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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 The Bees - 랄린 폴 장편소설
랄린 폴 지음, 권상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인도계 영국인인 랄린 폴은 원고가 돌자마자 치열한 판권 경쟁끝에 계약이 되었고, <벌>은 다른 작가들로부터 [헝거게임]과 [다이버전트] 세대를 위한 [동물농장],[개미]라는 찬사를 받을 정도로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못생기고 몸집도 큰 신분 최하층인 청소벌 '플로라 717'은 호기심도 많고 용기있는 여성벌이다. 청소벌은 말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금기이기 때문에 벙어리 처럼 살아야하는데 플로라는 호기심이 많은 벌이라 계속 질문을 하다 신분이 위인 다른 벌들한테 혼을 나기도 한다.
플로라는 부화를 한 순간 세이지 자매에 눈에 띄어 여러가지 시험에 들게 된다. 처음에는 알을 보육하는 보육방에 들어가서 아이들을 먹이고 돌보는 일을 맡았다. 어느 날 말벌들의 침입으로 인해 자매들이 죽임을 당하고 플로라는 말벌과 싸움끝에 승리를 거두어 여왕벌을 알현하는 영광을 얻게 된다. 그 후 플로라는 보급병 일을 하게 되어 밖같 세상으로 나가 식량등을 찾는 일을 하게 된다. 하지만.. 플로라는 여왕만이 가질 수 있는 알을 가지게 되고, 비밀리에 알을 낳아 키우려고 하는데, 과연 플로라는 알을 낳아 키울 수 있을까? 그리고 그녀의 운명은 어찌 될까?
" 플로라는 뒤로 물러났지만 몸속에서 이상하게 휘젓는 느낌이 들었다.
저도 모르게 더듬이 채널이 활짝 열린 그녀는 숨구멍을 모두 동원하여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더듬이를 폐쇄하려 했지만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고 경련이 온몸을 관통했다.
그녀의 배는 따스하고 단단하게 부풀어 올랐고 복부 안 깊은 곳에서는 작은 진동이 번득였다. "
P. 184
이 소설은 신분에 따라 능력을 가지고 여왕벌을 위해 평생 희생해야만 하는 벌들의 욕망과 삶을 다룬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벌들의 신분은 다 꽃 이름으로 계급을 나뉘는데, 플로라 717은 그중 최하층인 신분이었다.
[이 소설에서 꿀벌들은 피라미드 구조와 흡사한 철저한 계층 구분과 위계질서를 가지며, 각 혈통은 대개 특정 꽃에서 화밀과 화분 등 식량을 수집하므로 그 꽃의 이름이 각 일족의 식물 유산이자 이름이 된다. '동물군(fauna)'에 대비하여 '식물군' 전체를 가리키는 '플로라'는 일족의 이름에서 이들은 특정한 식물 유산이 없고 그렇기에 피라미드의 최하층을 이루는 천민층임을 짐작할 수 있다.] P.12
이들은 자주 <수용하고, 순종하고, 봉사하라>라는 말을 하므로서 충성심을 보이는데, 이들에게는 욕망과 허영, 나태와 질문은 금지이며 기형은 최고의 죄악으로 생각한다. 기형이 태어나면 그 자리에서 즉시 찢어 죽이는 잔인한 행동도 서슴없이 하는 벌들이었다. 하지만 이런 이들에게도 꿈과 용기 그리고 사랑도 존재한다. 플로라는 못생기고 몸집도 큰 청소벌이었지만, 호기심으로 금기에 도전하는 용기를 보여주며 꿈을 이룰 수 있는 자신감 그리고 사랑을 보듬어 줄 수 있는 따뜻한 가슴도 지닌 벌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서만 인간이 등장하는데,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 뭔가 인간과 벌들과의 삶을 다룬 이야기로 생각했었다. 벌들의 집단 생활에서 인간들에게 주는 영향과 인간들이 벌들에게 주는 영향과 피해 등을 좀 현실감있게 표현한 작품을 기대했었다.
그래서 그런걸까? 읽으면서 계속 애니메이션 [꿀벌대소동]이 떠올랐다. 이 애니메이션은 꿀벌세상에서 인간세상에 나가 모험을 통해 그들이 느끼는 세상 그리고 인간들이 그들에게 끼치는 영향 등을 재미있게 풀어나간 어린이 만화영화인데, 어쩌면 나는 이러한 스토리를 원한건지도 모른다. 좀더 풍부한 상상력과 모험, 스릴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
하지만 이 소설은 그런 환상적인 이야기 대신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욕망과 금기를 향한 호기심을 벌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보여주려 했던 것 같다. 소설 속 왕자벌들의 독점욕이나 하층 계급을 무시하는 상위층 계급들의 태도, 다른 곤충들로부터 느껴지는 두려움, 그리고 아이를 향한 모성애 등등이 인간 세상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벌들의 계급 사회는 인간과 같고, 삶은 벌들과 같다. 그래서 그런지 읽다보면 마치 18세기의 왕실속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벌들의 삶과 특징이 무척 잘 표현된 소설이지만, 종교적인 부분이 좀 느껴졌기 때문에 내가 읽기에는 조금 이해하기 쉽지 않았고, 환상과 모험을 기대한 나에게는 조금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