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서가를 무심히 훑다가 만난 이 책이 우연인지 인연인지, 우연이란 이름의 인연인지 덕분에 제목처럼 행복한 -하루는 아니라 해도- 한 때를 보낸다. 마침 길상사를 갔을 때가 부처님 오신 날이라 북적이는 사람들 틈에서 넋놓고 있다가 분명 아름답고 고즈넉했을 절의 향기를 마음껏 맡지 못한 것이 내내 아쉬웠었다. 사진 속 길상사는 법정 스님의 칼 날같은 얼굴만 빼면 여느 절이나 다름 없는 풍경이지만 도심 한 가운데 자리한 산속 같은 모습이 수녀님과 수사님과 추기경님과 함께 한 스님만큼이나 낯설고 이채롭다. 사진도 예쁘지만 글만 써도 좋을 사진기자의 글솜씨가 압축적이서 가슴에 와닿는다. 깊이 절하는 아주머니의 사진과 나란히 이런 구절이 있다. "벌거벗는다고 인간이 자연스럽지는 않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한 채 부처님께 오롯이 온 몸을 바치는 행동이 더 사람답고 자연스럽습니다. 설사 절밖에서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여러 가지를 걸쳤다지만 대자대비하신 부처님 앞에 서면 모두 필요없는 것들입니다. 부처님 앞에서 치장은 오히려 자신을 되돌아보는 데 걸림돌만 될 뿐입니다. 속박에서 벗어나니 본연이 모습이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마당을 줄무늬를 그리며 정성껏 쓰는 스님께 그 이유를 물으니 이런 답이 나온다. "아무도 가지 않은 눈 쌓인 길을 걸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그런 길은 함부로 가는 게 아닙니다. 왜인지 아십니까? 마음자리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여 가지런히 줄이 그어진 경내를 함부로 신발을 끌고 걸어갈 수는 없다고, 뒤를 돌아보면 내 발자국이 너무도 부끄럽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청소를 하도 잘해 속세에 청소부였느냐는 소리를 듣는 스님은 마당에 수북히 쌓인 낙엽을 솜씨 좋게 태우시고 잔불 정리를 하시며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그 많던 것이 타니 다 재라... 다 재라." 늦가을 길상사의 마른 잎새에서, 싱싱한 푸른 잎을 자랑했던 젊음이 만지면 바스락 소리가 날 듯 물기 하나 없는 몸뚱아리로 늙어가는 나를 보는 듯하여 숙연해진다. 소녀같은 얼굴로 법당에서 시를 낭송하시는 이해인 수녀님이 이렇게 읊고 있다. "작지만 옹졸하지는 않게 평범하지만 우둔하지는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