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 - 비극적인 참사에서 살아남은 자의 사회적 기록
산만언니 지음 / 푸른숲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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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지각했다. 나는 이 책을 이렇게 오래 읽게 될 줄 몰랐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오랜만에, 가슴속에 허랑한 공간이 있고, 그 공간은 때로 시리도록 아프며, 누군가가 눈물샘을 슥 잘라낸 것처럼 마음속이 콸콸 차 넘치는 짜고 뜨거운 것이 그 허랑한 공간을 채우고 넘쳐 범람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감히 내가 무엇을 안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내가 상갓집 앞에서 옷깃을 여미는 예의는 가진 사람일 수 있겠구나 싶은 생각으로 이 글을 쓴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연일 애타게 실종자들을 찾는 방송을 본 일이 있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사실 너무 어린 시절이라 삼풍백화점이 있다는 것을 무너지면서 알았지만 백화점이 무너진다는 게 너무 현실감이 없었다. 당장 영등포에만 나가도 으리뻔쩍한 백화점이 몇 개가 있는데, 그런 백화점이 무너질 수 있다고? 그건 저 세상의 얘기 같았다. 어렸으니까. 다만 사람들이 하나씩 구조될 때는 같이 애타고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엄청 아프겠다 싶어서. 어린 마음에도. 그때 살아난 사람들은 억세게 재수 없는 와중에 엄청나게 운이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땐 미쳐 그 뒤로 있을 개인사의 비틀림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그저 살아났다는 것이 대단한 운이라고만 생각했으니까. 이십 며칠만엔가 구조된 사람 이야기도 기억난다. 꽤나 충격적이고, 잔인한 사건이었다. 그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 오늘을 살아가는 나에게 이 책을 건네줄 것이라고는 그때는 상상하지 못했다. 따지고 보면 그리 멀지 않은 나이대의 기억을 공유하는 동년배의 저자의 아픔이, 그가 기억하는 유년기의 연대감을 공유하는 만큼이나, 제 나름의 삶의 무게를 지고 또 사회적 참사와 동심원을 가질 수밖에 없어진 나에게 새로운 아픔과 위로, 그리고 희망과 가능성으로 다가왔다.

세월호 사건이 터지던 해는 내가 교직 생활을 제대로 시작한 지 2년째 되던 해였고, 처음으로 담임을 맡은 해였다. 장난 같았다. 설마. 구하겠지. 2014년인데. 저 많은 사람을 구하지 못할 리가 없잖아. 저 큰 배가 가라앉았는데. 그러나 2014년에, 그 일이 정말로 일어났다. 그것도, 임용 2년 차 후배가 교사로 함께 희생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한층 더 남일이 아닌 일로.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 자리에 내가 있었다면, 우리 반 아이들이 있었다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워지곤 했다. 와중에도 정말 장난치듯이 100명 이상 같이 이동하지 말라는 괴상한 공문만 내려와서 여태까지 이어지고 있다. 300명이 한 번에 죽을까 봐 100명씩 다니라는 소린가? 이걸 대책이라고 내놓은 건가? 황당했다. 우리는 십시일반 돈을 모아 운초우선 교육관에 '전수영 라운지'를 만들었다. 후배들은 알까, 수영이가 누군지.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그 라운지를 만들었는지.

그렇게 '왜'조차 알 수 없는, 이유도 없는 불행에 잠식당한 채 뜨거운 피를 흘린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 차갑게 굳은 피로 인해 역사는 진보해왔다. 그런데 정작 그런 진보의 수혜를 입고 있는 사람들의 피는 차갑게 흐르는 건지 모르기만 하는 게 아니라 막말도 한다. 모를 수는 있다. 아니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자기가 하고 있는 말이 말이 안 된다는 것을, 타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아주 보통의 사람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조금이 생각하기 귀찮아서 아무 말이나 내뱉을 거면 그냥 말을 하지 않는 편이 낫다. '왜'냐는 이유로 설명되지조차 않아서 납득이 되지 않는 불행 앞에서 수많은 개인사는 돌이킬 수 없이 비틀린다. 무엇으로 그것을 보상할 수 있겠는가.

작년에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나는 때로는 억울하고, 때로는 화가 나며, 때로는 두렵고, 때로는 우울하다. 나는 위에 언급한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일을 겪었으나, 개인적으로는 '생존자'라고 생각할 만한 일을 겪었다. 당시에 나를 치고 들어오는, 나를 해치는 생각들을 막아내느라고 나는 정말 온 힘을 다했다. 위의 일들에 비해서 매우 개인적인 일들이고, 다소 파격적인 일이기도 해서 온전히 고스란히 파편을 맞아가며 싸워야 하는 것도 좀 달랐다. 그러나 살기 위해 싸웠고, 떳떳하기 때문에 싸웠으며, 그것을 증명해야 했기 때문에 싸웠다. 기분이 나빠서, 내가 싫어서 세 치 혀를, 손가락을 함부로 놀리는 것은 쉬운 일이었겠지만 누명을 쓰는 일은 너무 억울했기 때문이다. 그 작은 일 조차도 나라는 개인의 서사를 비틀어놓기에 충분했는데, 상상할 수 없는 거대 서사들은 더욱 그랬겠지. 그러나 그래서 조금은 뻔뻔하게, 비틀린 서사를 이해한다고, 생존의 고충을 공감한다고, 그때의 연대의 마음과 손길의 소중함을 너무나 잘 알 것 같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마음이 아니었으면 나도 이 글을 쓰고 있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최근 깨달은 것은 생각하지 않는 편이, 화내지 않는 편이 쉽다는 것이다. 싫은 것은 보지 않고, 봐야 하면 모른 척하는 것이 쉽다. 상처받은 기억은 애써 기억하려 하지 않아도 평생을 따라다닌다. 그러니 굳이 자극하지 않아도 어쩌면 그 존재가 지옥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웠던 것은 선례이기 때문이고, 싸우지 않으면 그저 조용히 잘못한 사람이 되기 때문이었다. 내가 만난 사고와 같은 일이, 보편타당하지 않은 일이, 조용히 한 사람이 뒤집어쓰면 끝나는 그런 일이 되어버리면 안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교육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그러면 안 되는 일이었고, 그래서 더 힘들었다.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소리를 내고, 타인을 이해하며 남의 말을 듣고자 하는 저자에게 존경을 표한다. 그가 말한 연대가 희망이 되기를 바란다. 아이러니하게도 사고를 일으키는 공조조차 하나의 연대라면 그 말에조차 양면이 있을지라도, 저자와 내가 생각하고 살아왔던 동네의 풍경들이, 깍두기를 품어주던 동네의 풍경들이, 말보다 행동으로 진하게 품어오던 위로들이 연대가 되어, 세상의 불행을 덮지는 못하더라도 깜깜한 새벽에 누가 칼을 내밀지도 모른다는 조금의 걱정도 없이 맞잡을 따뜻한 손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 더 나아가서는 저자가 어느 날 바다에 빠져 죽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그녀의 위를 가득 채워준 국밥이, 수녀님이 잔뜩 차려주신 콩비지찌개와 가자미 튀김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끝의 끝에는 다시, 개인주의와 AI와 숨 막히는 세상의 끝에는 다시 연대의 손길만이 희망이리라는 생각을 한다.

사실 이 책은 저자님이 글을 쓰시는 용기에 더불어서 편집자님께서 1년을 공들이신 책이라고 알고 있다. 그 이야기를 어디선가 본 일이 있다. 그래서 내가 푸른숲과 그 시선을 아주 많이 사랑한다고. 감사하다고 꼭 전하고 싶다. 다들 정말 고생하셨고, 감사하다.

#서평 #도서제공 #푸른숲북클럽 #나는삼풍생존자입니다 #산만언니 #사회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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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화의 뒷모습이 좋다 - 이 책을 읽는 순간 당신은 그 영화를 다시 볼 수밖에 없다
주성철 지음 / 씨네21북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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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도서제공 #하니포터4기 #하니포터4기_그영화의뒷모습이좋다 #그영화의뒷모습이좋다 #책추천 #영화 #영화덕후 #영화평론
#주성철
나에게 특이한 영화취향이 있다면 스포 당하고 영화 보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영화를 막 자주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여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영화를 한 번 보는 것으로는 남들이 이러쿵 저러쿵하는 것의 반도 따라갈 수 없이 스토리 자체에 몰입해버리기 때문이다. 노래를 들을 때도 멜로디에 묻혀버린 가사의 막장성에 집중하는 사람이다보니 영화에도 예외는 없다. (예를 들어 #un 의 #파도 는 정말 신나는 개막장이다. 그렇게 신나는 노래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꼭.....가사 한 번 봐주시라.)

서문에서 저자님은 '영화 평론가'라는 것이 전문적 직업의 영역에 있어도 되는지 모르겠다며 전문가라면 남들이 갖지 못한 지식이나 기술을 가진 사람이어야 하는데....라고 말했다. 여기서 알아봐야했다. #주성철 기자님은 진짜다. 이걸 전문가라고 하지 않고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솔직히 책이 막 쉽지는 않다. 내 영화 짬밥이 너무 작아서 그럴 수도 있다. 바쁜 척하느라고 영화를 두 번씩 곱씹어 볼 일이 없었어서, 이러저러한 이유로 보지 못한 영화가 많았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그래서 작정하고 검색해가면서 셀프 스포당해가면서 봤다. 앞모습도 못 본 영화 뒷모습부터 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토리 못지않게 '세계관' 덕후인 국어교사는 이 책이 너무 재밌었다. 야금야금 아껴 먹는 맛이 있는 책이다. 아, 이 사람 영화가 여기서 여기까지 이어졌어? 하는 거. 감독관, 배우관, 장르관, 단편관으로 이어지는 영화 세계로의 초대는 공시적 언어 못지 않게 통시적으로 이어지는 역사와 서사도 사랑해서 두 가지 다 전공한 사람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최근에 #이다혜 #이동진 #주성철 님 등 영화판에 잔뼈가 굵은 사람들의 글의 매력을 느끼고 있는데, #이다혜 기자님이 성큼성큼 걸어가는 통찰력의 글을 쓴다면, #이동진 평론가님은 #지대얇넓 을 보여주는 취향 부자라면, #주성철 기자님은 정말로 너드하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거 하나는 끝판으로 파는 덕후의 냄새가 난다. 감독관, 배우관, 장르관, 단편관 모두 버릴 게 없다. 나보다 본 영화가 많은(영화 덕후라면 당연히 그럴 것이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정말로 더 열광하며 읽을 수 있을 거 같아서 좀 부러워지기도 했다.

그렇지 않아도 충분하다. 찐덕후에게 배우는 세계관으로 좀 찾아보며 접근해서 그 영화를 보는 것도 꽤나 맛난 일일 것 같다. 목차에서 제법 옛날 영화들을 언급해서 어?했는데 알고보니 그때부터 최근까지를 쭉 언급해두어서 방대한 것이었다.

한 사람의 22년 짬바의 덕질을 통해 정신차리면 영화 좀 아는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하나씩 도장깨기 해보고 싶은 영화들도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보고 싶은 영화들도 있다. 정말 간만에, 영화관에서 한 번 본 JSA를 다시 보고 싶다. 나이를 먹은 데다가 이 책을 본 내가 다시 보면 그 영화가 꽤나 다르게 보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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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준비됐어 - 사계절문학상 20주년 기념 앤솔러지 사계절 1318 문고 135
이재문 외 지음 / 사계절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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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 #서평 #서평단 #도서제공 #바깥은준비됐어 #성장소설 #청소년소설

정말 흘러가듯이 산다. 흘러가듯이 살다보니 나이를 먹었고 먹어도 너무 많이 먹어버렸다. 떡국을 두 그릇 먹는 게 아니었는데. 아니 반 그릇만 먹어도 여지없이 나이는 온전하게 하나를 먹어왔다. 가끔은 깜짝 놀란다. 내가 벌써? 아직도 자랄 일이 구만 리 같은데 내가 벌써?

나의 바깥은 준비되었을까. 나는 타고나기를 그렇게 사회성이 좋지도, 친구가 많지도 않다. 제법 다듬어지지 않고 날 것인 탓이다. 그런 사람도 나이를 먹으면 어른이 된다. 그래서인지 마음껏 치열하게 방황해도 괜찮은 아이들의 성장기가 자못 부럽기도 했다.

흔히 중학생들은 매사 너무 진지해서 탈이라고들 한다. 단순한 거 같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감정들과 상황들이 처음이라서, 삶의 무게가 꽤나 무겁다고. 그렇게 대상이 누구든 진짜 사랑을 깨달아가는 성장과, 오해로 밀어냈던 관계 때문에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을 때에도 안으로는 나이테를 늘리듯 성장하며 튀어나갈 준비를 하는 성장과, 어린 누군가의 마음을 알아주는 다른 어린 누군가와, 자기도 모르게 이름값을 톡톡히 하며 성장하는 누군가의 덕분에 오늘도 무사한 누군가와. 그리고 먼 미래에는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대로 존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세상은 그렇게 성장하고 있다고 말하는 누군가의 세상은 정말로 오늘도 옹송그린 듯한 안에서 그러나 치열하게 성장하고 있을 것이다. 나도 성장하는 누군가라서 감히 그렇게 말해준다는 게 주제 넘은 것 같지만, 내가 듣고 싶은 말을 성장하는 이들에게 자신있게 건네줄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깥은 준비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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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는 불행하게 사는 것에 익숙하다 - 마음이 ‘건강한 어른’이 되는 법
강준 지음 / 박영스토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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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도서제공 #사실우리는불행하게사는것에익숙하다 #박영사 #강준 #약사 #심리 #심리상담 #자기계발

“우리가 키워야 하는 것은 ‘아픔을 견디는 인내심’이 아니고 ‘행복해지려고 노력하는 인내심’이다.”

굉장히 인상 깊었던, 1장을 끝내는 말이다. 그럼 행복이 뭔데? 그럴까봐 2장에서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전공이 전공이니만큼 나는 단어의 뜻에 민감하다. 단어의 뜻은 그 뜻이 추상적일수록 100사람에게 물으면 100가지 개념이 나올 만큼, 똑같은 답을 가지고 있더라도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림은 다 다를 만큼 다르다. 이 책에서는 그런 점을 굉장히 명확하게 짚어준다. 그래서 마음이 건강해지고 싶은 어른뿐만 아니라 성장하는 학생들에게도 굉장히 유효할 것 같은 마음 가지치기 지침서이다. 뭔가 막연하고 왜 이렇게 불안한지 모르겠을 때 이 책을 펴면 그럴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착착 펼쳐진다. 이런 구성이라면 작가님의 다음 책 #의사와약사는오늘도안된다고말했다 가 아직 못 봤지만 너무나도 명쾌한 구성일 것 같아서 궁금한 수준...

언어의 모호함 덕분에 우리는 흔히 ‘인내심’을 가지고 ‘겸양의 믿덕’을 갖추고 살아야한다는 말을 오해하고 살아온 것은 아닐까 싶다. 흔히 한국 사람들은 행복을 유예하는 데 익숙하다는 말을 한다. 비단 한국인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유독 우리는 빨리빨리 다음 단계로 가야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진도표에 맞춰 살아가기 위해서 당장의 행복을 사치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었다. 어려서는 대학 가고 어른이 되면, 대학가면 취업하면, 취업하면 결혼하면, 결혼하면 애 낳으면 같은 끝없는 미션에 허덕이며 속하지 못한 사람을 낙오자 취급했던 사회였다. 대체 사람은 언제쯤이면 마음 놓고 행복할 수 있냐는 반문이 충분히 가능했는데 그게 요즘에서야 조금씩 눈에 보인다. 요즘은 소확행, 잔소리 요금표 같은 것들이 생기고 할 말 하고 지금의 행복을 챙기며 살자는 움직임들이 생기며 조금 덜해졌지만, 사실 사는 게 팍팍해져서 그런 면도 없잖아 있는지라 좋은 현상인지는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아니 예전보다 더 막연하고 불안한 청춘들의 발버둥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보면 결론이 이런 나도, 생각보다 불행하고 애잔하게 사는 데 익숙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낮추고, 행복의 기준을 남에게 두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 생각보다 뿌리 깊게, 한국 사람으로 살아온 우리에게는 그게 미덕인 양, 채찍질해 나가야하는 과제인 양 남아있다.

그럼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을까? 저자는 불안에 대해서 그랬듯 행복에 대해서도 제법 명쾌한 답을 제시한다. 당연히 답은 없는 문제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쾌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생각보다 불행에 절여져있는 우리가 ‘이게 맞을까?’ ‘이래도 될까?’ 하고 망설일 때 작가가 서슴없이, 행복은 성공으로부터만 오는 것이 아니라 나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명제를 깔끔하고 간명하게, 그러나 이유 또한 분명하게 이야기해줄 때 오는 안도감이 나에게 그랬듯 독자들에게 덕지덕지 붙어있는 불행의 무게를 톡톡 털어내줄 것이기 때문이다. 불행에 자연스럽게 익숙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꽤나 많이 변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보면서 강준 저자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느꼈는데, 그걸 좀 덤덤하게 말해서 약간 넘사벽의 사람 같았다는 것이 이 책의 유일한 흠결(?)이었다. 나도 그런 사람 될 수 있겠지...? 있을 거야. 멘탈이 건강하고 단단하며 건강한 강준 저자와 같은 친구가 옆에 있으면 꽤나 든든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강준 저자의 친구들이 문득 부럽다.) 물론 그런 저자에게도 내가 그런 친구가 되어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이 책은 혹시나 내게 또 불안 버튼이 눌릴 때, 혹은 내가 습관적 불행을 찾아 허덕일 때 손 닿는 곳에서 얼른 꺼내서 심폐소생술 하듯이 펼쳐보곤 할 좋은 비상약이 될 것 같다.

마음이 힘든 사람이, 혹은 습관적 불행에서 허덕이는 사람이(사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대상자가 꽤 많겠다) 있는데 위로해주고 싶다면-이런 사람들은 주로 무슨 말을 해도 잘 듣지 않아 답답할 때가 많다. 물에 빠진 사람을 무턱대고 앞으로 헤엄쳐 가 구하는 느낌이랄까- 백 마디 말보다 이 책 한 권이 더 힘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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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올 날들을 위한 안내서
요아브 블룸 지음, 강동혁 옮김 / 푸른숲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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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음식 속에 기억이 들어있다고 하면 뭐가 생각나는가?

누가 나한테 이런 질문을 했다면 지난 학기 급식에 나왔던 도라에몽 암기빵이 제일 먼저 생각난다고 말했을 것이다. 영어 시험 전날 구구단이 적힌 암기빵을 주면 어떡하냐는 생각을 했다는 것과 함께.

이 책은 신비로운 책이었다. 일단 처음에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이상하게 시키는 대로 따라오게 되고, 그 다음에는 신기하게 그 퍼즐이 착착 맞춰진다. 책을 읽는 사람의 쾌감. 사람들이 계속 나타나는데 계속 특이하다. 판타지니까 아마도 MZ를 넘어서 코로나 세대를 넘어서도 한참 넘어서 미래의 사람들이라 그런 것일까? 암튼 매력있다. 어느새 진지하게 몰입한 나를 발견하게 된다.

어떤 책에 기억이 담겨있다는 말을 어떤 술 한 잔에 기억이 담겨있다는 말로 치환할 수 있는 상상력. 그런데 사실 우리가 술잔을 앞에 두고 나누는 많은 이야기들은 천일야화처럼 , 때로는 책 한 권보다 엄청난 기억을 공유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실제로 우리는 먹은 것들로 그 날을 기억하기도 하니까 음식에, 특히 술이나 커피에 기억을 담는 판타지는 신선하면서도 현실적인 판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의 기억, 그날의 공기, 그날의 분위기까지 우리는 한 잔에 적셔 마시지 않는가.

최근 기억의 이체(?)에 대해서는 #우리가빛의속도로갈수없다면 의 #스팩트럼 이라든지, 숱한 #AI 관련 책들에서도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그런 일들이 정말로 일어나는 일이라면? 판타지 소설은 정말로 일어나는 일이 아닌 것을 말하기도 하지만 그런 일들이 임박해졌다는 것을 말해주기도 하는 듯하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많은 일들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해도 판타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일들, 설마 그러겠어 하는 일들이기도 해었으니까. 그런데 그런 경험이나 생각의 거래들이 술 한 잔으로 이루어진다면..... 나는 꼭 얻어야 할 기억들이 꽤 많을 거 같다. 그때를 대비해서 돈 좀 벌어두어야하나. 그러나 어쩌면 기억을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은 사람들을 이용할 수도 있다는 것은 자못 끔찍한 일이다. 그 안에서 거래 관계가 성사되는 건 일자리창출일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권력관계의 새로운 형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경험과 시간조차 거래될 수 있다면 말이다. 그럼 시험 같은 것도 의미가 없어지겠지? 어쩌면.

그 와중에 마음 찡한 말 한 마디를 잊을 수가 없어서 적어둔다. "행복해지려면 꼭 알아야할 네 가지가 있어." 그녀가 말했다. 머리 위로 햇빛이 반짝이며 그녀의 얼굴 전체를 비추었다. "딱 네 가지야. 너를 사랑해야만 ㄴ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 네가 사랑해야만 하는 사람도 없다는 것, 너는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 네게는 사랑할 능력이 있다는 것."

그런 소문으로만 존재하는 것 같은, 그게 뭐냐고 물으면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그런 개념들을 위스키 한 잔으로 마셔낼 수 있더라면 그건.

고급 술에 조금은 취해서 이 글을 쓸 수 있게 해주신 소중한 선배님께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남기며 어쩌면 술잔을 앞에 두고 나눈 그 이야기들도 남들이 탐낼 만한 우리의 경험이 되었으리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당신들이 케이크를 먹으면서, 커피를 마시면서, 술을 마시면서 나눈 기억 전부 다.

#서평 #도서제공 #푸른숲 #소설 #판타지 #위스키 #기억 #경험 #다가올날들을위한안내서 #책추천 #북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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