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 씨앗 한솔 마음씨앗 그림책 121
이상교 지음, 이소영 그림 / 한솔수북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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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 씨앗>은 이상교 시인이 2019년 발표한 동시집 <찰방찰방 밤을 건너>에 들어있는 작품으로 여기에 이소영 작가의 그림이 더해져 동명의 그림책이 되었다. 이상교 시인은 1949년생으로 197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부문에 입선해 그 후 동시와 동화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것만으로도 존경스러운데 동시를 쓰는 감성과 상상력은 나이를 먹지 않는 건가 싶어 감탄이 또 나온다. <안녕, 나의 루루> 때문에 반가운 이소영 작가는 강한 색감의 수채화로 짧은 동시 한 편을 한 권의 그림책으로 만들었다. 보기에는 짧은 동시지만 한 권의 책이 되기에 충분한 내용이 있는 것인지 짧은 동시에 그림을 더해 책이 될 만큼 풍성하게 만든 것인지는 책을 이렇게 여러 번 읽어도 모르겠다.

 <물고기 씨앗>은 새의 이야기와 새끼 물고기의 이야기, 그리고 동시에는 등장하지 않는 남자 아이의 이야기가 어우러져 있다. 아름다운 그림에 정신이 팔려서 책장을 휙휙 넘기다 보물 찾기를 하는 기분으로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그림에 감탄하느라 내용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다가 뒷면지의 동시를 보고 나서야 '맞다, 동시였지!' 생각이 들어 다시 읽고, 책 표지의 남자 아이가 무얼 보고 있는지 알게 된 후에 다시 읽으니 표지에도 떡하니 나와 있는 이 아이가 계속 등장한다는 걸 그제야 발견했다. 이 아이를 놓친 곳이 있나 싶어 구석구석 살피니 역시나 놓친 장면이 있었고 물 속에 담근 아이의 팔과 다리는 또 한 번 더 읽을 때야 겨우 보였다.

 새끼 물고기는 처음에는 알인지 물방울인지, 불빛인지도 확실치 않아 보였다가 눈만 생겨 동동 떼지어 노는 모습을 보니 얼마 전 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나오는 '와라와라'가 떠올랐다. 공교롭게도 '와라와라'는 다른 세계에서 우리가 사는 세계로 와서 아기로 태어나는 녀석들이다. 이소영 작가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사이에 접점이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상상력의 공통분모가 있는 것 같아 신기했다. 무엇인지 모를 형체에서 눈이 생기고 점점 자라다가 어항 속 새끼 물고기 중 한 마리가 처음으로 지느러미가 생기고 물고기의 모양새를 갖추게 된다. 꼬리 지느러미가 생기는 순간, 본인도 놀라고 주변의 새끼 물고기들도 놀라고 그 모습이 귀여워 웃음이 났다. 그리고 그 놀라움의 순간 만화 같이 '퐁'하고 써넣은 작가의 유머 감각에 한 번 더 웃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답답한 점은 이 새는 도대체 무슨 새인지 궁금해서 못 살겠는데 누구 하나 말을 해 주지 않는다. 그림을 보고 눈치를 채야 할 것 같은데 이 그림을 보면 기러기인가 싶다가 저 그림을 보면 백조인가 싶기도 했다. 새가 물고기 알을 옮겨준다 하니 황새가 아기를 데려다 준다는 이야기가 생각나 황새인가 싶기도 하다가 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모습을 보니 왜가리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당연히 한 종류의 새가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내 상상력의 얕음에 한숨이 나왔다.

 나도 어린 시절 시인이 본 것 같은 물웅덩이를 본 적이 있었다. 물길이 안 보이는데 물고기가 있는 걸 보고 '물고기가 어떻게 여기 있을까?' 의문을 가지다가 정말 'T'다운 결론을 내렸었다. 지금은 이렇게 작은 물웅덩이처럼 보이지만 비가 많이 와서 저 앞에 개울과 연결되었을 때 넘어왔을 거라고, 너무나 과학적인 나에게 흐뭇했던 것 같다. 새로 생긴 물웅덩이 하나에도 시인은 이렇게 책 한 권을 만들만큼 풍성한 상상을 하는데, 아쉽게도 나는 시인의 재목은 아니었나 보다. 그래도 앞으로는 작은 물고기가 헤엄치는 웅덩이를 볼 때 전과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보며 물고기는 어류라는 생각을 하는 어른들에게 더욱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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