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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방 ㅣ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14
강석경 지음 / 민음사 / 2005년 10월
평점 :
절판
강석경의 많지 않은 책들엔 시대를 걸어가는 힘이 있다. 그녀의 초기작인 숲속의 방은 스무 살을 얘기한다. 그리고 삼십대의 혼란 사십대의 혼란, 그녀는 인간의 정체성과 그리고 사회적 혼란 속에서 인간이 걸어갈 수 있는 길들에 대해 얘기한다.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숲속의 방. 그것은 소양이 찾아 나선 길이기도 하고 그 시대 젊음이 모여있는 곳이기도 하고 또 우리들이 갈망하는 또 다른 방이다. 그러나 그곳에서 길을 잃은 어떤 세대는 삶을 포기하고 피폐해진 육체를 끌어안고 그 숲에서 죽음을 맞는다. 위선의 힘. 그것은 위대한 것이어서 사람을 질리게 하거나 죽게 만든다. 위선이 나쁜 거라고 얘기하지만 위선하지 않고 어떻게 살 수 있단 말인가.
아무도 그리워할 사람이 없는 소양은 죽음에 이른다. 키에르 케고르는 일찍이 절망과 자아상실을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 하지 않았던가 소설의 주인공은 소양이고 그녀의 언니인 미양이 그녀의 일기를 통해 소설은 이루어진다. 소양은 그 시대의 미아이다. '데모하다가 나중엔 빠졌는데 데모할 때도 갈등했고 빠질 땐 빠져서 괴로워했다.' 이것이 그녀였다. 어느 곳에서도 안주할 수 없는 젊음.
- 당신은 내 집이라고, 나그네는 아무 곳에나 머물지만 나는 집으로 돌아온다고 (그녀의 소설은 참으로 잔인하다. 어쩌면 서로 다른 인물들을 대조적으로 배치해서 독자로 하여금 혼돈 속으로 몰아가게 만드는가. 집을 찾지 못해 떠도는 영혼을 바라보는 자의 침통함을 어찌하고 또 다른 그녀, 미양에겐 저리도 쉽게 그 집을 찾아준단 말인가. 나그네..., 인생은 어차피 나그네길이다. 천상병은 이 세상 소풍 왔다고 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평생 영혼의 안주를 찾아 방을 헤매일 것이다.
- 순수는 꿈으로만 간직해야 한다. ( 이 말을 부정한다면 난 아직도 꿈속을 거닐고 있는 것인가. 내가 가지고 있는 열정 속에 순수라는 이름을 지어주어도 되는가. 나로 하여 쉼 없이 고민하게 하는 저 알 수 없는 정체 속에서 순수랄지 꿈이랄지 이런 것들을 논할 수 있는가.
- 방황은 청춘의 특권이 아니라 형벌인 것이다. (청춘이 형벌일 때가 분명있었다. 이 소설의 배경도 그러하다. 그러나 사회적 이념과 개인의 감성이기 이전에 이 책은 인간의 근원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 꼭 그 시대의 사회적 배경이 아니라 지금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든 삶 속에서 있을 수 있는 특권적인 것들과 형벌적인 것들)
- 내가 무얼 원하는지 모른다는 게 고통이야. (인간은 적어도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똑같은 정신의 세계를 두고 선택하라면 과연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인생은 어차피 선택이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 그것은 원하는 것에 대한 소유의 차이이리라. 하나는 이미 가지고 있는 것과 그리고 하나는 다른 것을 갖기 위해 포기해야하는 것. 쉽게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고통스러워한다. 선택의 문제는 언제나 인생을 건조하게 한다. 우리는 나이가 먹을수록 기득권을 포기하려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