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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폐지 ㅣ 정본 C. S. 루이스 클래식 9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이종태 옮김 / 홍성사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느껴지는 ‘양심 (혹은 객관적 가치)’이란 것이 과연 태고적부터 인간의 생명과 함께 심기워져 있는 그 무엇이었을까? 아니면 인간들의 역사와 문화를 통해, 사회와 인류의 존속을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져서 교육을 통해 우리 마음속에 심기워진 것일까?
이러한 질문은 꼭 ‘양심’ 이란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어쩌면 결국 인류기원의 문제와도 관련이 있을 법하다. 왜냐하면, 인류가 먼지로부터 초자연적인 그 무엇의 (신) 개입 없이 발생했다면 양심, 도덕률, 도, 선하다고 느끼는 가치들, 등등 은 정말로 역사와 문화를 통해 인간들이 만들고 수정해 왔던 규율및 기본명제에 속할 것이며, 정말로 이것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가치들''이며, 어쩌면 앞으로의 인류들은 이런 것들에 구속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이런 ‘가치들''을 재창조하고 수정하고, 다스리는 입장으로, 이것이 혼란을 줄지라도,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일 인류창조에 지적설계자의 의도가 있었다면, 인간들이 느끼는 ‘가치’들은 인류역사와 시대를 통해 주관적이 였던 것이 아니라, 객관적이였을 (도출된 결론이 아니라 자명한 공리와도 같은) 것이다. 그리고 인류역사를 통해 지나온 가치의 본 의도는 변하지 않았을 것이며, 앞으로도 인류에 생명이 붙어있는 한은, 사람들이 이런 가치를 지키던 지키지 않던간에, 이런 가치들은 인간들의 머리속에서 영원히 기억 될 것이다.
따라서 이런 질문을 던져보고 답을 해 본다는 것은, 어쩌면 종교에서 말하는 신에 대한 간접적 변증학에 속해지는 문제일 수도 있겠다. 양심, 도, 선한 외적 가치관 들은 분명히 인류와 함께 존재해 왔고 그렇기에 우리의 행동과 우리의 삶에 의미와 가치를 줄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심각하게 들기 시작하면, 한번쯤은 신의 창조의 의도를 생각해 볼수도 있고, 나아가 신의 존재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나는 여기서 결론을 이끌어 내려는 것은 아니고, 유신론을 받아들이는 기독교인의 입장으로서, ‘가치의 기원’에 대한 몇가지 힌트정도만을 정리해 보았다.
''가치의 기원’이 교육이나 인위적으로 창조되어져 왔다고 생각하게끔 하는 오해들:
1. 쉽게 오해하는 부분은 우리의 부모나 학교에서 선생님들에게 어떠한 도덕률을 배웠다고 해서 양심 (도덕률) 이 단지 인간들의 관습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양심이 인간들의 마음속에 심기워져 있다고 가정하더라고, 부모나 선생님들에게 그것들에 대해 이야기 듣고 배울 수 있는 것이다.
2. 양심 (도덕률)이 존재하는가와 그것을 사람들이 지키는지 혹은 지키지 않는가 와는 별다른 문제이다.
3. 인간들의 관습은 시대에 따라 장소에 따라 법규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다. 그러나, 도덕 (일반적 선의에 관한 법) 에 관한 개념은 시대에따라 장소에 따라 –우리가 생각할수 있는 차이보다- 차이가 그다지 많지 않다. 고대 유대교, 고대 이집트, 고대 인도, 고대 힌두교, 고대 그리스, 로마, 아메리카 인디언,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고대 한국, 성경 에서 발견되는 일반적 선의에 관한 법은 그 의도가 다르지 않다.
4. 어떤 사람은 도덕률이 시대나 장소에 따라 차이가 크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도덕률자체의 차이가 아니라 사실에 대한 믿음의 차이가 다름을 의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면, 몇백년 전에는 마녀라고 하는 사람을 죽이곤 했다. 그러나, 현재는 마녀같은 것을 믿지 않기때문에 마녀라고 해서 죽이는 법은 없다. 죄가 없었던 사람을 죽였다는 것에 대해서는 도덕의 차이처럼 보이지만, 그당시에는 마녀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이웃들에게 재앙을 가져온다고 생각했기때문에 죽여야한다고 생각했다. 현재도 무고한 살인을 하는 사람들에게 대해서 엄중한 벌(사형)을 하는 것에대해서는 마찬가지인 것을 보면, 이런 일들은 사실에 대한 일이지, 도덕률이 시대에 따라 다르기때문에 일어난 일은 아니다.
5. 만일 혹시 도덕에 시대나 장소, 혹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한다면, 어떤 사람이나 시대의 도덕률이 다른 사람이나 다른 시대의 도덕률보다 나을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혹은 도덕률의 진보가 있어왔다고 생각하는가? 만일 도덕에 대해 어느것에 비해 낫다 혹은 못하다 라는 개념이 없다면, 우리의 문명화된 도덕과 미개인들의 도덕, 혹은 크리스챤들의 도덕과 나찌들의 도덕 사이에 어느것이 낫다고 생각할 만한 여지를 가질 수 없다. 그러나, 어떤 집단들의 도덕률이 더 낫다고 생각이 되어진다면, 바로 당신은 어떠한 잣대 (real morality) 가 이미 당신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것이다.
6. 어떤 사람들은 도덕률은 인간이 자연스럽게 머리속에 박힌 것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도덕률이 깨지면 결국엔 사회의 안전 유지가 어렵고 결국 자신에게 해가 되기때문이라고 한다 (공동체의 유익성). 그러나, 더 올바르다고 하는 가치는 자신에게 해나 불편을 감수하는 쪽으로만 가는 것은 아니다. 자신에게 결국 해가 되기때문에 뭔가를 준수한다고 하는 것은, 어떠한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개인적인 죽음이나 불편함을 무릅쓰는 사람들의 마음과 실천을, 그 사람들의 개인적 충동 이외로는, 설명하기 힘들다.
7. 어떤 사람들은 가치의 기원을 본능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이런 본능이 있다’ 라는 심리학적인 사실로부터 ‘나는 마땅히 이 본능에 순종해야 한다’ 라는 실천적 원칙을 도출해낼 수는 없다. 본능은 다양하며, 어떠한 본능이 우선해야 한다는 법칙의 근거는 본능자체보다 더 높은 권위를 가진 무엇에 호소하지 않고서는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론 세계에서 자명한 공리를 받아들이듯이 이러한 ‘가치들’ 이 행동의 세계에서 지켜질 일종의 공리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떠한 실천적 원리로 가질 수가 없어 보인다. 이런 실천적 원리들은 무슨 명제나 규율로 부터 도달할 수 있는 결론이 아니라, 바로 전제들이기 때문이다. 즉 만일 우리가 가치라는 것을 갖고자 한다면 양심, 도, 선의의 법칙들의 궁극적인 평범한 진리들을 절대적 타당성을 지닌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 본다면, 양심, 도덕률, 혹 올바른가치를 향해 움직이는 실천적 원리는 어떠한 이유나 명분으로부터 대두 된 것이 아니라 이미 태고적부터 사람들의 인식이 시작하면서 이미 그 안에 존재해 왔을 가능성을 짐작해 보는 것도 타당해 보인다. 만일, 혹시, 정말 이것이 맞다면 양심은 내 것이 아니라 누군가 나에게, 단지 생물학적인 유전으로가 아니라, 다른 이유로 전해 준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