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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산바가지 -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 4 ㅣ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 4
박완서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11월
평점 :
절판
박완서 - 해산바가지 中 재이산 (再離散)
사람에게 두 번 헤어지게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포도주 한 잔을 다 비우고 나서 술기운이 없이는 맞이할 수 없는 것 같은 밤을 맞이하는 그런 기분일까? 온 몸이 오슬오슬 떨린다. 드라마지만 두 남녀가 만나 결혼을 한다. 난 내가 결혼하던 날을 기억한다. 너무 환하게 웃어서 사람들은 웃었다. 신부와 신랑이 너무 웃는다고...그렇게 환하게 웃던 나의 남자는 지금 곁에 누워서 무슨 생각을 할까? 우리 결혼하기 전 세 번 헤어졌다. 헤어지면서 우리는 더욱 간절해졌고 세 번째 이별 후 만나던 날 더 이상 우리에게 헤어짐이란 운명은 있지 않음을 확신하며 결혼이란 틀 속에 자연스럽게 갇히길 원했다. 내 부끄러움과 콤플렉스를 다 보여줘도 아주 편안했던 그 사람. 아주 행복했던 신혼 3년을 보내며 이 행복이 깨질까 염려해야 했던 한 시절을 보내고....
어쩌면 이별이란 이름이 있었기에 더욱 간절한 것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사랑은. 서로 떼어놓고 헤어지게 하더니 다시 그것을 헤어지게 한다는 것. 그녀의 소설에 다시 주목하게 됨은 우리가 흔히들 잊고 싶어하는 인간의 이중성에 대한 예리한 칼날에 수시로 몸을 내어주고 인정해야할 상처에 비릿한 피 맛을 알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오늘 그 예리한 칼날에 나를 베인다. 그 비릿한 피 맛이 나로 하여 핏빛보다 더 진한 포도주 한 잔 마시지 않고는 잠을 들 수 없게 한다. 전전긍긍해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 번 잊혀지는 고통이 있었고 정말 너무나 바라고 있었던 것들을 그들이 다 가질 수 있게 하고 일말의 기대가 우리의 욕심그릇을 들끓게 해도 다시 이별해야 한다면 해야하는 것이다. 미련 없이. 베인 상처에 다시 알코올을 붓고 아물길 기다리는 고통을 감내하며...
이산가족찾기가 한참인 그때. 난리 통에 부모를 잃고 7남매나 되던 부모의 형제와 할아버지에게 한 번 버려졌던 몽동필. 행여 찾을까 싶었던 가족들을 기다리는 그에게 작은아버지의 연락을 받는다. '체통과 명분'을 중시했던 집안에서 단박에 고아가 되어버린 그에게 찾아온 일가친척이란 이름은 그가 그렇게도 바라던 가족이란 이름이 아니라 그때도 골칫거리요 가족의 체통과 명분에 어울리지 않게 빈곤하고 고단한 그의 현실 앞에서 다시 한 번 골칫거리가 되고 만다. 그 예리하고 복잡한 심정들을 박완서는 너무도 맛깔 나게 잘 그려낸다. 나는 바랄 뿐이다. 몽동필이 강동수라는 이름으로 버뗘주기를.... 헛된 기대를 갖지 않기를..., 이미 내 것이 될 수 없는 그들의 부에 탐심을 갖지 않기를...,
그러면서 난 세상을 너무 아름답게만 보려했던 것은 아닌지. 순수의 시대에 너무 목말라 하는 것은 아닌지. 인간이란 존재가 가지고 있는 다면적인 면을 인정하려하지 않고 내가 편한 데로 생각하고 행동하려 한 것은 아닌지. 누구도 나에게 선뜻 자신의 목숨과도 같은 물그릇을 줄 수 없다는 걸 왜 모르는가. 그리고 무얼 더 바랄게 있다고 타인의 물그릇에 욕심을 내는가. 다시 헤어지는 고통이 뒤따르지만 그가 허상 속의 몽동필이 되지 않고 현실 속의 강동수로 씩씩하게 다시 일어서기를 바라는 마음처럼 세상의 쓴 맛 아직 당당 멀은 나는 좀 더 외롭고 거칠어져 봐야 알 것이다. 나 스스로 일어서지 못하는 자아가 얼마나 허망하고 씁쓸한 것인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