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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말
최민호 지음 / 황금가지 / 2018년 1월
평점 :
어릴적에 뭔지도 모르고 본 좀비영화에 놀라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20대가 되서 또 뭔지도 모르고 봤다가 크게 충격을 받아 한동안 힘들어하기도 했다.
왠지 밖에 나가면 온통 좀비가 판을치고 있을 것 같았고, 밤에 길을 걸을 때 멀리서 누가 걸어오면 흠짓 놀랄 정도로 꽤 큰 공포를 느끼기도 했다. 그랬던 내가 이번에는 좀비 소설을 읽게 되었다. 과연 밤에 잘 읽을 수 있을까? 또 꿈을 꾸지 않을까? 라는 걱정을 했는데, 하하.. 괜한 걱정이었다.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후 26년이 지났다. 하나의 장벽을 두고 바이러스 면역자와 보유자로 나누며. 면역자들은 특권을 누리며 살고, 보유자들을 좀비로 변하지 않기 위해 약을 먹으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여기에 보유자 신분으로 딸아이를 키우며 힘겹게 살고 있는 '수진'과 특권층들만이 살 수 있는 섬에 들어가기 위해 자신에게 방해되는 것은 다 치워버리려는 위선적인 제약회사 사장 '진석호', 죽은 자신의 여동생의 진범을 밝혀내기 위해 싸우는 연구원 '세영', 그리고 그를 돕는 전직 군인 '명철'까지.. 각 인물의 시점으로 교차하면서 이들만의 싸움이 시작된다.
좀비가 판을 치는 세상으로 변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출근을 하고 일을 하고 밥을 먹고 살아가는 세상이었다. 기존에 보아왔던 멸망의 모습이 아니라서 긴장감은 떨어지지만 나름 재미있는 구성이었다. 한편으로는 좀비 소설이 아니라 그냥 돈 많은 자와 돈 없는 자와의 싸움을 구경하는 사회성 소설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후반으로 갈수록 좀비 소설다운 모습을 보여줬고, 편안하게 읽다가 갑자기 훅 들어와서 '어떻게!' 하며 나도 모르게 소리치기도 했다.
읽다보면 정말 화가나는 부분이 많이 나온다. 돈많은 재벌가들은 어려운 사람들한테 다 이래도 되는 것일까? '수진'이라는 인물을 보면서 너무나도 안타까웠고, '세영'의 동생을 죽인 진범을 알았을 때는 범인을 좀비의 먹이로 던져버리고 싶었다. 현실이 아니지만 너무나 현실 같았던 이야기. 마지막에서는 쌤통이다! 라며 시원해했지만, 한편으로는 무척 씁쓸한 결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