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의 유령
가스통 르루 지음, 성귀수 옮김 / 문학세계사 / 200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서로 사랑한다는 것과 사랑에 집착한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한다.'크리스틴과 라울은 서로가 사랑했고 에릭은 크리스틴에게 집착했다' 이렇게 표현한다면 나는 지극히 평범한 독서에 상식적인 생각을 가진 여자이겠지. 그러나 나는 오페라의 유령을 읽기 전부터 그렇게 정의 내릴 수 없는 것이 사랑이란걸 알고 있다. 나도 사랑을 해봤고..., 집착스럽게 오랜 시간을 그리워 해봤고 어느 순간 새록거리는 사랑에 눈멀었기 때문에, 사랑의 고통을 그저 집착이라고 말하기엔 얼마나 가엾은 것인가? (크리스틴이 에릭에게 품었던 마음처럼)

오페라의 유령은 에릭이다. 그는 실제 유령이 아니라 유령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진 인간이다. 혐오스러운 얼굴로 세상사람들을 회피했고 절대적 사랑을 받아야할 부모로부터 버림받아 천재적 재능에도 불구하고 오페라 극장의 지하에 침거하면서 그가 사랑한 크리스틴을 향한 헌신적인 사랑은 광적인 행동을 이끌어낸다. 그의 과도한 사랑과 크리스틴과 멋진 귀족청년 라울의 사랑. 받지 못하는 사랑에 재앙을 퍼붓는 에릭. 그는 광분한 가엾은 한 인간에 불과하다.

그는 어쩌면 가장 솔직한 인간의 유형을 가진 자이다. 분노함에 격분할 줄 알고 사랑함에 광적일 줄 알고 놓아줌에 과감할 줄 아는. 평생을 어두운 지하 속에서도 가면을 쓰고 다닐 수밖에 없는 인간의 콤플렉스로 똘똘 뭉쳐진 유형이지만 그는 분명 한 여자를 사랑했고 그 사랑에 단순할 정도의 순진성을 보이는 한 남자에 불과한 것이다. 사랑함에 요령 같은 건 없다. 그저 치닫는 사랑에 충실할 뿐이며 헌신할 뿐이다. 그러나 그가 가진 가장 큰 단점은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함에 있다. 가엾은 에릭.

거기에 비해 라울은 유약하기 그지없다. 귀족이라는 신분부터가 여자로 하여금 보호본능을 갖게 만든다. 날 정말 사랑하냐고 묻는 라울은 '만약 에릭이 잘생긴 사람이었다 하여도 그래도 날 사랑할 것인가'라고 묻는다. 겨우 생각한다는 게 생긴 것이라니..., 크리스틴이 오래 전부터 마음에 품고 있었던 사랑이 아니었다면 라울은 용서받지 못할 생각을 하는 멍청한 귀족청년임에 틀림없었을 것이다. 그의 행동은 유약하고 그의 말은 의심에 차 있으며 그의 발걸음엔 두려움이 있다. 그 질문에 크리스틴은 이렇게 말한다. '이런 딱한 사람 같으니.... 왜 운명을 두고 저울질을 하는 거죠? 마치 죄를 감추듯이 내 의식 저 밑에 감추어둔 것을 굳이 들추어내려는 의도가 대체 뭐예요?' 라고.

세기를 막론하고 우리 삶은 삼각관계 속에 있다. 그래서 갈등구조가 형성되는 것이고 그로인해 간절해지는 것이고 고민하는 속에서 삶은 아이러니하게도 활기를 찾게 되는 것이다. 아름다운 여인 크리스틴은 에릭이 가엾은 인간임을 안다.

사랑받길 원했던 남자 에릭. 어느 누구와도 다를 게 없어 보이는 가면도 새로 만들었어. 이젠 아무도 힐끔거리지 않을 거야.... 당신은 이 세상 누구보다도 행복한 여자가 될 거라구.... 그리고 우리는 둘이 함께 둘만을 위해서 죽도록 노래를 부르겠지.... 오, 당신은 우는군..... 나를 두려워하고 있어.... 하지만 나는 속까지 그렇게 나쁜 인간은 아니야! 나를 한번 사랑해봐, 그럼 알게 될거야.... 나도 사랑만 받는다면 얼마든지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어. 당신이 날 사랑만 해준다면, 나는 양처럼 온순해질 거야... 당신이 바라는 대로 뭐든 될 거라구...'

에릭은 크리스틴이 라울을 사랑한다는 사실 앞에서 납치할 정도의 집착을 보이지만 끝내 가면을 버리고 크리스틴을 라울에게 보낸다. 정말 사랑할 줄 아는 자라면 상대가 행복해지길 원하는 것이리라. 가려야할 그 무언가가 있다면 그 이상의 것들은 이미 현실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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