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상처는 솔직하다 - 아픔을 딛고 일어선 청소년들의 살고 싶다는 고백
멘탈헬스코리아 피어 스페셜리스트 팀 지음 / 마음의숲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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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상처가 다른 상처에게.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햇수로 11년째 가르치면서, 정말이지 다양한 상처를 마주했다. 어떤 때는 마음 깊이 공감한다고 생각했는데 내 답이 섣불렀고, 어떤 때는 손을 내민다고 했는데 그만 깜빡 깎지 못한 손톱이 아이의 마음을 할퀸 적도 있었다. 무심코 내민 손이 아이를 살리기도 하였으며, 정말이지 내 삶이 벅차 허우적대는 동안에 손을 놓쳐버리기도 했다. 똑같은 시그널이 어떤 이에게는 빛이, 어떤 이에게는 어둠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이 책이 너무나도 궁금했다. 필요했다. 사실 상처란 무엇보다 솔직하지만 그 모양이 너무나 개별적인 탓에, 그리고 그 상처를 숨길 수 있는 깊이 또한 너무나도 다른 탓에, 그리고 그 상처를 볼 수 있는 내 눈이 너무 흐릿한 탓에 가끔은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막막해 길을 잃어버리곤 했다. 누구보다 먼저 아이들의 상처를 보아주어야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은 늘 하지만 그게 너무 어려웠다. 사실 나는 나란 사람의 상처도 감당하기 쉽지 않은 연약한 인간이 아니던가.

그러고보니 그랬다. 사실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는 가르치는 아이들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는 내 안에 웅크린 내면아이의 모습도 다시금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가끔 아이들에게 하는 많은 잔소리들이 가끔은 내게 하는 말이어서, 내 기준과 생각으로 이해한 세상을 토대로 하는 조언이기 때문에 당연히 나에게 하는 말일 수밖에 없어서 내게 하는 말 같아 찔릴 때가 많았다. 그러고보면 내 안에도 사실은 아이들과 같은 아이가 산다. 이 책에서는 흔한 가정의 폭력적인 면들을 상처로 내면화한 아이라든지, 혹은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서 자신을 불태워버리는 아이라든지 하며 상처를 직면했던 지난 날의 자신을 담담한 언어로 털어놓는 멘탈헬스코리아 청소년 피어 스페셜리스트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연약한 인간에, 방어기제가 잔뜩 작용하여 예민회로에 뇌절 버튼이 걸려버린 대가리 꽃밭 상태의 내가 해줄 수 있는 말들보다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훨씬 더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정말로 피냄새가 물씬 나는 싱싱한 상처의 이야기. 그것을 언어화한 상처에서 떠낸 치료약과 같은 이야기. 어설프게 '내가 해봐서 아는데'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아파본 사람들이 언어라는 도구를 가지면 얼마나 강하고 폭신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 그 와중에 학교에 대한 불신과 어른에 대한 불신들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고 내가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어른이자 인생의 친구로서 해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를 생각하게 하는 것, 피흘리는 아이들의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를 좀 더 그들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담담하지만 묵직한 이야기.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끊임없이 실수하고, 그리고 여전히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럴 때마다 이 책을 들여다보겠다. 아이들을, 나를, 그리고 내면 아이를 품은 타인들의 서사와 인과를 이해하기 위해서. 혹여나 우연한 시간에 나를 포함한 그들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기 위해서.

부족한 나의 백 마디 말보다 이 책 한 권이 아이들에게 더 큰 위로와 희망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 내미는 어른이 되리라 결심하였으며, 상처를 풀어낼 언어라는 도구를 더 열심히 아이들의 손에 쥐어주리라 다짐하게 한 귀한 시간이었다. 혹시 주변에 마음이 아픈 청소년들이 있거나 혹은 외면한 내면아이가 있는 많은 어른들에게도 이 피어스페셜리스트들의 특급처방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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