인생 보고 묻고 듣는 '어른을 위한 그림책'으로 권하고 싶다. 지금의 당신이 삶의 어느 맥락 위에 있다 하더라도, 지금의 당신을 외면하지 않는 장면을 만날 거라고. 지금의 당신을 겹쳐보고 싶은 장면을 만날 거라고. 지금의 당신을 둥글게 끌어 안는 장면을 만날 거라고. 작은 메모 하나 덧붙이면서.



*길벗어린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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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브 농장
이민주 지음, 안승하 그림 / 창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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괭이는 세게 내려쳐야 하니까 포르테(f, 강하게)로 그린 걸까.

세발 괭이를 미(E)로 표현하다니, 정말 찰떡인걸.

홀로 밭에 남아 수확의 손길을 마저 기다리고 있는 비트는 마치 8분음표 같아.

수확한 농작물을 가득 실은 트럭에는 비플랫(B♭)이 그려져 있네. 농장에서의 하루를 끝마친 수고를 달래는 노래를 바장조로 연주하고 싶었던 걸까.

밭고랑도, 전신주 사이의 전깃줄도, 지붕 위의 안테나도 모두 오선지처럼 표현되어 있구나.

불 켜진 집 안의 두 사람은 어떤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으려나. 어떤 노래를 들으며 한 마음으로 한 밤을 함께 닫고 있는 것일까.


노란 초승달이 뜬 밤하늘 아래 페브 농장. 숨겨진 보물을 찾아내는 기분으로, 별의 자리를 이은 듯한 모습으로 제목을 표현한 앞표지를 구석구석 천천히 바라보았다. 삶을 음악으로, 음악을 그림으로 담아낸 아름다운 그림책을 이렇게 또 한 권 만나게 되었구나- 하는 기대감을 포근히 끌어안고서.


일상의 빠른 효율이 일반의 바른 정답처럼 여겨지는 도시의 바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주인공 ‘나’. ‘나’는 할머니의 편지를 받고서, 반려견 프레스토(Presto, ‘매우 빠르게’를 뜻하는 음악 용어)와 함께 집을 나선다. 여러 교통수단을 번갈아 타야 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 도착한 곳. 한적한 시골에 위치한’ 페브 농장’이다.


페브 농장에는 이곳에서만 자라는 씨앗이 있다. 그것은 심은 곳곳마다 갖가지 모양의 음표가 쑥쑥 자라나는 신비한 씨앗. 저마다 다른 자리에서 저마다 다른 음표로 자라나 저마다 다른 음을 내는 채소들과 함께, ‘나’는 분주한 낮의 시간을 보낸다. 그러고 나서 찾아온 고요한 밤의 시간. 공통의 검은색으로만 표현됐던 수많은 음표들은 밤이 되자 저마다의 고유한 색과 향을 찾고 갖게 된다. 밤하늘을 밝고 아름답게 수놓은 ‘쉼표’의 빛 아래에서.


한 곡의 음악은 ‘음표’로만 완성될 수 없음을 알아차리게 되는 페브 농장의 밤. 그곳에서 저마다의 색으로 물들어 가는 것은 밭이라는 오선지 위에서 색색의 꿈을 꾸는 열매뿐만이 아니다. 매일의 일상을 이어가기 위해, 매일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심고 채우고 얻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려가는 그림책 안팎의 마음들. 그 또한 저마다의 오선지 위에서 저마다의 색과 향으로 은은히 물들어 간다. 고요히 분주한, 모두의 밤.


클래식 작곡을 전공한 이민주 작가님의 글에 안승하 작가님의 편안한 색채의 그림이 더해져 완성된 페브 농장. “낮과 밤이 함께 만들어 가는 페브 농장의 하루”라는 문장을 오래도록 곱씹어 보며, 충전의 기호와 기회는 일상의 곳곳에 있음을 그림책의 곳곳에서 반갑게 발견하며, 가만히 생각해 본다. 삶이란 오선지 위에서 하루씩 담아내고 있는 오늘의 음표를. 삶이란 오선지 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오늘의 쉼표를. 삶이란 오선지 위에서 그려질, 영원히 눈 감기 전까지는 언제나 미완일 나의 악보를.



+

‘나’와 할머니가 따로, 또 같이 들었을 아름다운 노래는 페브 농장 뒷면지에 담긴 QR코드를 통해 함께 들을 수 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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