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단열단상 - 잉여라 쓰고 '나'라고 읽는 인생들에게
문단열 지음 / 살림Biz / 2012년 6월
평점 :
군더더기없이 아주 깔끔하네요.
나는 이렇게 고생했네~ 실패를 했을 때 내 심정은 어떻고~
역경과 실패를 딛고 일어선 사람들의 글에서 보이는 이런것들은 어디에도 없다.
엄살같은 자기 고생담도 없고 꼭 필요할 때 살짝 언급될 뿐이다.
내가 문단열강사를 알게된건 한 십여년전쯤 EBS인가에서 저녁 8시 15분정도부터 하던
잉카(=잉글리쉬카페)를 통해서였다.
학교 다닐 때 수년간 영어를 해 오고 시험을 봤지만 지금 내가 아는 영어의 대부분은
이때 형성된 실력(?)이다.
한 이십여분 정도의 짧은 시간을 매일하다보니 어느샌가 조금 늘어있었다.
물론 안 하면 또 잊는게 당연하지만.. 그 때 배운 영어는 재미있고 반복해서 그날그날 익숙해지게 한다.
프로그램속의 문단열강사는 늘 즐겁고 웃고 매일 신나고 노래하고 흔들어댔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이제 보니 저자도 많이 늙었다. 그러나 그때의 신나는 웃음을 그대로 간직했다.
요즘엔 가끔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아이들 프로그램에서 영어를 가르치는것 같다.
신나게 웃는 모습뒤에 삶에 조언을 할 만큼의 아픔이 있었다는게 ...
책에 줄 긋는걸 싫어하는 나임에도 불구하고 어찌나 줄 긋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던지..
고통의 크기는 비교될 수 없다는 것에 너무 공감되었다.
나역시 저자처럼 누구에게나 자기의 고통이 가장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의 고통이 누군가를 위해서 가치있는 것이라고 했는데
처음엔 수긍하다가도 왜! 내가 왜 꼭 누군가를 위해서 이런 고통을 겪어야하나.. 난 고통없이 누군가에게도
아무영향도 미치고 싶지 않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잠시 후엔 '그래 어차피 있는 고통이라면 누군가를 위해서도 괜찬겠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단어가 갖는 의미와 조금씩 다른 차이들이 만들어내는 묘미를 읽는 재미도 있다.
그렇게 사물을 본다. 이제까지 다른 시각을 갖게 되었다.
바닷가의 버려진 배에서는 충격!이었다.
나에게 하는 이야기처럼 들렸다. 내가 호화유람선이던 고기잡이배던 뗏목이던 나는 쓰이기 위해 만들어진 배다
배는 물에 떠서 제 역할을 해야 하는데 땅위에서는 쓸모가 없다. 버려지 것은 점점 퇴물이 되는것이다.
나는 지금 어떤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건가..나는 그 존재 목적을 제대로 수행하나?
역시 문단열... 결국 단상....은 그래서 단상이 되는거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