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게 어쩌면 스스로에게 - 이 시대 7인의 49가지 이야기
김용택 외 지음 / 황금시간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7인의 7가지 이야기 그래서 49가지 이야기를 만나는 책.

각계 각층의 다른 인물이 만난 세상 속 이야기.

 

<김용택 시인>

세상이란 이름을 가진 누군가가 나에게 인생을 살면서 대단한 신념하나쯤 가지라고 명령한것 같았다.

그래서 괜한 죄책감도 들었었다. 뭔가 거창한 결과물을 낳아야 하고 원대한 포부하나 갖고 살아야 하는 줄 알았다.

좀더 괜찮아 보이는 돈벌이에 주변을 둘러보아 으쓱할만한 존재가 되려고 스스로 쪼아댔다.

아무도 나에게 압력을 행사하지 않았던것 같기도 하다. 나 혼자 그랬나보다.

아무것도 아닌 나라서 불안했던 내게 시인은 "너 그냥 니 삶을 살아도 좋다."라고 믿음을 준다.

김용택 시인, 하고 싶은 것을 하며 한번뿐인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사람의 삶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말뿐이 아닌 진짜 그러한 삶을 살았고, 책에서 썼듯이 후외없는 인생, 가장 잘 살았다고 자부하는 인생을 산 사람이다.

과연 살아 생전에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 일까?

언젠가 TV에서 강연 하는 것을 보았다. 아이들에게 자연과 잘 놀게 하는 교육을 하는 선생님.

그림을 그리되 하고 싶은, 마음껏 그리되 단, 여백을 남기지 말고 색을 채워라.

일년 열두단 꽃이 지지 않는 교실.

'콩 너는 죽었다'란 시를 유명한 작가 - 박경리선생 같은데 기억이 잘 안난다 - 에게 보여주었더니 이미 시인인 선생에게 이 시를 쓴 아이는 이다음에 커서 훌륭한 시인이 되겠더라는 말을 했다는 얘기.

삶이 동화같고 가르친 이들의 마음이 작품이 되게 한 선생이자 시인은 자연을 자연답게 보고 즐기고 만끽했다.

좋은 글을 읽으면 마음도 그러해지나 보다. 문학적 문체로 가득한 글을 읽으면 속도가 느려진다.

삶에 쉼표를 찍고 싶을 때 이 책이 함께하면 좋겠다.

 

 

<서민교수>

책에도 썼듯 칼럼을 썼다는데 내겐 컬투가 나오는 프로에서 보여준 모습이 더 익숙하다.

서민교수를 TV로 보고 책으로 본 후 과거가 힘들어도 지금 웃는자는 과거도 행복했을 것처럼 보였다.

한국에서 여자로 사는 동안 겪는 일상의 문제를 당연하게 감수할 수밖에 없는 문제라고 여겼다. 그런데 저자의 글을 읽고 새삼 부당한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는 진실이 진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날 수도 있겠구나, 당연한 것은 그렇게 인정해서 당연해졌구나..

술렁술렁 넘어가는 책장을 보니 재치있는 입담과 알라딘 블로거로써 쌓아온 실력과 칼럼으로 다져진 능력이 확실히 보이는 듯 했다.

길고양이 톡소와 함께한 시간 속에서 느낀 반려동물 키우기의 준비단계(?)는 문제만 거론할 뿐 해결법은 제시한 적 없는 나의불만 가득한 태도에 경종을 울렸다.

왜 그렇게 쉽게 기르기를 선택하고 버리기를 쉽게 하는지 원인을 찾으니 해답도 보였다. 당연한것을 왜 나는,,

음식물 쓰레기를 물에 흘려버리고, 소고기 마블링에 감탄할 때, 숯불 구이의 숯이 아마존을 태울 때, 이 때가 책임감이 필요한 때 인것처럼 귀엽다고, 소유의 욕망이 순간 사로잡힐 때 책임감도 수반되어야 했다.

서민교수의 교육은 현실화 될 수 있을까?

조카가 기르던 금붕어가 죽었다.

조카는 아프리카어 같은 금붕어의 이름을 대면서 "아빠가. 버렸어.변기에"라고 손가락질을 하며 나에게 말했다.

기르던 물고기가 죽는 것. 왜 기르고 있는지 제대로 생각해 본적 없는 것.

새로사면 고놈과 똑같은 놈이 부활하듯 '짠'하고 나타나는 현실.

'니모'를 보고 배수구여행을 하다가 바다로 가는 줄 굳건히 믿는 믿음.

여기에 우선할 것은 생명의 존엄성과 기르는 이의 책임감. 그리고 자연의 순환을 인정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적어도 녀석은 변기가 아니라 땅에 묻어서 퇴비라도 됐어야 했다.

 

 

<박찬일 쉐프>

식재료를 들었다놨다 들었다놨다. 박찬일 쉐프는 피식피식 웃게 만드는 기술자다. 기자출신 요리사다운 감칠맛 나는 문장들이 연속하는데도 불구하고 그 농담이 한번도 질리지가 않는다.

천대(?)받는 식재료의 향연.<추억의 절반은 맛이다>라는 그의 책을 읽을 때보다 이번이 더 착착 감겼던 것 같다.

소재의 선택을 뒤엎는 반전이 문장에 녹아 있어서일까?

어느날 읽은 책 내용에 감동(?)을 받아 하루아침에 육식을 폐하노라 선언하고 채식의 길로 들어섰을 당시, 로드킬 당한 녀석들의 잔혹한 최후를 떠올리며, 해부학실습실에서 아찔한 냄새와 함께 마주한 장면을 밥상앞에 나열하며 짐승의 젖은 짐승새끼에게 줄테다 다짐하며 밥을 먹었다.

유쾌하지 않은 상상과 함께 한 식사는 습관처럼 자연스런 채식인이 되어 2년여를 넘게 유지했었다.

그러나 유럽으로 간 여행은 이국문화에 대한 호기심과 이 경험이 생에 마지막이 될 것 같은 불안감을 느끼며 잡식인의 길로 돌아서는 계기가 되었다.

유럽에서 채식만 한다는것은 정말 어려운 식단이었다. "유럽은 역시 목축업이 발달한 육식의 나라야, 로마에 왔으니 로마법을 따르리."를 외치며 달팽이고 핏빛 살덩이고 죄다 먹었다.

저자가 요리한 서양요리의 재료를 보면 참 별의별 부위가 다 있다. 물론 우리나라 식재료도 마찬가지다.

이탈리아에서 요리를 배운 쉐프는 내가 나열한 육식의 찝찝한 면을 식재료의 한면에 두고 다른 한면에는 그 재료가 살려낸 맛의 세계를 맛있게 그려낸다.

내게 아직까지 남아있는 육식에 대한 묘한 감정에 동조하는 듯 하면서 그 식재료가 음식이 되었을 때를 상상하게 한다. 감탄할 맛이 나겠구나 싶게 절묘하게 풀어냈다.

식재료에 거부감을 느끼고 맛에 취하는 양면성, 각 문화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과정.

박찬일 쉐프는 나에게 아직도 편견이 있음을 깨닫게 했다. 김용택시인의 글을 읽는 마지막 즈음에서 가졌던 "나에게 신념은 없다."를 아직 실천하지 못했음을 알게 했다.

굳이 그 부위를 먹지 않아도 먹을 것이 넘쳐나는 시대에 왜 내장을 헤집고 짐승의 얼굴-동물에게 쓰는 단어는 아니지만 가끔 눈이 마주칠 때 당혹스러워서-을 먹고 생선의 정소와 눈알에 집착하나 싶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들의 몸통은 먹어도 되는 당위성을 지닌 사람인척 했다. 그래서 반성.

 

 

분명 나는 다른 작가들의 글에서도 내 삶과 생각에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여기서는 세 사람의 글에 대해서만 쓰고 싶어서 썼다.

 

 

좋은 스승, 멘토, 잘나가는 강사.

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거나 그들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희박한 나에게 이 책은,

한자리에 앉아서 7시간짜리 특강을 듣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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