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명원 화실 비룡소 창작그림책 35
이수지 글 그림 / 비룡소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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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내 그림이 맨 처음으로 뽑혔습니다. 미술 시간 끝날 무렵엔 언제나 선생님이 교실 뒤 벽에 걸릴 그림들을 뽑는데, 내 그림은 한번도 빠지지 않았지요. 아이들의 부드러운 시선이 내 뺨에 닿았습니다. 하지만 그게 뭐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고요. 나는 어떤 그림이 '뽑히는 그림'인지 잘 알고 있거든요. 이렇게 대단한 걸 보니, 아무래도 나는 화가가 될 운명인 것 같습니다.  명원화실  '그래. 훌륭한 화가가 되려면 진짜 화가를 만나야 하는 거야!'

 

화가에게 자신이 얼마나 그림을 잘 그리는지 보여주고 싶어 소녀는 학교에서 그린 것과 똑같이 그림을 그린다. 기대에 찬 얼굴로 화가에게 그림을 보여주니 '내일은 몇시에 올거니?'하며 한마디 묻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다음날 바가지와 해바라기와 수도꼭지, 포도송이를 그리게 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얼마나 그릴 것이 많은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세상을 뚫어지도록 열심히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나요. 그렇게 열심히 살펴본 것이 내 마음속에 옮겨지면, 그걸 조금씩 조금씩 그려 나가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바가지 안에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는 알쏭달쏭한 말도 했습니다. 사물을 관찰하고 완전히 이해하고 내것으로 만들어야 자신의 그림으로 재탄생된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하다.

명원화실의 화가는 한번도 이렇게 해야 한다거나 저렇게 해야 한다고 한적이 없다. 그저 그리는 것을 묵묵히 바라보며 지켜볼 뿐.... 야외 스케치를 나간 어느날, 물 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를 들여다보고 있자 화가는 물을 그려보라 한다. '물은 색깔이 없는데 어떻게 그린단 말이지?' 말이 없자 화가는 연못에 무엇이 보이느냐고 묻는다. 이끼가 잔뜩 낀 녹색 바위, 물살을 가르는 물고기의 노란 등 무늬, 물위엔 소금쟁이가 떠다니고 낙엽도 있고 파란색의 하늘도 보인다. 아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그러고 보니 연못 안에 참 많은 것이 있다. "그렇게 물 속에 잠긴 것, 물위에 뜬 것과 물위에 비친 그 모든 것들이 물을 물처럼 보이게 만드는 거야. 그것이 물을 그리지 않고서도 물을 그리는...." 그랬다. 화가는 답을 말해주기 보다는 스스로 발견하고 관찰하고 느끼게 해 보여지기 위한 그림이 아닌 가슴으로 그리는 그림을 가르치고 있었다. 이 대목이 나는 왠지 참 좋다. 물위에 비친 그 모든것들이 물을 물처럼 보이게 만드는....

생일날 화가로부터 세상에서 처음보는 카드 한장을 받는다. 색색으로 하나 하나 점을 찍어 만든 그림인데 점들 사이로 하늘도 있고 언덕도 있고 새도 보이는 그림이었다. 자꾸 보면 볼수록 많은 것들이 보였다. 무수한 점들이 빛 속에서 흔들리며 햇살도 만들고 구름도 만들고 바람도 만들고 노랗고 파란 점들이 훨훨 날아올라 춤을 추고 있는 듯했다. 그 그림을 보고 있자 소녀는 목이 따끔따끔하고 가슴이 막 아프고 가운데배가 저릿저릿했다. "이 작은 그림이 이렇게 나를 아프게 하다니... "

얼마후 명원화실은 누전으로 불이 나서 자취를 감춘다. 생일 카드의 작은 그림을 볼때마다 소녀는 목이 따끔따끔함을 느낀다.

"내 그림도 누군가에게 이런 따끔따금한 느낌을 줄 수 있을까?"

"학교 미술 시간에는 다른 아이의 그림이 먼저 뽑혔고 내 그림은 교실 뒤 벽에 아주가끔씩만 걸렸지요.

하지만 이제 나는 내 그림이 뽑히든 안뽑히든 상관없어요."

 

소녀는 더이상 그림을 잘그렸다는 평가에 대해 중요시하지 않고 그림을 그리는 본질에 대해서 더 가치를 두게 된다. 이런 것을 느끼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참 행복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진짜 화가를 만나서 바라보는 시각과 나아가야할 방향성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이것은 비단 그림뿐 아니라 삶의 방향성과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한다. '스위스의 가장 아름다운 책', '뉴욕 타임스 우스 그림책'에 선정된 책 답게 많은것을 생각해보게 하는 매력이 있는 책이었다.

나는 항상 화가나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에 대해서 동경을 하곤 한다. 그들은 분명 예리한 관찰력을 갖었을 것이다. 사물을 관심있게 바라보고 입력하고 느끼지 않으면 나오기 힘들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다. 내 주변의 사물들을 제대로 관찰하고 여유있게 바라봤던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알멩이가 없이 껍데기만 번드르르하게 살려고 애쓰고 있진 않은지 생각해보게 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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