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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과 연탄으로 만든 길
허기복 지음 / 좋은땅 / 2024년 9월
평점 :
세상은 싫든 좋든 원하든 원치 않던 우리로 살아가야 한다. 인간은 적의 공격을 막을 날카로운 이빨도. 추위를 막아줄 따듯한 모피도. 동물을 사냥할 수 있는 빠른 발도 지니고 있지 않다. 초원에 던져져 홀로 버려진 인간은 단 하루도 생존할 수 없는 나약하기 그지없는 존재이다. 그래서 우리는 무리를 만들어 살기 시작했다. 나와 너가 아닌 우리로. 그러나 언제부턴가 우리가 아니라 서로의 차이를 만들어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로 구분하고 서로를 단절시키는 단단한 벽을 만들어 우리로부터 나와 나와 너로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서로를 섬김으로 하여 생존했으므로 서로를 섬김으로 살아야 마땅하지만 우리는 위아래라는 위계질서를 만들어 어색한 동거를 이어오고 있다.
저자는 밥상공동체복지재단 연탄은행 대표다. 서울장신대학교 신학과.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후 서울의 한 교회에서 목회활동을 시작한다. 이제야 좀 안정적으로 생활하나 보다 했는데 얼마 못 가 그 '안정감'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는 목자 허기복. 1997년 외환위기 시절 실직 노숙인, 여성 가장, 독거노인, 아동 등 어려운 이웃을 돌보고자 담임 목사직을 사임하고 사회복지 현장에 뛰어들었다.
원주시 원주교 쌍다리 밑에서 무료급식을 시작된 그의 26년간의 노정은 섬김이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항상 함께 했다. 목자 허기복과 활동가들은 그동안 연탄나눔 약 8천만 장. 무료급식 1,394천여 명, 자원봉사 518천여 명을 나누었다. 원주천 쌍다리 밑 아주 작은 시작이 오늘의 역사를 이루어 낸 것은 실로 기적에 가깝다.
많은 사람들이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 못한다고 가난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한다. 빈민 운동의 대부 아베 피에르 신부는 "이웃의 가난은 나의 수치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남의 도움만 받게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일을 해서 남들을 돕게 만들었다. 나의 또 다른 나에게 불쌍해서 시혜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할 나에게 우리가 되어 함께 갈 뿐인 것이다.
저자는 책에서 밥은 하늘이고 연탄은 땅이라고 한다. 먹을 것이 넘쳐나 먹방이 유행인 시대에 웬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말할 수 있다. 자기 배부르고 등따수우니 다른 사람도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당연한 것이 세상 누군가에겐 꿈일 수 있다.
저자는 우리 사회가 나아지리면 세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나 자신', '정치인', '공무원'이다.
정치인과 공무원은 일단 내버려두더라도 나 자신은 변해야 하지 않을까? 채근담에 보면 "待人春風 持己秋霜 대인춘풍 지기추상"라는 말이 있다.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하고, 나 자신에 대해서는 가을 서리처럼 엄격하게 하라."라는 말이다. 간단히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하지 말자.
연탄구멍을 한번 헤아려보니 22개쯤 되었다. 그래서 이름이 구공탄 또는 구멍탄이라 부른다. 위아래로 연탄을 이층으로 쌓고 불을 지피면 동장군과도 한번 맞서볼 만하다. 그런데 연탄에 구멍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 불이 붙지 않는다. 위아래 공기구멍을 잘 맞추지 못해도 매한가지이다. 이렇듯 연탄도 최소한 22개 공기구멍이 있어 서로 소통해야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다. 위아래 위계질서를 만들어 서로를 단절시키고 있는 우리가 연탄에게 한수 배워야 한다.
저자는 책에서 철학자 칼 야스퍼스의 말 "인간은 다른 이에게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비로소 인간이 된다."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사람은 이기적인 존재인 동시에 이타적인 존재다. 어떻게 한결같이 이기적이거나 이타적이기만 하겠는가. 나눔과 섬김 역시 타인을 위한 행동인 동시에 자신의 건강과 행복을 위한 길이다. 내가 느끼는 감동과 환희, 행복과 만족이 전혀 없다면 아마도 26년을 이어 오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필자는 행복해지고 싶고, 건강해지고 싶고, 유쾌한 일상을 보내고 싶고, 더 나은 삶을 살고 싶고, 나의 나에게 미안해지기 싫고. 우리 아이들에게 좀 더 나은 세상을 전해 주고 싶은 사람들은 이 책을 서점에서 들고 공원의 벤치에 앉아 책을 한번 펼쳐 보시기를 권하고 싶다.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