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 - 비극적인 참사에서 살아남은 자의 사회적 기록
산만언니 지음 / 푸른숲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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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지각했다. 나는 이 책을 이렇게 오래 읽게 될 줄 몰랐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오랜만에, 가슴속에 허랑한 공간이 있고, 그 공간은 때로 시리도록 아프며, 누군가가 눈물샘을 슥 잘라낸 것처럼 마음속이 콸콸 차 넘치는 짜고 뜨거운 것이 그 허랑한 공간을 채우고 넘쳐 범람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감히 내가 무엇을 안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내가 상갓집 앞에서 옷깃을 여미는 예의는 가진 사람일 수 있겠구나 싶은 생각으로 이 글을 쓴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연일 애타게 실종자들을 찾는 방송을 본 일이 있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사실 너무 어린 시절이라 삼풍백화점이 있다는 것을 무너지면서 알았지만 백화점이 무너진다는 게 너무 현실감이 없었다. 당장 영등포에만 나가도 으리뻔쩍한 백화점이 몇 개가 있는데, 그런 백화점이 무너질 수 있다고? 그건 저 세상의 얘기 같았다. 어렸으니까. 다만 사람들이 하나씩 구조될 때는 같이 애타고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엄청 아프겠다 싶어서. 어린 마음에도. 그때 살아난 사람들은 억세게 재수 없는 와중에 엄청나게 운이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땐 미쳐 그 뒤로 있을 개인사의 비틀림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그저 살아났다는 것이 대단한 운이라고만 생각했으니까. 이십 며칠만엔가 구조된 사람 이야기도 기억난다. 꽤나 충격적이고, 잔인한 사건이었다. 그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 오늘을 살아가는 나에게 이 책을 건네줄 것이라고는 그때는 상상하지 못했다. 따지고 보면 그리 멀지 않은 나이대의 기억을 공유하는 동년배의 저자의 아픔이, 그가 기억하는 유년기의 연대감을 공유하는 만큼이나, 제 나름의 삶의 무게를 지고 또 사회적 참사와 동심원을 가질 수밖에 없어진 나에게 새로운 아픔과 위로, 그리고 희망과 가능성으로 다가왔다.

세월호 사건이 터지던 해는 내가 교직 생활을 제대로 시작한 지 2년째 되던 해였고, 처음으로 담임을 맡은 해였다. 장난 같았다. 설마. 구하겠지. 2014년인데. 저 많은 사람을 구하지 못할 리가 없잖아. 저 큰 배가 가라앉았는데. 그러나 2014년에, 그 일이 정말로 일어났다. 그것도, 임용 2년 차 후배가 교사로 함께 희생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한층 더 남일이 아닌 일로.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 자리에 내가 있었다면, 우리 반 아이들이 있었다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워지곤 했다. 와중에도 정말 장난치듯이 100명 이상 같이 이동하지 말라는 괴상한 공문만 내려와서 여태까지 이어지고 있다. 300명이 한 번에 죽을까 봐 100명씩 다니라는 소린가? 이걸 대책이라고 내놓은 건가? 황당했다. 우리는 십시일반 돈을 모아 운초우선 교육관에 '전수영 라운지'를 만들었다. 후배들은 알까, 수영이가 누군지.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그 라운지를 만들었는지.

그렇게 '왜'조차 알 수 없는, 이유도 없는 불행에 잠식당한 채 뜨거운 피를 흘린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 차갑게 굳은 피로 인해 역사는 진보해왔다. 그런데 정작 그런 진보의 수혜를 입고 있는 사람들의 피는 차갑게 흐르는 건지 모르기만 하는 게 아니라 막말도 한다. 모를 수는 있다. 아니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자기가 하고 있는 말이 말이 안 된다는 것을, 타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아주 보통의 사람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조금이 생각하기 귀찮아서 아무 말이나 내뱉을 거면 그냥 말을 하지 않는 편이 낫다. '왜'냐는 이유로 설명되지조차 않아서 납득이 되지 않는 불행 앞에서 수많은 개인사는 돌이킬 수 없이 비틀린다. 무엇으로 그것을 보상할 수 있겠는가.

작년에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나는 때로는 억울하고, 때로는 화가 나며, 때로는 두렵고, 때로는 우울하다. 나는 위에 언급한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일을 겪었으나, 개인적으로는 '생존자'라고 생각할 만한 일을 겪었다. 당시에 나를 치고 들어오는, 나를 해치는 생각들을 막아내느라고 나는 정말 온 힘을 다했다. 위의 일들에 비해서 매우 개인적인 일들이고, 다소 파격적인 일이기도 해서 온전히 고스란히 파편을 맞아가며 싸워야 하는 것도 좀 달랐다. 그러나 살기 위해 싸웠고, 떳떳하기 때문에 싸웠으며, 그것을 증명해야 했기 때문에 싸웠다. 기분이 나빠서, 내가 싫어서 세 치 혀를, 손가락을 함부로 놀리는 것은 쉬운 일이었겠지만 누명을 쓰는 일은 너무 억울했기 때문이다. 그 작은 일 조차도 나라는 개인의 서사를 비틀어놓기에 충분했는데, 상상할 수 없는 거대 서사들은 더욱 그랬겠지. 그러나 그래서 조금은 뻔뻔하게, 비틀린 서사를 이해한다고, 생존의 고충을 공감한다고, 그때의 연대의 마음과 손길의 소중함을 너무나 잘 알 것 같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마음이 아니었으면 나도 이 글을 쓰고 있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최근 깨달은 것은 생각하지 않는 편이, 화내지 않는 편이 쉽다는 것이다. 싫은 것은 보지 않고, 봐야 하면 모른 척하는 것이 쉽다. 상처받은 기억은 애써 기억하려 하지 않아도 평생을 따라다닌다. 그러니 굳이 자극하지 않아도 어쩌면 그 존재가 지옥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웠던 것은 선례이기 때문이고, 싸우지 않으면 그저 조용히 잘못한 사람이 되기 때문이었다. 내가 만난 사고와 같은 일이, 보편타당하지 않은 일이, 조용히 한 사람이 뒤집어쓰면 끝나는 그런 일이 되어버리면 안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교육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그러면 안 되는 일이었고, 그래서 더 힘들었다.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소리를 내고, 타인을 이해하며 남의 말을 듣고자 하는 저자에게 존경을 표한다. 그가 말한 연대가 희망이 되기를 바란다. 아이러니하게도 사고를 일으키는 공조조차 하나의 연대라면 그 말에조차 양면이 있을지라도, 저자와 내가 생각하고 살아왔던 동네의 풍경들이, 깍두기를 품어주던 동네의 풍경들이, 말보다 행동으로 진하게 품어오던 위로들이 연대가 되어, 세상의 불행을 덮지는 못하더라도 깜깜한 새벽에 누가 칼을 내밀지도 모른다는 조금의 걱정도 없이 맞잡을 따뜻한 손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 더 나아가서는 저자가 어느 날 바다에 빠져 죽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그녀의 위를 가득 채워준 국밥이, 수녀님이 잔뜩 차려주신 콩비지찌개와 가자미 튀김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끝의 끝에는 다시, 개인주의와 AI와 숨 막히는 세상의 끝에는 다시 연대의 손길만이 희망이리라는 생각을 한다.

사실 이 책은 저자님이 글을 쓰시는 용기에 더불어서 편집자님께서 1년을 공들이신 책이라고 알고 있다. 그 이야기를 어디선가 본 일이 있다. 그래서 내가 푸른숲과 그 시선을 아주 많이 사랑한다고. 감사하다고 꼭 전하고 싶다. 다들 정말 고생하셨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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