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즈버드 - 그 사람의 1%가 숨겨진 99%의 진심을 폭로한다면
피에르 아술린 지음, 이효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그의 문체는 매력적이고 재미있지만 친절하진 않다.

천천히 읽어도 봤으나 해석은 쉽지 않았다.  인물에 대한 총체적 비평보다는 부분에 치중하다보니 전체를 알지 못하는 나에겐 순전히 코끼리 다리 만지기였다.  훌륭한 비평가의 평론을 사전지식 없이 읽는 느낌이었다.  그런 책을 읽을 땐 분명한 한계를 느낀다.  한시라도 한눈을 팔면 어디로 뛸지 모르는 생각의 전환이 읽는 이를 혼돈에 빠트린다.  저자의 방대한 지식이 여기저기서 우후죽순 튀어나오는 것도 거슬렸다.  어쩌겠는가?  나의 무식함을 탓할 수밖에.  그럼에도 내가 알고 있는 부분이 불쑥 튀어나올 때는 꾸뻑꾸뻑하던 내 두 눈과 뇌가 즐거워지는 걸 느낀다.  책 읽기의 즐거움이란 바로, 내 생각과 타인의 생각이 이렇게 다르구나. 또는 이만큼 닮았구나의 차이로 판가름되는 듯하다. 




전사한 아들을 찾아다니는 러드어드 키플링의 이야기는 인간이 자신의 사고와 언어, 행동에  얼마나 갇혀 사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겨우 열여덟 살이었던 아들 존 키플링은 아버지 러드어드 키플링의 언어 속에서 선택할 수 없는 신체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전장 속으로 뛰어든다.  아들이 죽은 후에야 아들을 찾아나서는 키플링의 고뇌가 마음 아팠다. 




현대 포토저널리즘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랑스 사진기자인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접이식 의자는 예술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를 반성하게 한다.  깐에 사진을 찍어보겠다며 깜쭉거린 한때가 있었고 내 삶에게 사진은 아직도 유효하게 남아있다.  훌륭한 작가를 만날 때면 사진을 대하는 그들의 철학이 궁금해지곤 했다.  한 가지 색깔을 고수하며 살아가는 그들에게 전환점은 없었는지 시행착오는 어떻게 인정하며 변화시켰는지가 엉뚱하게도 더 궁금했다.  자연광 아래서 포착한 찰나의 순간을 찍었다는 앙리의 주머니에는 평생 남의 눈에 뜨지 않는 소형 3.5mm 카메라에 있었다고 한다.  그런 그가 갤러리에서는 접이식 의자를 앞에 놓고 아주 오랫동안 그림을 바라본다.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시간은 그에게 유효하지 않다.  다만 그의 마음을 타고 들어오는 순간의 영감만이 그 안에 존재한 것이다.  뭔가를 오래 응시해본 이는 알 것이다.  찰라의 순간에 파고 들어오는 그 환희의 순간을. 




다이애나의 결혼식 장면은 기대보다 지루했다.  아마도 나는 스캔들이 더 궁금했었나보다. 




피카소의 그랑조귀스탱가 7번지는 ‘디테일’의 언급부분에서 공감이 많이 갔다. 영화 <블루>를 소개하는 부분에서는 과연 나는 그 몇 명만이 느꼈다는 그 미세한 디테일을 간파했을까?  그리고 내 삶의 결정적 순간에 보여 지는 디테일을 어떤 시선으로 받아들였나...., 아마도 오랜 동안 내 뇌리에서 지워지기 힘든 부분이 될 듯한 운명적 예감이라고나 할까?  그랬다.




시계를 풀어놓은 파울 첼란..., 가장 재미있었고 가장 마음 아팠다.  파울 첼란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이 책은 나에게 가치 있는 책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대계 독일인 시인.  2차 세계대전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나왔지만 평생을 죄의식에서 살아야했던 시인. 




읽는 내내 그 1%에서 99%를 얻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가치 없는 일은 분명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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