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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세 시의 사람
최옥정 지음, 최영진 사진 / 삼인행 / 2017년 12월
평점 :
절판
프롤로그 그대로, 아침바다와 같이 묵언의 안부와 인사를 묻는, 작은 떨림과 설렘이 묻은, 고요하고 간절하게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잔잔한 포토에세이. 바로 오늘 리뷰할 책, <오후 세 시의 사람> 입니다.
사진은 최영진 작가님이, 글은 최옥정 소설가님께서 채워주셨는데요. 두분이 글쎄 남매지간이랍니다. 남매 답게 서로 닮은 사진과 글로 소통하고 서로 닮은 소재로 사람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하는 멋진 분들. 바다가 유년시절부터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는 사진작가님의 노트와 작가님의 사진들을 보면서 아마도 저자 남매는 바다와 섬처럼 잔잔하고 넓은 가슴과 감성을 가지셨음을 확신할 수 있답니다.
본격적으로 책장을 펴서 수록된 사진들과 짧지만 깊이있는 글들을 읽어보면 서서히 복잡했던 마음이 정리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요. 우선 평화와 휴식이 느껴지는 사진에서 평안을 찾을 수 있고, 귓가를 속삭이는 듯 부드러운 문체로 쓰여진 짧은 에세이에서 위로와 공감을 얻을 수 있죠 .
아무 말 없이, 아무 일 없이 있었던 자리 그대로 움직이지 않는 무감의 존재 돌멩이처럼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거미줄이 처진 손가락처럼 무척이나 소란스럽고 흥분되고 바쁜 삶 속에 돌멩이가 되어보고 거미집이 되어보는 시간은 일상의 휴식을 주었고 삶에 또 다른 의미를 선사했지요. 곧 여행을 준비하는 제게 꼭 필요한 덕담도 얻을 수 있었어요.
"여행은 낯선 공기를 마시러 가는 게 아니라 내가 낯선 공기가 되기 위해 가는 거란다. 여행하는 자들은 길 위에서 모두 신이 되거든"
유년시절부터 바다를 동경했다는, 그리고 자신에게 사진은 섬과 같다고 적은 작가의 말처럼 사진 속에서는 특히 바다와 섬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는데 늘 도시의 숨막히는 건물 속 매캐한 연기가 자욱한 풍경만 보다가 이렇게 사진으로나마 여백과 휴식과 여유가 느껴지는 자연의 사진을 보니 한 템포 느린 삶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네요
앞쪽 파트에서는 주로 흑백사진을 접할 수 있었고 뒷 쪽 파트에서 컬러사진도 볼 수 있는데 색이 없으면 없는대로, 있으면 있는대로 자연과 생명과 사물의 아름다움을 한폭의 그림처럼 참 잘 담아낸 것 같았어요.
책에는 세 종류의 오후 세 시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삼 년 전에 회사를 나온 사람. 그는 세 시 경에 정원에 나가 커피를 마시며 꽃과 나무, 사람들을 보곤 하죠. 천천히. 오랫동안 말이죠. 두번째 사람은 작년에 쉰살이 된 중년 여성입니다. 그녀는 처음으로 혼자 앙코르와트로 여행을 갔는데 그 곳에서 느낀 오후 세 시는 하루의 중간이 아니라 비로소 오후의 시작이었음을 느꼈죠. 그리고 세번째 사람은 아름다운 꽃밭을 가진 이웃, 꽃씨가 든 가방을 든 사람, 바람이 가져다 주는 꽃 냄새가 나는 꽃밭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어요. 그에게 꽃이란 곧 시계인지라 오후 세 시가 오전이기도 오후이기도 하죠. 저는 세 사람의 오후 세 시를 보면서 그 애매한 시간이 주는 하나의 쉼표를 발견했어요. 자꾸 특별한 의미를 찾으려고 분투하는 우리네 삶 속에서 애매하면서 무의미할 것 같은 시간은 잠깐 서서 오전을 반추하고, 남은 오후를 바라보게 하죠. 그렇게 오전과 오후 사이의 시간 속에서 반성과 정리를 하기도 하고 새 삶을 향해 나아가기도 하는 것 같아요.
책 마지막 장엔 친히 사진이 찍힌 장소까지 소개해주시고 있습니다. 작가님의 작은 배려들이 돋보이는 순간들이었죠. 너무나 소란스럽고 왁자지껄한 일상 속에서 일시정지 버튼을 꾸욱 누르게 하는 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