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작은 가게에서 어른이 되는 중입니다 - 조금 일찍 세상에 나와 일하며 성장하는 청(소)년들의 이야기
박진숙 지음 / 사계절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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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년 전쯤에 교생 실습을 했었다. 별로 형편이 좋지 못한 동네(?)에 위치한 부속 고등학교로 교생 실습을 나갔을 때, 자취를 하고 있던 동기들이 치킨 배달을 시켰는데 자기 반 학생이 찾아왔더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아이들은 밤에 배달을 하고 낮에는 학교에서 잠을 잤다. 별달리 버릇이 없는 아이들도 아니었다. 첫날부터 이유없이 교생 담당 선생님의 눈밖에 나서 학년 대표로 고생하고 있던 나를 반겨주고 의자를 챙겨주던 살가운 아이들이었다. 아이들과 상담을 하면 "꿈은 없고 회사에 다니며 평범하게 살고 싶어요." 같은 말을 했다. 그땐 나도 어렸어서 아...그렇구나 하면서 속으로 '야, 평범하게 사는 게 쉬운 줄 아니.' 같은 생각을 했다. 그때 나는 평범하게 산다는 것이, 백조가 물에 도도하게 떠있기 위해서 물 아래서 발이 보이지 않도록 발을 젓는 것 같은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몇 장 읽다가 문득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처음에 나는 책 제목을 처음 보고 뭣도 모르는 아이들이 열악한 노동 현실 속에서 뜨거운 세상을 배워가는 이야기인 줄 알고 한창 책을 노려보기만 했다. 물론 그런 얘기긴 했는데 좀 결이 달랐다. 그런 열악한 노동 현실 속에 그대로 날것으로 던져질 아이들을 자신의 안온함을 던져가며 단지 몇이나마 구해낸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니 교생을 나갔을 때, 나는 정말로 철없는 소리를 했었다. 배달일을 하면서 당장 필요한 돈을 벌고 학교에서 잠을 자는 아이들이 안타까워서. 밤마다 열악한 형편의 노동 환경에서 목숨을 걸고 오토바이를 타는 아이들이 안타까워서. 배달일을 하면 월급이 내내 오르지 않지만 지금 조금 버텨서 공부를 하고 실력을 저축해서 더 큰 돈을 벌면서 살면 좋지 않겠냐고. 그런 하나마나한 소리를 그때 그렇게 했었다. 그 아이들에게는 '미래의 꿈'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생활'이 중요했다는 것을, 나는 몰랐다. 책으로만 보장적 평등 같은 걸 달달 외웠을 뿐(사실 교육학을 별로 안 좋아하기는 했다.)이었다.

책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외로운 길을 부모님이 사준 '나이키'신발을 신고 걷는 어린 젊은이, 브랜드 없는 '운동화'를 신고 걷는 이, 부모님이 밤새 정성스럽게 짜준 '짚신'을 신고 가는 이, 아예 그런 형편도 되지 않아 '맨발'로 걷는 어린 젊은이들이 경쟁하고 걷고 있을 때, 맨발로 걷는 이는 주변을 살피며 무엇으로 계속 걸어갈 수 있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을까요? 우리 사회의 소득 양극화가 더욱 심화하면서 불행하게도 나이키를 신은 이가 걷는 길은 '타탄트랙'처럼 평탄한 길인데, 운동화를 신고 걷는 이의 길은 '자갈밭' 같은 길이고, 맨발로 걷는 이의 길은 '갯벌 진흙탕'과 같은 험난한 길일 개연성이 매우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맨발로 갯벌 진흙탕 길을 걷는 어린 젊은이는 무엇으로 꿈과 희망을 지탱해갈 수 있을까요? 걸어가는 방향과 목표를 잃지 않고 어떻게 계속 걸어갈 수 있을까요?", "우리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나 질문을 던져볼 수 있을 것이다. 맨발로 갯벌 진흙탕을 걷는 젊은이와 나이키 신발을 신고 평탄한 길을 걷는 젊은이가 도착하는 곳은 같을까? 비록 맨발로 갯벌 지늙탕을 걷더라도 결과가 같다면 그래도 희망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교육의 역하라 중 하나였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의 종착역이 각각 다르다는 사실을 잘 안다."
최소 운동화는 신고 자갈밭 이상은 걸었을 내가 하는 말이 그 아이들에게 얼마나 상처가 되었을까. 그리고 고작해야 나와 5~6살이나 차이났을 아이들이 지금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 아이들은 고등학교는 졸업해야한다는 압박까지도 지고 있었던 아이들이었는데.

책 초반부에서 읽어낸 저자 선생님인 씩씩이님의 진심은 정말이지 전심이었다. 그간 나름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던 스스로도 저렇게나 전심으로 나를 던져본 적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일터에서 만난 아이들을 위해 오롯하게 생각과 계획을 짜고 전심을 던져 실패했기 때문에 그는 마침내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 장미빛 미래가 아니라 맨발을 진흙탕으로 건너지 않는 안온한 현재임을, 그 현재가 지속되기를 바라는 늙은 미래임을 깨닫고 아이들과 한 방향을 바라보며 고민할 수 있는 참 스승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기 때문에 숱한 실패와 헛발질 끝에도 남은 몇 명의 아이들의 변화를 함께하고, 그 아이들이 이 일이 자신의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가짜 일'인지 자신을 던져넣어야 할 '진짜 일'인지를 고민하게 하고, 자신의 안온한 일상을 던져 함께 모험할 작은 조각배에 동지들을 태우고 출발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영원한 것은 없어서, 가게가 네이버 지도에는 표기되지만 얼마 전 영업을 종료했다는 글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안타깝게 그 숭고한 현장을 눈으로 마주하지는 못할 공산이 커졌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이라면 어디선가, 또 무슨 새로운 엄청난 일을 하고 있을 것 같다. 아주 따뜻하고 안온한 현재를 이어나가고 있을지도, 혹은 조금 쉬고 더 엄청난 배를 만들어 동지들을 태울지도, 이해와 변화의 씨앗이 되기 위해 자신을 던져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적어도 안온하게 뭣도 모르면서 고작 학급 일 열심히 시켜놓고 간식이나 밥 사주면서 "얘들아, 나중에 어디 가서 절대 공짜로 일해주고 그러지 마. 꼭 응당한 대가는 받으렴." 이라는 소리나 하면서 좀 괜찮은 소리 했다고 뿌듯해하는, 미래를 위해서만 행복을 유보하지 말라는 얘기하면서 좀 멋진 얘기했다고 뿌듯해하는 쪼랩 운동화러인 나보다 훨씬 더 뜨겁고 쓸모있게 말이다.

문득 생각했다. 내게도 그런 제자들이 있다. 흔들리는 제자들도 있고, 숱하게 떨어져나가는 아이들을 보고 마음을 부여잡을 때 옆에서 나를 부축해 일으켜주고 시원한 물 한 잔을 내미는 제자도 있다. 다 제가 잘한 덕인데 선생님 덕분이라며 매년 찾아오는 아이들도 있다. 미숙하고 뜨겁고 컨트롤되지 않았던 나라도 누군가에게는 그런 선생이었을 수 있었다. 마침 교사로서의 나의 방향을 고민하고 있을 때, 나의 지지부진한 방향 고민에 문득의 기름을 붓고 불을 붙여준 작은 책의 큰 열정 덕분에 내 통시적 서서와 공시적 시야를 돌아보게 되었다. 교실에서 뜻하지 않게 생각지도 못할 많은 상황과 학생들을 마주칠 선생님들께, 그때 미숙한 열정과 경험해보지 못한 삶들에 대한 서툰 재단으로 나중에 후회하고 싶지 않은 선생님들께, 이 책을 진심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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