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나 불교가 지배층의 철학이라면 설화는 민중의 생각이 응축되어 전승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저자는 역사적 맥락을 살피며 설화를 소통하던 우리 조상들의 철학을 건져낸다. 처용은 개혁을 꿈꾼 지방 호족이었을 수 있고 효자 호랑이는 비밀리에 활동하던 활빈당이었을 수도 있다. 역사도 설화도 해석하기 나름이고 정답은 없지만 난 저자의 해석이 마음에 든다. 단군 신화에서 동학 운동과 신채호의 소설로 이어지는 한국의 철학에는 사람이 그 중심에 있다. 경쟁과 정복이 아니라 연대가 있다. 마냥 순응적이지도 관조적이지도 않은 실천적 서사 또한 찾을 수 있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