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요일
이현수 지음 / 자음과모음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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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이현수님은 각종 소설집 및 장편소설들을 쓰신 베테랑 작가시고, 한무숙문학상, 무영문학상 등에서 수상경력으로 입증된 실력있는 소설가랍니다. 아마 사라진 요일을 읽으시면서 작가의 농익은 문장력과 표현력을 절절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자부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작품에 대한 열정이 있는 진정한 소설가임이 틀림없어요. 일례로 위 프로필 사진은 책 말미에 등장하는 수송기 묘사를 위해 간신히 공간의 허락을 받아서 공군 수송기 탑승 전에 찍은 사진이라고 합니다. 현수님은 이를 두고 꾸역꾸역 미련하게 쓰셨다고 회고하셨지만, 저는 생생한 묘사를 위한 작가의 투혼이 엿보이는 대목이라 생각합니다.

 

이 소설은 액자식 구성을 취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상진의 시각으로 시작하죠. 상진은 동동섬에서 겪은 이야기를 메모에 남겨둔 정원의 후배인데, 정원은 상진에게 이 메모장을 건네주는데 이야기는 이 메모장에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주인공인 정원의 시각으로 박진감 있게 전개되죠.

 

사건은 의문의 편지에서부터 시작합니다. 화톳불, 밀주, 참새구이와 같은 오늘날 도시에서 흔히 사용되지 않는 옛 단어들을 구사하는 의문의 편지 이후 이어지는 두 번째, 세 번째 편지. 짧은 문장 속에서 느껴지는 회한과 복수 심정은 편지를 받은 주인공 한정원의 정신을 불안하게 합니다.

 

그리고 편지의 발신인을 제 나름대로 추적하던 중 생각의 시선은 고향으로 향하게 되죠. 아무래도 편지 속 내용은 도시에서 살아온 사람의 묘사라고 하기엔 어려웠고, 이 정도의 깊은 억하심정을 가질 사람이라면 분명히 옛날부터 쌓아온 분노같은 것이 있을테니까요.

 

그러던 중 우연히 동네에서 마주친 고향 친구 김주희. 그리고 김주희를 만나자 생각나던 사고뭉치 친오빠 한기원. 이렇게 고향에서 맺었던 인물들과 화자의 가족사들이 자연스럽게 펼쳐진답니다.

 

이 소설 속에서 시간과 장소는 유연하게 변하곤 합니다. 정원의 시각에서, 현대의 동동섬으로 이동하기도 하고, 과거 동동섬의 사고난 탄광으로 이동하기도 하면서

등장인물의 범위는 더더욱 확대되죠.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면서 등장인물이 점점 확대될 때 마다 제 머릿속에서는 각 인물의 말투와 표정, 생김새가 상상되었고 공간의 기후와 냄새까지도 나는 듯이 생생했답니다. 그만큼 작가의 분위기 묘사는 탁월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주희의 보챔으로 고향친구들과 동동섬에 입도하게 된 정원. 편지가 고향과 연관되어 있다면 필시 와야 할 공간이거니와 친구들과 함께 온 것이라면 그나마 자연스러울 것이라는 생각에 기어이 이곳에 오게 되죠.

 

물 위에 동동 떳다 하여 혹은 발을 동동거릴 만큼 오누이의 죽음이 안타까워 붙여졌다는 동동섬. 이 동동섬에서 친구들에게 펼쳐지는 이야기는 섬의 이름만큼이나 과연 기이하고 스릴 넘친답니다.

 

동동섬펜션에서 만나게 된 말투가 어눌한 뱃사공과 놀랍도록 동안이자 2년 선배이자 펜션을 운영하는 김경훈. 그리고 과거 아버지가 뒷꽁무니를 따르던 동네 미인였으나 현재 몰골이 굉장히 상한 하마담까지..미스테리한 인물들을 연이어 만나며 편지의 발송인은 누구일까 억죄는 심리 추적은 계속됩니다. 여기서 인물의 심리묘사는 무척 섬세해 읽는 이로 하여금 큰 공감이 되었고, 저 또한 덩달아 조여 오는 공포심과 불안함을 느끼기에 충분했죠. 특히 놀라울 정도로 늙지 않은 김경훈의 동안 외모는 이 소설의 중심 소재입니다. 고향 친구 중 한명인 성형외과 의사 안상협은 경훈이 그저 동안이 아니라, 정말 암이 걸리지 않는 늙지 않는 병 라론 증후군일 것이라는 추측에 도달합니다. 그리고 밝혀지는 의문의 편지의 발신인. 그는 김경훈으로 복수를 위해 이들을 동동섬으로 유인했고, 펜션 내부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해 감시했으며 정체가 어느 정도 밝혀지자 스피커를 통해 자신의 복수 동기를 밝히게 됩니다. 그는 과연 늙지 않는 자신에 모습에 시간이 없다는 느낌이나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가는 라론 증후군 환자였기에 남들처럼 평범하게 늙어가는 것 조차 허용되지 않은데다가 주로 에콰도르의 특정 지역에서만 발병하는 병으로 아시안으로서 굉장한 희귀케이스였죠. 유일하게 그의 여동생이 같은 증후군을 앓으며 힘이 되어줄 존재였으나 일찍이 정원의 친오빠 한기원 때문에 세상을 떠나 의지할 곳이 없어지자 정원에 대한 복수를 결심하게 되었다는 추측이 가능해지죠. 무엇보다 그는 아버지와 인연이 있었던 마태오 신부와 함께 에콰도르로 떠나 같은 증후군을 앓고 있는 자들을 만나고 그 곳에서 외로움을 떨치며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에콰도르로 떠나고 보니 가자고 꼬드긴 마태오 신부의 배후에는 검은 세력이 있었음을 알게 되며 더더욱 자괴감에 빠지게 됩니다. 그 곳에서 주목받는 연구대상이 되었고, 이름이 아닌 코드명으로 불리우며 피를 뽑히고 감금당하며

16년의 세월을 보낸 끝에 탈출한다는 경훈의 과거사가 묘사됩니다.

 

그리고 다시 동동섬. 편지를 보낸이도 알았겠다, 감시를 당하고 있는 것도 알았겠다 이 섬을 빠져나가야 살 수 있다고 의견을 모은 후 숨이 턱턱 차오르는 탈주극이 시작됩니다. 칠흑 같은 숲길을 지나고, 모기와 벌떼를 지나 뒤에서 추격자들이 쏘아대는 총알을 피하며 천신만고 끝에 섬을 빠져나와 정신이 들었을 땐 공군 수송기 안이었고, 여기서 섬뜩한 반전이 전개됩니다. 섬에서 동고동락을 함께 했던 성형외과 의사 동창 안상협과 그의 선배, 또 그 선배의 상부 세력의 검은 속내가 비몽사몽한 주인공의 귓가로 들려오는 것이었죠. 이러한 반전을 위해 작가가 숨겨 둔 복선 구실을 하는 여러가지 발언이나 물건들이 나오는데 다시한번 정독하면서 상협의 발언, 상협이 지니고 있던 물건들의 숨은 의미를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코드명을 누군가에게 깍듯이 보고하며 세련된 차림으로 공항을 빠져나가던 하마담..

섬에서 무척이나 수더분하고 꾀죄죄한 모습으로 전골을 서빙하던 모습과는 완전히 상반된 모습으로 말이죠. 그녀는 과연 가장 미스터리한 인물이었고, 소설가 권여선님의 서평대로 짧은 등장으로도 강렬한 인상을 주고, 기이한 매혹을 주기에 충분한 인물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 이야기는 많은 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고위 권력의 검은 손길, 의학계의 비윤리적 행태, 라론증후군 이야기, 선배의 메모장에 적힌 이야기를 토대로 소설화 시켜 대박을 터뜨린 상진도 예외는 아니죠. 그러나 저는 결국 '삶과 죽음에 대한 상반된 욕망'이 책의 주된 주제였다고 봅니다. 죽음이 두렵지 않을만큼 시간에 대한 제약을 받지 않는 늙지않는 자의 평범한 생사에 대한 욕망과 시간이 흐르는 것, 즉 늙는 것 후에 찾아오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커 돈으로라도 이 두려움을 없애고 싶은 욕망의 versus로 큰 맥락을 구성하고 있지 않나 싶었어요. 크게 보면 결국 삶과 죽음에 대한 상반된 욕망 간의 대결을 읽어나가면서 무엇이 현생을 빛나게 해주는 지, 그리고 어떤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로 살아가고 있는지 저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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