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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
나희덕 지음 / 달 / 2017년 3월
평점 :
클럽달 6기의 마지막 도서 '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가 도착했다.
나희덕 산문집.
아마도 수많은 시와 시집으로 만났던 작가일 것이었다.
장석주 시인이 쓰신 산문집이 정말 좋아서 엄청 기대가 되었다!
점심을 먹고 도착한 책을 보고, 기쁜 마음에 산책길에 들고 나갔다가 푸름푸름 넘치는 교정에서 찰칵!
표지사진과 정말 잘 어울리는 풍경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 멀미가 너무 심해서 버스에서 엄마가 봉지를 턱에 대고 있어야할 정도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멀미가 사라져 버스는 애정하는 독서의 장소가 되었다.
책은 아마도 작가님이 직접 찍으신 사진과 그에 알맞는 에피소드들이 담겨져 있다.
사진이 참 좋았다.
대충 찍은 것 같으면서도 이야기에 맞는 사진을 잘 배치해두었다는 것은 찍은 사진이 많거나,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사람일 것 같았따.
요즘 글을 읽으며 드는 생각은 작가님들은 정말 작가이구나 싶다.
쉬이 읽히는데, 또 뒤돌아 생각하게 된다.
가볍게 쓴 것 같으면서도 여운을 남겨 자꾸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
산책하듯 기분 좋게 읽히는 글들이 많아 좋았다.
p.52
"대상을 이해할 수는 없어도 사랑할 수는 있다"는 영화 대사처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이해할 수 없는 시계를 사랑하는 일밖에 없었다.
p.91
이처럼 뒷모습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동시에 아주 많은 것을 말해준다. 무엇보다도 뒷모습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세상에 넘치는 거짓과 위선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그나마 정직하고 겸손할 수 있는 것은 연약한 등을 가졌기 때문이다. 뒷모습을 가졌기 때문이다.
p.112
새들의 집은 아주 작고 가볍다. 특히 대지에 뿌리내리지 않아도 되는 물새 둥지는 수초처럼 늘 흔들린다. 새들의 자유는 이렇게 정주의 욕망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게 아닐까. 왜 인간은 대지에 뿌리내리는 일로부터 한시도 자유로울 수 없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저녁이면 수많은 창문들을
올려다보며 그런 질문을 던지곤 했다.
p.136
이솝우화가 있다. 옛날에 행복과 불행이 함께 살았는데, 행복보다 힘이 센 불행은 행복을 보기만 하면 못살게 굴었다. 행복은 이리저리 피해다니다가 더이상 피할 곳이 없어서 하늘로 날아올라갔다고 한다. 그후로 이 지상에서는 행복을 좀처럼 볼 수 없게 되고 불행은 넘쳐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제우스는 행복에게 이렇게 말했다. "세상 사람들은 행복을 좋아하고 기다리고 있으니, 너희가 여기서만 살 수는 없지 않느냐, 그러니 여기서 갈 곳을 잘 보아두었다가 하나씩 하나씩 내려가도록 해라. 행복을 얻을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로."
p.159
소혹성 B612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의자를 당겨 석양을 바라 보았던 어린왕자처럼 머리에 작업등을 매달고 땅을 파내려가는 그의 고독한 왕국이 어둠 속에서 빛났다.
나무와 숲, 그리고 사물들과 참 잘 어울리는 책이었다.
나희덕 작가님의 사물과 동물. 그리고 사람 혹은 책에 대한 사유가 정말이지 마음에 들었다.
연구년을 마치시고 큰 괘종시계를 가져오시던 구절은 참 인상 깊었다.
뭔가 괘종시계라는 사물에 의미를 부여해주고, 숨을 불어넣어주시는 듯한 느낌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고흐, 안네, 프란츠에 대한 이야기도 좋았다.
모두 짧은 생을 살았고, 시대에 인정 받지 못한 사람들이라 더욱 와닿았다.
고흐가 살았던 오베르 쉬즈 오아즈에 갔던 적이 있었다. 까마귀가 나는 밀밭에 서서(사실 그땐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계절이라 밀이 하나도 없었다)
고흐는 정말 미쳤다고 생각했다. 이 하늘과 밀밭과 그리고 까마귀. 또는 그 공기를 고흐의 그림으로 표현했다니, 미쳤다는 말밖에는.
퇴근길에 위에 사진 두장을 찍었다.
책을 손에 들고 퇴근하는 나에게 친한 지인이 책이 참 이쁘네요 :) 라고 해줬다.
그래서 지친 하루 퇴근길에 뭔가 위로가 되었다.
곱씹어 또 읽고 싶고, 만나뵙고 싶은 작가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