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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끈 - 성장 그림책
이브 번팅 글, 테드 랜드 그림, 신혜은 옮김 / 사계절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어쩌면 이처럼 짧은 스토리로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솔직한 느낌이다. 새엄마를 인정하고 받아들여하는 예민한 시기의 소녀가 겪게 되는 감정의 흐름이 이 한편의 길지않은 글로써 너무나도 섬세하게 표현되어있다. 기억의 끈이라...어느 누가 인생살이를 하면서 유형이든 무형이든 그마만한 기억의 끈을 소유하고 있지 아니한 사람이 있을까? 때로는 힘든 고난의 현실앞에서 고통의 장벽을 뛰어넘게 만드는 위로자로서, 때로는 현실을 부정하고 기억의 이면에 숨어 안식하고픈 도피처로서 우리 모두는 기억의 끈과 뒤엉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로라는 돌아가신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기억의 끈을 통해 예전 엄마와 교감을 나눈다. 사실 그 교감을 나누는 대상은 돌아가신 엄마가 아니라 어쩌면 자기 자신이리라. 고양이 위스커스는 로라에게 있어서 자신이 만든 또 다른 자기로서 분신이라 할 수 있겠다. 로라는 새엄마의 존재가 바로 현실임 눈앞에서 목도하고 있으면서도 위스커스에게 기억의 끈에 대해 얽힌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다. 알아줄리 만무한 고양이 위스커스에게..."내 기억의 끈 이야기를 나한테 할 순 없잖아. 네가 여기 있어 줘야 해." 자리를 뜨려는 위스커스를 움켜쥐고 자신의 몸쪽으로 바짝 끌어당기며 말한다. 위스커스가 바로 로라가 만든 로라의 분신임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로라는 분명 옛엄마와 새엄마 사이에서 힘든 과정을 겪고 있다. 아빠는 그다지 위로가 되어 주지 못하고 있다. 사실 이 상황에서 딱히 아빠의 역할도 분명해 보이지 않는다. 다만 그 힘든 현실에서 그것을 받아들이고 이겨내야 하는 주체가 되어야 할 이는 바로 로라 자신이라는 사실만이 분명할 따름이다. 어찌보면 모든 환경은 이미 조성되어 있다. 가족을 사랑하는 아빠와 로라를 배려하고 기다려줄 수 있는 새엄마. 이제 감정으로 완전한 동의를 이루는 한 가족이 되는 열쇠는 로라가 쥐고 있는 셈이다. 여기 위스커스 아니 또하나의 로라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바로 기억의 끈, 로라를 내면의 혼돈 가운데 머물도록 발목을 잡고 있던 그 기억의 끈을 끊어버리는 것이다.
수년전 개봉했던 영화 '캐스트 어웨이'가 생각났다. 비행기 사고로 무인도에 표류한 주인공이 배구공을 사람 얼굴로 꾸미고 '윌슨'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외로움을 달래는 한편 생존과 탈출의 의지를 다지고 결국엔 탈출에 성공한다는 영화이다. 그 주인공이 땟목을 만들어 무인도에서 탈출할때 높은 파도에 윌슨을 잃어 버리게 되었을때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윌슨을 구하기(?) 위해 바다로 뛰어드는 장면이 나온다. 자칫 자신의 생명을 잃게 될 지 모르는 상황에서 주인공은 윌슨을 포기하고 다시 땟목으로 돌아온다. 그렇다. 그러한 분신은 힘들고 고통스런 현실에서 도피하거나 극복할 수 있는 기폭제는 될 수 있을 지언정 결국 그곳에 안주하려는 자신을 버릴 때 비로서 참된 승리,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졌었다.
로라 또한 자신이 겪고 있는 정체성의 혼란이라 할 수 있는 무인도와 같은 고립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기억의 끈을 끊어내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기가 의미부여한 또 다른 자기자신 위스커스의 도움으로 말이다. 로라와 같은 처지에 놓인 아이들에게도 따뜻한 메시지를 전해줄 뿐만 아니라 신뢰가 무너지고 뭐 하나 기댈곳 없는 각박한 현재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잔잔한 감동과 성장의 메시지가 넘치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