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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ㅣ 미네르바의 올빼미 4
잉에 아이허 숄 지음, 유미영 옮김, 정종훈 그림 / 푸른나무 / 2003년 8월
평점 :
절판
누군가 교회에다 가져다 놓은 헌책들 사이에서 볼만한 것이 없나 살피다가 얇고 오래된 책을 꺼내 집었는데,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이란 제목이 선뜻 마음에 와 닿았다. 2차 세계대전시절 나치의 극악무도한 잔행에 대하여 소수의 젊은 독일 대학생들은 무폭력적인 저항을 하게 되었는데, 바로 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실화적 글이었다. 자신의 두 동생 ‘한스’와 ‘죠피’의 어린시절과 가정생활 학창생활, 어떻게해서 나치정권에 대해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는지, 그리고 이십대의 젊은 나이로 어떻게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갔는지를 상고하며 써 내려간 작가의 (잉게 숄) 글이다. 짐짓 무거운 글의 내용과 함께 상당한 문필력으로 글은 마치 그 동생의 이야기들이 바로 내 형제의 이야기이고 바로 나의 이야기인 것 처럼 느끼게 해 준다. 잉게 숄은 자신의 동생들이 참여했던 뮌헨 학생운동 (나치저항운동) 을 아름다운 인간의 행동이었다 라고 일반화시키는 것에 대해 그릇되었다고 말한다. 그의 동생들의 행동은 구체적이었고, 구체적인 목적이 있었고, 구체적인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그들의 저항운동이 그들의 힘으로는 나치정권을 무너뜨리지는 못할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가슴속으로 부터 말하고 싶고 말해야 했을 것은, 그들은 그들의 가족들과도 이야기하지 못하고 고독하게 일을 하며, 말하는 용기를 내어 주었다. 그러한 최소한의 일에 모든 희생을 각오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이며, 그들이 단순한 일에 자신을 바치고, 가장 단순한 일을 자신들의 최고의 의무로 생각했다는 점에 그들의 위대성이 있는지도 모른다고 잉게숄은 독백한다.
아마도 전쟁이 없었고 나치정권이 들어서지 않았다면, 우리는 한스나 죠피 같은 청년들의 이야기들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그들은 그들이 공부했듯이 의대들 졸업해서 열심히 환자들을 돌보며,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좋아하는 친구들을 만나며, 가정을 꾸리고 살아왔을 소시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상상일뿐, 파시즘이 존재하는 역사속에 그들의 그들의 젊음을 맞이했으며, 죽어나가는 유대인들과 쓸모없다고 어디론가 사라지는 장애인들을 보면서 그들의 고귀한 영혼은 꿈틀거릴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가, 자기의 영혼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을 할 수 밖에 없었고 그 댓가로 목숨을 지불하고 말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들이 자신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다는 것을 느낄때면, 그 일들은 분명히 아주 무거운 부담으로 느껴졌을 것이며 무서워 떨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그 부담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며 벗어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한 특수한 역사적 상황속에서, 순결한 청년들에게 다가온, 개인적 사명감은, 잉게숄의 말대로, 그 상황에 국한된 아주 구체적이었고 목적이 분명한 개인적인 출발이었다. 대중이 이끌어가는 역사적 이데올로기의 이념도 아니었고, 정권이 이끌어가는 비젼의 제시도 아니었다. 그것은 한스와 죠피라는 한 개인이, 자신이 느끼는 자신에게 구체적인 사명감이었고 자신들의 삶의 의미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을 사는 우리들도 어쩌면 한스와 죠피와 다를 것을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 우리가 맞딱드린 현재의 역사와 세계는 우리에게는 매우 특별하며 구체적인 시대일 것이고, 우리의 순결한 영혼은, 언제 어디서든 우리가 마땅히 우리의 삶을 통해 이루어 가야 할 일들을 말해 주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일을 이루어가는 것이야 말로, 자신의 육체를 고단하게 하고 자신의 존재를 무겁게 누르는 부담감으로 다가올지도 모르고, 어쩌면 자신의 목숨까지도 위태로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목숨을 유지하는 것’이 삶의 가장 위대한 가치라고만은 말할 수 없는 전제에서, 우리는 그러한 부담을 꿋꿋이 안고 지내야 할 것이다. 나는 우리 인간이 가진 삶의 본질은 역사의 상황과 문화와 시대에 따라 달라지지 않고 항상 같다고 믿는다. 마찬가지로 극한의 생존위기속에서 무언가를 지켜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이 그 옛날 그들, 한스와 죠피에게 있었다면, 현재의 우리에게도 무언가를 위해 끝까지 몸부림치며 지키고 이루어야 할 일은, 그것이 한스와 죠피처럼 꼭 목숨을 앗아가는 일이 아니더라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것은 꼭 굉장한 목표나 광신적인 열광, 커다란 이념, 혹은 옳은 일을 위해 봉사한다는 박애의 의무감은 아닐 것이다. 한스와 죠피는 사람들 모두가 다같이 인간적이 세계에서 살기를 바랬고, 그들은 자신들의 단순한 열망에 자신들을 바쳤고, 이것을 자신들의 최고 의무로 생각했다. 과연 우리가 가지는 가장 단순한 최고의 의무는 무엇일까? 자만심을 가질 필요도 없고 누구로부터 위대하다고 칭찬받을 필요도 없지만, 자신이 고단하게 이루어가야 할 구체적이고 단순한 일은 무엇인가? 자기의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삶의 일상속에서 조그마한 일부터 시작하고 그것을 최고의 의무로 여기며 희생을 각오하며 끝까지 붙들고 살아나가는 하루하루가 우리에게는 가장 위대한 일일 것이며, 이러한 생각이 바로 인간을 가장 인간되게 그리고 인간을 가장 공평하게 여기는 출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