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터 한트케의 소설 ‘패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을 읽고 있다. 그러나 읽는 동안 말그대로 불안한 그의 여정을 보기가 괴롭다. 얼마 전 어떤 섬망 환자 아버지를 간호하는 딸의 일지를 본 적이 있다. 한 달이나 섬망 속에서 살았는데 아버지는 그 시간 동안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 했다. 어린이와 폭력배 중간에 있었던 그의 아버지가 보여준 한 달 간의 병실 생활을 어떻게 하나도 기억하지 못 하는 것일까? 섬망이란 이렇게나 무서운 것이구나 싶었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 아버지를 계속 떠올린다. 주인공은 자기의 이 많은 일들을 기억하고 행동하는 게 아닌 듯하다. 여러가지 정신과 질환적 병명이 머리속을 왔다갔다 한다. 의사도 아닌데 의사처럼 그의 행동 하나하나마다 ‘이건 아마 이런 상태라서...’, ‘저건 아마도 저런 상태라서...’ 라며 아무도 듣지 못 하는 해명을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의 이런 반응이 작자의 의도라면 정말 그는 못되기 그지없다고밖에. 좋았던 햇볕과 약간의 땀이 함께 한 산책, 그리고 맛있었던 커피가 모두 머리로 올라가 순간적으로 증발해버리게 만들어버린 작자를 정말로 미워하고 싶다. 그가 결국 보여주려 한 것은 무엇인지, 끝까지 읽어봐야 알겠지만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