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가죽소파 표류기 - 제3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작
정지향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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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상처를 주는 사람한테 일부러 더 실없이 농담하고 모든 걸 다 가볍게 하려고 해. 요조처럼. 그래서 우리의 이상한 동아리에도 들어갔던 거고.(32)’


비가 왔다 그친 후, 작은 방을 가득 메운 습기. 허벅지를 철썩 붙게 하는 진득이는 장판. 그 위에 누워 새하얀 천장을 바라본다. 직육면체 모양의 각진 공기가 날 내리누르고, ‘대학생이란 말을 곱씹어 본다. ‘20’, ‘청춘이란 단어가 함께 딸려온다. 마지막으로 가장 좋은 시절이란 의심스러운 덕담이 필수적인 향신료처럼 첨가된다. 피식 웃는다. 자취방의 적막이 내 속을 마구 휘저어 놓는다. ‘일부러 더 실없이 농담하고 모든 걸 다 가볍게 하려고하는 요조가 내 웃음에 동조한다. ‘가장 좋은 시절에 우울하면 안 될 것 같아 가시를 세우고 나를 보호한다.


초록 가죽소파 표류기는 대학생이 쓴 대학생에 관한 소설이다. 나 또한 대학생이고, 때문에 이 소설 속 대학생들의 모습이 특출하게 무료하고, 우울하고, 불안한 형상이라고 느껴지진 않는다. ‘20’, ‘청춘’, ‘가장 좋은 시절이란 말과 어쩌면 가장 멀리 떨어져있다고 볼 수 있을 대한민국의 대학생들. 지금도 축축한 공기 속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쥐고 있을, 그 수많은 대학생들. 가족문제와 인간관계, 취업난, 여행, 사랑과 우정 같은 키워드 속에서 골머리 앓는 이들을 어떤 이야기와 어떤 언어로, 어떤 새로운 국면을 맞게 하여 어떤 행동을 하게 할까, 하는 문제를, ‘대학소설상의 수상작가가 능수능란하게 해결했다. 어쩌면 대학소설상이 원했던 이야기는 바로 우리의 이야기였던 건지도 모른다.


소설은 민영이 찾아옴과 함께 시작되고, 민영과 요조가 방을 떠남과 함께 끝난다. 언뜻 보면, 이것은 민영의 고아의 도시방문기다. 또 언뜻 보면, 세 친구의 결합과 불가피한 해체를 이야기하는 것도 같다. 하지만 작가는 천연덕스레 이것이 그들의 여행이라고 주장한다.

 

그러고 보면, 민영은 그저 고아의 도시로 여행을 온 게 아니었어. 그애가 나에게로 여행을 데려온 거야.(72)’

 

셋이 지내기엔 좁은 방에 초록 가죽소파가 있다 치고, ‘카우치 서퍼민영이 들어왔다. 그리고 여행이어쩌면 표류라고 밖에 말할 수 없을시작되었다. 고아의 도시를 구석구석 돌아보고, 서울의 후원에 갔다가 연못에 둘러앉아 날밤을 새기도 한다. 무슨 고급 노천탕처럼 동네 목욕탕에 몸을 담근다. 민영은 요조와 에게 또 다른 고아의 도시와 또 다른 서울을 선사한다. ‘여행을 데리고 왔다는 표현이 이보다 어울릴 수 없다. 남겨지거나 남을 남겨두고 왔던 고아들에게 평소와는 다른 해류가 닥친 것이다. 바다 한가운데 남겨져서 표류하는 그들에게선, 이상하게도, 땅에 정착해있을 때와는 다른 묘한 생기가 느껴진다. 요조와 민영이 떠난 후, ‘는 생각한다.

 

눌러뒀던 생각들이 봇물처럼 터졌지. 민영과 요조가 모두 떠나고 나면 나는 방안에서 뭘 해야 할까. 학기가 시작되고 도시로 나갔던 아이들이 모두 돌아오면 나는 그 사이에서 어떤 모양으로 걸을까. 그들을 만나기 전에 내가 어떻게 시간을 견뎌왔는지 생각이 나질 않았어. 고작 일 년 전의 일인데 말이야. 새벽에 혼자 방에서 깨어났을 때 문득 나와 연결된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을 어떻게 버텼는지. 수업이 끝난 뒤 이 도시와 서울의 낯선 동네들을 아무렇게나 걷다가 해가 지는 하늘을 봤을 때 그리운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을 어떻게 버텨왔던 건지.(113-114)’

 

그래, 어떻게 버텨왔던 걸까. 그때는 모든 것을 남겨두고 온 였고, 이제는 남겨진 . 요조, 민영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문득 문득 떠오를 것이고, 왜 더 이상 그렇게 살 수 없는 것인지, 슬플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그리운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대신 그리워 할 것이고, ‘나와 연결된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대신 삼각형의 꼭짓점에서 민영과 요조에게 전화를 걸 것이다. 그들의 표류는 성공적이었다. 소설의 마지막, ‘당신과의 화해처럼 말이다. 언젠간 나도, 민영에게 소파를 내어주고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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