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 - 오늘 여기서 그 분을 위해, 증보판
제럴드 L. 싯처 지음, 윤종석 옮김 / 성서유니온 / 200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하나님의 뜻 (The will of God as a way of life) 제럴드 싯처 - 성서유니온선교회 어떤 사람이 가족들과 어머니를 미니밴에 태우고 집으로 돌아가는 어느 늦은 저녁, 갑자기 음주 운전자가 중앙선을 뛰어넘어 미내밴을 들이 받았다. 이 사고로 차를 운전하고 있었던 사람의 어머니, 아내, 그리고 막내 딸이 그 자리에서 숨지고 말았다. 운전자와 그의 다른 두자녀는 상실의 세상에 남겨지게 되고 말았다. 이 책을 쓴 작가가 바로 이 사고에서 살아남은 사람이였던 제럴드 싯처 (Gerald L. Sittser) 이다. 그리고 이 사람이 ‘하나님의 뜻’에 대한 주제로 책을 냈을 때, 엄청난 삶의 고난과 상실의 무게감을 가진 한 사람이 ‘하나님의 뜻’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내 인생에 점철된 하나님의 뜻이 궁금한것보다 더 궁금해서, 손이 가는 책이 되었던 것 같다. 신앙의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늘 혼돈되는 것이 이것이다. ‘과연 이것이 하나님의 뜻하셨던 길인가…?’ 하는 물음이다. 수년 전 워싱턴DC에 있는 아우슈비츠박물관에 가본 적이 있었다. 한 유대인 아버지가 독일군에게 어디론가 끌려가면서 자식들에게 남긴 메모을 기억한다. 생사를 오가는 절대절명의 급박한 순간에도 신에 대한 믿음을 놓치 않는 혼필의 짧은 편지였다. 과연 어두컴컴한 기차안에서 자기에게 닥친 믿지못할 것 같은 현실에 ‘신의 뜻’을 어떻게 믿고 이해할 수 있었을까… 상상해 볼수록 마음이 숙연해 진다. 싯처의 책을 읽어보아도, 우리가 갈급해하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궁금함을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시원하게 답을 얻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정말 ‘하나님의 뜻’에 대한 중요한 생각들이 무엇이어야 할지 알게 될수는 있다. 인생의 중대한 결정앞에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소유한 사람들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도 자주 잊고 사는 것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것이다. 하나님은 신뢰할만한 (faithful) 분이라는 것이다.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은 나의 선택에 결과에 상관없이 그분의 의지로 내 인생에 상관하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은 순간순간의 선택을 맞게 결정하게 하도록 하는 사다리타기 같은 의지라기보다는, 어떠한 상황이든 ‘바로 그곳에서 나를 상관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결국 하나님의 뜻은 이쪽이냐 저쪽이냐 하는 선택에 기로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에 계속 관계되어지는 하나님의 ‘의지 (will)’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어리석은 실수로 혼돈의 삶을 살 때에도 나를 회복하시려는 하나님의 의지가 내 삶에 드러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인생을 살아도 하나님의 신뢰하심만 믿는다면, 내 인생이 무작위 주사위의 숫자처럼 아무렇게나 던져져도 괜찮은 것 아니냐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아무렇게나 흘러가는 자신의 인생을 괜찮게 받아들일 수 있는 실력이 우리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마음을 먹고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해도 여전히 나에게 큰 문제로 여겨지는 인생의 수많은 선택의 기로는, 하나님께서도 큰 문제로 여기시면서 나를 상관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그리스도인처럼 살아주기를 바라시지만, 반드시 어떤 길로 가기를 정해 놓으셨다는 것은 아니다. 나의 시행착오로 걷는 인생의 길마저 함께 동행하고 나를 계속 회복시켜나가는 그 시간에 바로 하나님의 뜻(의지)이 있다는 것이다. 삶을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산다는 것은 매사에 사지선다의 문제에서 정답을 맞추는 것처럼 옳은 선택을 해 나가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주관식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과 더 비슷한 것 같다. 나의 일상에 그분이 원하는 방식의 삶을 생각하고 그렇게 반응하면서 살아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선택의 방향에 있기보다는 그 삶의 내용에 하나님의 뜻이 점철되어 있다는 것이 우리를 선택에서 자유케 한다. 그러나, 여전히 실수하지 않을 삶, 가장 좋은 길이 뭔지, 이것이 맞는 길인지 계속 묻고 싶어 질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선택의 기로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이전에 왜 ‘하나님의 뜻’을 갈구하는지 그 의도가 무엇인지 자기에게 곰곰히 물어봐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바른 선택과 결정을 위해서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바른 선택이라는 것은 나를 어디로 인도할 것인지를 물어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실패하지 않고 성공하는 선택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실패와 성공이 어떤 것인지 물어보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성공이란 낱말을 재껴놓더라도, 최소의 생존수단을 유지하기 위해 살아가는 인생길에 하나님의 뜻을 ‘겸허히’ 묻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삶의 안정성(security)은 적어도 획득해 놓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러나, 때론 그것마저 ‘믿음’아래 놓아 두어야 할 시기가 생긴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은 ‘믿음’과도 큰 관계가 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내 인생을 끝까지 사랑하신다라는 믿음을 놓치않을때 하나님의 뜻은 비로소 나의 인생을 점철하는 살아있는 힘과 의지가 된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 어리석은 결정을 했을 때라도, 그길에 동참하고 고칠수있게 되는 뜻이 되어지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아리조나에서 보스톤으로 이주해 왔던게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때가 종종 있다. 경제적으로 더 어려워졌고, 일도 나아진 것은 없어 보인다. 더욱더 내삶이 초점없이 내 통제에서 벗어나 나아가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럴 때에도 '네가 나의 신실함을 여전히 믿을 수 있는가?..' 라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물어보시는 것 같다. 그리고 선택을 통해 새로운 삶을 새로운 곳에서 경험하게 되면서 나의 죄와 죄성들 (내가 주위 사람들에게 잘못한 것들, 내가 교만했던 것들, 내 욕심으로 놓치못했던 부분들)을 떠오르게 하신다. 그러면 진심으로 후회하고 용서를 구하게 된다. 이런 나의 ‘나의 통제를 벗어나 쉽게 부셔질 것 같은 삶’도 바로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의지 아래에 있다는 것임을 겸허히 믿게 된다. 그리고, 그래서 ‘희망’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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