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1 | 12 | 13 | 1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이토록 행복한 하루 - 포토명상, 길상사의 사계
이종승 글.사진 / 예담 / 200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서관 서가를 무심히 훑다가

만난 이 책이 우연인지 인연인지,

우연이란 이름의 인연인지

덕분에 제목처럼 행복한 -하루는 아니라 해도-

한 때를 보낸다.

마침 길상사를 갔을 때가 부처님 오신 날이라

북적이는 사람들 틈에서 넋놓고 있다가

분명 아름답고 고즈넉했을 절의 향기를

마음껏 맡지 못한 것이 내내 아쉬웠었다.

사진 속 길상사는 법정 스님의 칼 날같은 얼굴만 빼면

여느 절이나 다름 없는 풍경이지만

도심 한 가운데 자리한 산속 같은 모습이

수녀님과 수사님과 추기경님과 함께 한 스님만큼이나

낯설고 이채롭다.

사진도 예쁘지만 글만 써도 좋을 사진기자의 글솜씨가

압축적이서 가슴에 와닿는다.

 

깊이 절하는 아주머니의 사진과 나란히 이런 구절이 있다.

"벌거벗는다고 인간이 자연스럽지는 않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한 채 부처님께 오롯이 온 몸을 바치는 행동이

더 사람답고 자연스럽습니다. 설사 절밖에서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여러 가지를 걸쳤다지만 대자대비하신 부처님 앞에 서면 모두 필요없는

것들입니다. 부처님 앞에서 치장은 오히려 자신을 되돌아보는 데

걸림돌만 될 뿐입니다. 속박에서 벗어나니 본연이 모습이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마당을 줄무늬를 그리며 정성껏 쓰는 스님께 그 이유를 물으니 이런 답이 나온다.

"아무도 가지 않은 눈 쌓인 길을 걸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그런 길은 함부로 가는 게 아닙니다.

왜인지 아십니까? 마음자리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여 가지런히 줄이 그어진 경내를 함부로 신발을 끌고 걸어갈 수는 없다고,

뒤를 돌아보면 내 발자국이 너무도 부끄럽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청소를 하도 잘해 속세에 청소부였느냐는 소리를 듣는 스님은 마당에 수북히 쌓인 낙엽을

솜씨 좋게 태우시고 잔불 정리를 하시며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그 많던 것이 타니 다 재라... 다 재라." 

 

늦가을 길상사의 마른 잎새에서,

싱싱한 푸른 잎을 자랑했던 젊음이 만지면 바스락 소리가 날 듯

물기 하나 없는 몸뚱아리로 늙어가는 나를 보는 듯하여 숙연해진다.

 

소녀같은 얼굴로 법당에서 시를 낭송하시는 이해인 수녀님이

이렇게 읊고 있다.

 

"작지만 옹졸하지는 않게

평범하지만 우둔하지는 않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데샹보 거리
가브리엘 루아 지음, 이세진 옮김 / 이상북스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어디서 많은 봤던 작가다 했더니

몇 년 전 느낌표라는 프로그램에서 선정한 <내 생애의 아이들>이

그녀의 작품이었다. 

사람들이 다 사는 책과 사람들이 다 보는 영화는

절대 공유하지 않는 비비꼬인 심사 탓에

별로 신경쓰지 않았던 작품이었다.

 

헌데 표지가 예쁘고 딱딱한 감촉도 싫지 않고

뭐- 세월이 많이 흘러 세상 관심 밖으로 밀려난 작가이기에

한 번 쯤 봐줘야 한다는 의무감도 있고 해서

들추기 시작한 책.......

 

소풍을 갈 때마다 보물 찾기에서 한 번도 보물을

찾아보지 못한 아픈 기억이 되살아 났다.

왜?

땅속 깊이 묻혀 있던 보물을 캔 느낌이었으니까.

초기작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고

단편집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18편의 단편은 프티 아가씨를 연결끈으로

줄줄이 하나가 된 장편과 다름없고

초기작이라고 하기엔 너무 절묘한 비유와 담담한 시선과

유머와 눈물이 어우러져 있어

행복한 미소를 절로 머금게 한다. 

캐나다에 사는 프랑스 가족의 꼬마 아가씨

식민지청에 근무하는 아빠와

어딘가 비현실적이면서도 생활력 강한 엄마,

고집세고 사연 많은 8명이나 되는 언니 오빠,

황량한 빈터에 하나씩 둘씩 들어와 집을 짓고 이웃이 된

세계 각국의 이민자들이 

어우려져 만들어내는 행복과 슬픔과 모험과 인생이

참 우리네 사는 인생을 돌아보게 한다.

꼬마의 머리에서 나오는 생각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어른스러운 

깨달음들을 거쳐 우리의 주인공 아가씨는 어느 사이 어른이 되고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선 어엿한 교사가 되어 황량한 붉은 도시에 부임을 한다.

이제부터 그녀가 경험하는 일들은

다시 한 편의 작품이 되어 이미 우리 앞에 펼쳐져 있다.

<내 생애의 아이들>

 

........ 그래서 어느 사이 나는 그 책을 들추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남자의 탄생 - 한 아이의 유년기를 통해 보는 한국 남자의 정체성 형성 과정
전인권 지음 / 푸른숲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많은 리뷰가 올라왔고, 거기에서 칭찬한 이 책의 장점들에는 동의한다. 남성들의 갇힌 세계와 그 세계에서 반복 양산 되는 한국 남성의 시스템 분석이 매력적이었다. 다만 한 가지, 이 책의 목표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한국을 대표한다고 생각되는 평범한 (?) 한 남성의 개인사를 통해 조명해 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정체성을 조명하는 수단이, 다시 말해 패러다임이 서양적이라는 사실이 자꾸만 눈에 거슬렸다.

저자가 사용하고 있는 페러다임은 크게 두 가지의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한 가지가 정신 분석이고 또 하나가 기독교이다. 물론 이 자리에서 패러다임의 옳고 그름을 따질 수는 없을 것이다. (감히 어떻게?!) 다만 동양적인 문화를 서양의 패러다임에 억지로 짜맞추어 넣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고, 남성의 세계와 여성의 세계라는 책 전체를 일관하는 이분법적 사고 역시 이런 서양식 도구에서 나오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절반까지는 흥미진진한데 후반부부터 자꾸만 반복되는 느낌이 드는 것 역시 그 원인이 이에 있지 않을가 생각되었다. 보다 동양적인 내음을 풍기고, 한국인의 정체성을 배태시킨, 그래서 거꾸로 한국인의 정체성에서 나온 페러다임의 제시가 아쉬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1 | 12 | 13 | 1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