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고래
김형경 지음 / 창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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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신비한 마력을 지녔다.  니은이가 왕고래집 할머니의 글 ‘내가 화날 때’라는 글을 읽으면서부터 몸속에 있었던 화들이 분출되기 시작한다.   좋은 책을 읽고 난 후엔 책표지를 따뜻한 손으로 쓰윽 쓸어 보는 게 내 버릇이다.  내 손끝으로 따뜻한 기운들이 온 몸으로 퍼지는 그 기분이란..., 한 권을 책을 읽은 후의 감동은 그렇게 손끝을 타고 온다.   흰수염고래와 뽀글뽀글 올라오는 물방울들..., 바다가 느껴졌다.  고래가 죽음의 마지막 순간에 피운다는 꽃분수가 슬프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내 몸에도 마지막 순간 피우고 싶은 꽃이 꿈틀거림을 느낄 수 있었다.  글을 읽으면서 느껴지는 이 따스한 기운들은 분명 신비한 마력임에 틀림없다.  늦은 나이에 글을 배우는 왕고래집 할머니는 이런 말도 한다.




“글을 쓰다보니 마음이 이상해지더라. 그냥 글자만 쓰는 거라 여겼는데 그게 아니더라. 마음을 깊이 뒤집어 밭을 가는 것도 같고, 맘속에서 찌개를 끓이는 것도 같고.”




글을 쓴다는 것이 이와 같을 것이다.  그 동안 심리소설을 많이 써온 저자의 책들은 따뜻하기 보다는 사실적이었고 분석적이었다.  나름 저자의 책들을 즐겨 읽었던 나에게 이 책은 그 동안의 느낌과는 다르게 다가왔다.  그녀가 조금 부족했던 부분들이 이 책에서는 두드러졌다.  교감과 소통과 따뜻함, 그리고 성장.  이 모든 것들이 상생하는 느낌이었다.  




니은이는 열일곱에 부모를 잃었다.  열입곱이라는 나이는 부모가 필요함에도 부모가 필요없다고 느끼는 나이다.  존재가 곁에 있으면서 내가 조금씩 떠남을 준비하는 것과 아무런 준비도 없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떠나는 것은 다르다.  “세상 모든 노래가 사랑노래이고 세상 모든 이야기가 사랑이야기라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세상 모든 노래는 이별노래고 세상 모든 이야기는 이별이야기였음을 깨닫게 되는 것”과 같다.




그런 니은이는 아버지의 고향인 처용포에서 장포수할머니와 왕고래집 할머니를 통해 오래 사랑하는 법과 느긋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그리곤 날마다 눈앞이 조금씩 더 환해짐을 느낀다.  “십년 쯤 후에도 여전히 슬프다면 슬픔을 사진으로 찍으면서 인도를 여행하는 나무 사촌 언니처럼 하면 될 것이고, 이십년쯤 후에는 헤븐에서 만난 언니들처럼 낮에는 직장에서 일하고 밤이면 스트레스를 날려보낼 즐거운 일을 찾을 것이다.  삼십년쯤 후에는 왕고래집 아주머니처럼 유쾌하게 살면 되고, 더 시간이 흐르면 왕고래집 할머니처럼 늙어가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 니은이는 모든 것이 괜찮아지는 느낌을 받는다. 

일 년쯤  학교는 늦어지겠지만 니은이는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것들을 처용포에서 배운다.




 나는 요즘 달콤한 초콜릿이 자꾸 땡긴다.  달콤한 것들이 좋아진다.  고래를 아주 오랜 동안 사랑한 장포수 할아버지,  늙을수록 어린 아이처럼 솔직해지는 왕고래집 할머니의 오랜 연륜.  그 안에서 품어져 나오는 따뜻함.  꼭 초콜릿 같다.  입안에서 퍼지는 기운이 뜨겁다. 

  

징징거리지 않기,

변명하지 않기.

핑계대지 않기, 

원망하지 않기.

자기 인생을 책임지며 살기 원하는 나무 사촌언니의 인생 표어들도 나를 뒤돌아보게 한다.

이렇게 살면서 당당해지고 싶다.  내 인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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