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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의 이야기 - 영미 여성 작가 단편 모음집
루이자 메이 올콧 외 지음 / 코호북스(cohobooks)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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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과 편견이 만연한 시대에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위트와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갔던 그녀들의 이야기. 때로는 신랄하고 때로는 따스한 문장을 읽고 있으면, 뭐랄까.. 엄마 미소를 짓게 된달까ㅎ 문학성 쩌는 대작들은 아닐지 몰라도, 이렇게 묶여 나온 것만으로도 뭉클한 감동을 주는 빛나는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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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혈육이 아니냐
정용준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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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이 물음울음이 달라 보이지 않는다.(274, 작가의 말)

 

작가의 말을 읽고, 책을 덮으며 소설집의 제목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 이것이야 말로 물음이자 동시에 울음이었다. 혈육이 아니냐고 묻고 있었고, 혈육이 맞다고 울고 있었다. ‘물음울음이 달라 보이지 않는 언어, 그것이 한글이고, 한국인의 한이라는 생각을 했다. 가족과 혈육이라는 애증의 족쇄 아래서 울고, 또 묻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 그래서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속 소설들은 어떤 실재적인 질척거림과 날카로운 상처를 안고 무거운 발을 질질 끌며 우리에게 다가온다.

 

어째서인지 소설집 속 소설들이 개별적인 작품이 아닌 하나의 거대한 장편처럼 느껴진다. 장편이라는 표현이 과장이라면 옴니버스식 영화 한편을 본 느낌이랄까. 독립된 이야기보다는 그 속의 여러 장면들이 마치 영화장면처럼 머릿속을 떠나질 않는다. 이를테면 474의 그가 푹 쪄낸 꽃게를 먹는 장면 같은 것 말이다. 그 꽃게는 그냥 도 아니고 찐 꽃게도 아니며 반드시 푹 쪄낸 세 마리의 꽃게여야 했다. 그것을 성실히 발라먹고 손가락을 쪽쪽 빨며 …… 맛있군요. 정말이지 최고로 맛있었습니다.’(36)라고 진지하게 말하는 살인자의 모습은 정말이지 잊히지 않는다. 정용준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동시에 그에 정확히 걸맞은 이미지를 입힌다. 장황하고 수려한 묘사는 일절 없지만, 읽다보면 우리들의 머리보다 몸이 먼저 수긍을 해버린다. 그 냄새, 그 감촉, 그 기운. 오감을 들썩이게 하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이야기가 있는 것처럼 그의 소설은 우리들의 에 가까이 있다.

 

어느 작품 하나 경쾌하거나 웃기지 않다. 희망을 암시하며 끝나지도 않는다. 인물들은 자신을 찾아온 과거의 무언가를 견디고, 혹은 그것과 맞서 싸운다. 누군가를 결국 죽이더라도, 쫓아버리더라도, 승자와 패자는 없다. 단순히 혈육이기 때문일까. 실은 우리들의 모든 관계는 다 이 모양인 게 아닐까. 소설은 끝나더라도, 그 무엇도 완결되지 않는 현재진행형일 뿐이다. 어딘지 모를 역에서 내려 집으로 향하는 방향으로 걷고(내려), 숨이 끊기는 영원 같은 십 분을 기약하고(개들), 아버지의 유물인 허기 속에서 계란을 우물우물 씹으며(우리는 혈육이 아니냐) 끝나는 소설들은 그 무엇도 결정짓지 않은 채 매 순간을 마감하는 우리의 삶과 비슷하다. 그래서 위안이 된다. ‘아니야. 네가 한 게 아니야. 내가 알아. 네가 한 게 아니야.’라는 아버지의 말에 아들이 느꼈을 안도와 와 눈을 마주쳐주는 아버지에게 또 다른 아들이 느꼈을 벅차오름처럼(이국의 소년), 그것은 분명 희망은 아닐지언정 뚜렷한 위안이다.

 

정중히 말하지만, 정확히 핵심을 찌르는 그의 문체는 그의 이야기의 행보와 손발이 척척 들어맞는다. 삶에 대한 의욕 따윈 없지만, 기어코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할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그의 시선은 놀랍도록 냉철하고 정확하다. 사실, 그래서 따뜻하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부풀리고, 미화하고, 감동으로 승화시키는 뻔뻔한 신파와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그가 좋다. 몸으로 말하는 이야기, 누구라도 수긍하고 느껴버릴 수밖에 없는 정확한 삶의 묘사에 어느 독자라도 위안을 얻고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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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 제2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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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그믐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뒤에 실린 권희철평론가의 수상작가 인터뷰에 의하면 대의를 위한답시고 결국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무언가를 허무하게 잃고 난 뒤에야 광기 어린 발작 끝에 천하의 악당이 되었다가 끝에 가서는 실망스럽게 회개해버리는무협지의 등장인물에 어울리는 이름’(178)이다사실 이보다 두 배는 더 긴 묘사인데너무 길어서 전략.슬픈 마음으로 입술을 깨물며 책을 읽어냈건만작가 이름에다가 이런 드립을 치면 독자들은 언제 울었냐는 듯 깔깔 웃어버리게 된다맞다장강명전장에서 장비와 함께 투포환을 휘두르며 비열한 적들을 몰살시킬 것 같은 그런 이름인데실제로도 문학계라는 전장에 나와 투포환을 휘두르며 상들을 휩쓸고 있다잠깐 눈 한 번 감았다 뜨면그가 또 뭔가 상을 받았다하니이 땅에서 함께 소설을 쓰는 것도 아닌 내 마음에 작은 질투와 커다란 부러움을 불러일으킨다.(심사평 중 이기호 소설가의 말을 빌려보았다.)


그를 처음 만난 작품은 한겨례문학상을 받은 표백이었다심상치 않은 제목의 이 소설은 심상치 않은 파격적인 내용과 묘사로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내게 잊지 못할 충격을 선사했다그리고 다시문학동네작가상을 받은 그믐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이하 그믐)은 역시나 심상치 않은 제목을 지니고 있으나 표백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와 심상으로 나를 압도했다표백이 지나치게 날카로웠다면그믐은 지나치게 너그러웠다그리고 이들 지나침은 내가 가진 기존의 세계관을 허무는 지나침이었기에반드시 필요했고또 좋았다.


그래서 그믐의 지나친 너그러움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우주 알이 들어온 다음, 남자는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추리소설과 SF를 좋아하던 평범한 소년은 살인을 하고온갖 풍파를 겪은 뒤우주알을 품게 된다그래서 그런지 이 남자, SF적으로 너그럽다아주머니의 칼을 받고살아남은 자들을 위해 진실보다 이로울 거짓을 퍼뜨리는 남자는정말이지 우주알을 품었을 때만 가능한 인물군상이며때문에 우주알의 역할은 소설 속 너그러움의 원액 수준이랄까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런 지나친 너그러움은 우리가 세계를 보는 획일화된 패턴을 비틀어 볼 기회를 제공한다남자를 너그럽게 하고아주머니와 여자를 너그럽게 끌어안는 우주알말 그대로 이 소설의 핵심 이다.

 

사람 잔인하게 짓밟고 괴롭히고영훈이가 아주머니 닮아서.

소설 속 여자의 역할은 무엇인가남자와 연애를 하는 상대역임에도 불구하고 아주머니보다 특별한 임팩트를 주지 못한다다만, ‘이래서 여자가 필요했군!’을 느낀 장면이 있다면 바로 여자가 아주머니에게 상식적인 화를 마구 퍼붓는 장면이다우주알에 힘입어 상식적이지 못한 너그러움으로 서사를 이끌어가다가 드디어 독자를 배려해 사이다를 콸콸 쏟아주는 기분이랄까그러고 보면 여자가 인상 깊지 못한 인물이었던 이유는 다른 두 인물에 비해 지나치게 상식적이고 평범했기 때문일 것이다. ‘가족이라는 상처를 지니고출판사에서 이래저래 깨지는 그녀는 우주알을 품지도 못했고아들을 잃지도 않았다그저 우리의 모습이다. ‘우리는 상식적이고 평범하게 남자를 위해 변호하고 화를 내고 그를 위해 울어 줄 수 있을 뿐이다이상적인 너그러움과 인간적인 너그러움이 잘 조합됐기에이 소설의 너그러움은 지나치면서도 우리를 울리고 만다.

 

난 널 다 용서한단다가슴으로 낳은 내 아들이라고 생각해.

마지막으로이 아주머니를 어떻게 이해해야할까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아마 책 속에서 가장 흥미진진하게 읽히는 부분을 꼽으라면 바로 아주머니가 나오는 대목이 아닐까 싶다. ‘아들’ 운운하며 남자를 걱정하고 챙기면서한편으로는 무척이나 잔인하게 남자의 앞길을 막으려 애쓴다아이러니한 점은 그렇다고 그녀의 따뜻한 모습이 거짓이나 위선가식으로 느껴지진 않는다는 점이다그저 왜 저럴까하는 의문과 약간의 안쓰러움약간의 불편함을 남길 뿐어쩌면 우린 모두 한낱 인간이기에서툴렀던 것뿐일 테다자식을 죽인 살인마에 대한 증오와 용서라는 거의 불가능한 사명이 섞이고 섞여 곤죽이 되어버린 진심 속에서 진실을 건져올린다는 것이어쨌든 확실한 건아주머니가 하는 말들은 모두 진심이었다는 것그래서 우린 그녀를 미치광이로 치부할 수 없었고이런 결말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살인마라고 단정하는 대신 두 손을 모으게 된다이런 저런 이유로 이 소설참으로 너그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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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팔로 하는 포옹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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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혁 첫 연애소설집이라는 광고 문구를 보고 까무러칠 뻔했다. ...김중혁이 연...연애소설을...? 작은 박물관 같은 골방에 들어앉아 돋보기안경을 쓰고 악기라던가 스케이트보드 같은 물건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분해하고 조립할 것만 같은 인물들은 모두 어디가고, 연애라니? 그의 장인정신, 발명정신도 결국 시린 옆구리 앞에서 무너지고 마는 것인가! 울상을 짓던 난, 책의 제목과 표지를 보는 순간 이 모든 걱정이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표지는 여전히 김중혁스러웠고, 제목은 미친 듯이 좋았다.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이라니. 반쯤의 농담과 반쯤의 비애를 적절히 섞어서 참으로 따뜻했다. 찌는 여름, 쨍한 하늘색 커버 속으로 풍덩 안기고 싶은 느낌이랄까.

 

비록 연애소설이라지만 여전히 그만의 장인정신을 뽐낸 작품들이 많았다. 큐레이터와 화가의 이야기인 종이 위의 욕조라던가, 미지의 비행물체를 하늘 빼곡히 띄운 보트가 가는 곳, 시계 장인의 긴 시간을 담은 요요, ‘그렇지! 이게 내가 알던 김중혁이지!’ 싶었다. 연애와 발명의 요소를 적당히 버무리니, 김중혁만이 쓸 수 있는 연애소설이 나온 것이다. ‘김중혁 첫 연애소설집이라는 문구가 의미 있어지는 이유였다.

 

이 세계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잘 다뤄지지 않았던 삶의 다양한 이면을 포착한 점도 이번 소설집의 묘미였다. 이를테면 맨 첫 작품인 상황과 비율은 포르노제작회사와 그 속의 사람들을 밀착취재하면서, 표지처럼 순수하고 아기자기한 연애소설을 기대한 독자들을사실 내가 제일 당황했다적잖이 당황시켰을 것이다. 자동차보험단이라는 조직과 이별을 겪은 남자의 고통을 엮은 힘과 가속도의 법칙도 세상에 분명히 존재할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눈길이 갔다. 사랑의 설렘 또는 고통이 인물과 직업(세계)이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속에서 의미를 형성하기도 한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는 서사들이었다.

 

가장 좋았던 작품은 표제작인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이었다. 완벽히 내 취향일 뿐이니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고 말하진 않겠다. 다만 작품 속 모든 인물들이 지독하게 슬펐고 그들을 모두 껴안아주고 싶어서 오래 기억에 남는다. 알콜 중독 전남친에게 더 이상 해줄 말이 없는 정윤도, 할 말은 차고 넘치는데 더 이상 아무도 앉아주지 않는 앞자리를 바라보는 규호도, 그리고 엎어야할 술자리는 엎고야마는 우리의 멋진 피존씨도. 모두 행복할 자격있는 좋은 사람들인데 슬플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 슬펐고, 그 슬픔을 대화위주로 진솔하게 전달하는 작가의 필력 또한 놀라웠다.매소설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폭죽처럼 터뜨리던 아이디어뱅크 김중혁의 또 다른 진면모를 발견했달까. 이를테면 이런 문장들 앞에선 정말이지 가슴을 부여잡게 된다.

 

그런데 그거 알아? 아무런 애정 없이 그냥 한 번 안아주기만 해도, 그냥 체온만 나눠줘도 그게 한 사람을 살릴 수도 있대. 나는 그때 네가 날 안아주기를 바랐는데, 네 등만 봤다고. 등에는 가시가 잔뜩 돋아 있었고.’(96)

 

그렇지, 이게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이지. 동물적 욕구이고 위선일 뿐이라며 비난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건 그저 체온이고 한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우린 결국 동물이니까. 춥다면 체온을 나누며 살아야하는 생명일 뿐이니까. 연애를 이제 시작하려는 사람은 가짜 진짜로 바뀔 수 있으니, 연애를 막 끝낸 사람은 포옹 위로가 될 터이니, 우리 모두 포옹을 해야겠다. 아직은 가짜 팔이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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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제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정지돈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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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작가상을 처음 만난 건 4년 전 센트럴시티 고속터미널의 영풍문고에서다. 그때 난 지방으로 내려갈 교통비와 5000원 남짓의 밥값만을 가지고 있었는데, 책을 살 돈은 없었지만 커다란 대형서점의 서가 사이를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니고 있었다. 5000원으로 무얼 먹고 버스에 탈까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때 발견한 게 2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이다. 단돈 5500원에 김애란을 비롯한 여러 소설가들의 젊은 소설은 물론 그에 딸린 해설까지 읽을 수 있는 엄청난 기회였달까. 굶주린 배를 안고 그 책을 샀다. 한창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던 고등학생 때였고, 집으로 돌아오는 고속버스 안에서 독서등에 비춰가며 책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여전히 출간 후 1년 동안은 5500원인 이 수상 작품집은 올해로 6회째를 맞는다. 매해 4월 말이면 서점을 기웃거리곤 했는데, 그때의 바람과 온도, 습기, 서점에 가던 상황 같은 것이 작품집마다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것 같다. 올해는 무척 바쁠 때 책이 배달되어 왔다. 바빠서 정신도 없는데, 대상작이라는 정지돈의 건축이냐 혁명이냐는 내 정신을 더욱 혼미하게 했다. 그래서 표제작이자 대상작인 이 낯선 작품 이야기는 일단 미뤄둬야겠다.

 

먼저 눈에 띠는 건 손보미였다. 2012년 대상 수상을 시작으로 4년 연속 수상이라는 점은 이 작가의 역량이 젊은 작가라는 나이제한을 뛰어넘고 있다는 증명이 아닐까 싶다. 그녀의 소설엔 모든 일이 괜찮을 거라 믿는, 실제로 겉보기엔 아주 괜찮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거기엔 모든 것을 베어 버릴 만큼 날카롭고 미세한 균열이 조금씩 손아귀를 뻗쳐 나간다. 이번 수상작 임시교사에서도 폭우산책에서처럼 자식을 사랑하고 가정을 화목하게 유지하는 것에 민감한 중산층 부부가 등장한다. 하지만 그 초점이 조금 다르다. 본래의 균열이 내부에서 일어나고, 그것을 감지하는 인물 또한 울타리 속 균열의 희생자가 될 내부인이라면, 임시교사에서는 철저히 외부인일 뿐인 P부인의 초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게다가 P부인은 그냥 외부인도 아니고 임시적인 외부인이다. , 내부인의 말 한 마디에 외부인조차 할 수 없을 수도 있는 완전한 타인인 것이다. 경계와 배제, 임시적인 인간에 대한 날카로운 시각을 보여주는 임시교사는 이 작가가 비슷한 어법과 소설 세계에 머물면서도 끝도 없이 넓어지는 시야와 예리해지는 시각을 지녔음을 의미한다.

 

의외의 작품은 윤이형의 루카였다. 꿈과 환상의 세계를 넘나들며 말 그대로 이형(異形)’적인 소설을 내놓던 그녀의 이번 작품은 지나치게 멀쩡하다. 이전의 소설에서 기이한 소재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그녀의 따스한 문장들을 눈여겨볼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좋았다. 물론 동성애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면서 동성애라는 소재적인 측면에 머무르지 않고 아름답고 평범한 두 남자의 사랑이야기를 써냈다는 점도 이 작품이 지니는 가치가 될 것이다. 해설에서 오해진 평론가는 소설의 오독을 막기 위해 직설적으로 외친다. ‘누가 봐도 엄연히 동성애서사를 써놨는데 그게 동성애서사로 읽히지 않아서 좋다니, 그게 무슨 미덕이고 칭찬이겠는가.’(159) 재밌지만, 그냥 웃고 넘길 그런 일침은 아니다. 이런 지적이야말로 이 작품을 다시 읽어 봐야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작품은 김금희의 조중균의 세계였다. 김금희라는 낯선 작가의 낯선 세계를 역시나 낯선 인물인 조중균씨와 함께 엿보니 그 낯섦은 어느새 친근함으로 바뀌어있었다. 빈 종이에 이름만 쓰라는데도, 그럼 점수를 주겠다는데도 기어코 이름을 쓰지 않는 인물, 점심을 먹지 않고 점심값을 돌려받기 위해 본부장에게까지 불려가는 그런 인물을, 현실세계에서 우린 어떻게 대해왔던가. 별종이라 여기며 피곤해하고 배척해왔다. 함께해서 득 볼 게 없는 지나치게 드라마틱한 사람인 것이다. 하지만 조중균의 세계는 피곤할지언정 정직하고, 드라마틱할지언정 이율배반적이지 않다. 그들만의 지나간 세계의 바랜 빛을 소설 속으로 끌어와, 현실의 우리에게 소개하는 작가의 솜씨가 놀랍다.

 

마지막으로, 그래도 표제작이고 대상작이니까, 하는 마음으로 건축이냐 혁명이냐에 대한 짧은 소감을 적어볼까 한다. 실존 인물 이구와 그와 관련된 혹은 전혀 관련이 없더라도 그의 소설 속에선 관련이 될 수밖에 없는무수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저마다 자신의 이력과 이야기를 마구 쏟아낸다. 기존의 소설 문법을 해체하는 실험적인 소설들이 재미가 없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기존의 소설 문법을 지키더라도 재미없는 소설은 무지 많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게 소설인가?’라고 묻게 만드는 소설은 흔치 않다. 역사적 사실과 작가의 허구적 상상력이 별 의미 없이 나열되다가 끝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소설은 독자로 하여금 내가 뭘 읽었지?’하는 의문을 품게 만든다. 독자들이 심사위원만큼 이 소설을 읽고, 분석하고, 이야기를 나누어야 이 작품의 진가를 깨달을 수 있다면, 그래야만 대상작 선정에 공감할 수 있다면, 더 이상 그 작품은 우리 모두의 젊은 작가, 젊은 작품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다. 건축이냐 혁명이냐가 문학사적으로, 실험적인 시도 면에서 아무리 좋은 작품일지라도,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의 당대성, 신선함에 열광할 수 있었던 나를 포함한 일반 독자들을 소외시킨다면, ‘우리가 소설을 찾는 이유와 동떨어진 작품이 되는 것이다.

 

그래도 어쨌든, 늘 젊은 작가상에게 고맙다. 가장 책 읽기 좋은 봄날에 출간되는 5500원의 선물. 매해의 추억을 껴안고 책은 일 년 사이 점점 부풀어간다. 그러다보면 내년엔 7회가, 내 후년엔 8회 수상 작품집이 나오겠지. 10회 수상작이 나올 때 난 무얼 하고 있을까? 20회 때는? 나와 함께 같이 자라는 소설집, 그래서 늘 젊은 작가상에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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