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계절
고은주 지음 / 문학사상사 / 2000년 11월
평점 :
절판


과도한 성의 시대이다. 성속에 성이 갇히고 이미 소설 속의 네여자 미류, 세하, 지원, 은해를 통해 보여지는 것은 오직 몸에 대한 이야기뿐이다. 정신은 이미 낡은 시대의 전유물처럼 초라하기 그지없다.

오직 몸에 충실하자라고 말하는 미류. 그녀의 주 무대는 박물관이다. 이미 현실의 테를 잃어버린 그 곳. 박물관. 그곳에서 만나는 많은 남자들은 그의 섹스파트너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오직 몸만이 유일한 소통의 도구이다. 그녀의 남편 또한 그렇다. 절대 그 이상을 요구하지 말라는 남편의 말. 그 것은 남편의 여자에게 하는 말임과 함께 아내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녀는 그 말에 안도하며 가족은 그저 돌아가야할 안락의 장소이며 그 곳은 그저 숨쉬는 무덤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그 무덤이 있기에 쉴 수 있고 다시 나갈 수 있는 통로의 출구인 것이다.

세하. 처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녀. 은해는 순결을 지키려는 여자다. 순결이란 무엇인가. 정신의 문제인가! 육체의 문제인가! 우리는 과도한 성의 시대에 살면서 과연 순결을 지켜야하는 도덕의 한 덕목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런 그 여자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그 남편은 순결에 대한 위선적 숭배와 첫경험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서로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사람이다. 한 사람은 사디즘적이고 한 사람은 메조히즘적이다. 가하고 당함이 다를 뿐 그들은 한 고민 속에 있는 사람들이다. 오직 세상은 순결한 자와 순결하지 않은 자로 나뉘어서....

여고시절 읽었던 한수산의 에세이 '순결한 아침을 위하여'가 생각난다. 하마, 순결은 불결과 동격이어 입에 오르내리기도 수상했던 여고시절. 금기의 장난감처럼 꼭꼭 싸들고 다니며 읽었던 기억이 있다. 거기서 얘기하는 순결은 세상에 대한 작가의 순결한 마음임을 깨달은 건 안개 걷히는 서늘한 겨울 아침 책장의 마지막을 덮으며 알게 되고 난 순결이 여성성에 국한시키려는 사회의 어눌한 목소리에 냉소를 붓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나의 도덕성은 얼마나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해매였는가! 정신과 육체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뒤집어보면 모습이 다른 듯해도 한 몸이다. 정신을 따라가는 육체에게 순결이랄지 불결이랄지 이렇게 이름한다는 것 자체가 불행의 시작이라 생각한다.

지원은 아픈 과거를 안고 있는 여자다. 전투하듯 그 과거와 싸워야 했고 이겨내야만 했으며 이겼다고 생각했는데...., 타래는 믿었던 곳에서 다시 엉키게 된다. 소설에 있어서 허구는 없고 리얼리티만 존재한다는 건 너무 건조한 일이다. 그저 은해와 세하가 소설답게 화해된 부분이 어설프다 생각했는데 지원과 미류에겐 그 약간의 화해의 액션도 주어지지 않는다.

지원이 겪은 아픈 과거의 기억들을 치유해주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 그녀의 남편 영후도 여자에게 너그럽지 못한 세상의 토양에서 자란 탓으로 그녀의 아픔을 껴안지 못하고 동등해야할 부부는 용서하고 용서받는 사이가 되어버린다. 끝없는 미류의 방황. 어느 것도 해답을 주지 못하고 산적해 있는 문제만이 내 가슴을 짓누른다. 어디로 가야하나! 어디로 가야 해답을 잡을 수 있단 말인가.

소설은 생각만큼 명쾌하거나 유쾌하지 않았다. 어눌한 그녀들의 고민은 오직 몸으로만 설명하려 하는 작가의 글 또한 의도를 합리화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과도한 성처럼 책도 과도한 광고이지 않은가. 답답할 뿐이다. 그녀들은 위선과 뒤틀림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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