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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세계의 명화
사토 아키코 지음, 박시진 옮김 / 삼양미디어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그림은 나에게 허기짐이다.
너무 늦게 만난 사랑에 열병을 앓아야하는 중년의 애달픔이다.
그 사랑은 세련되지 못하여 찌질찌질 문 밖에 서서 혼자 애타는 날이 더 많다.
언제부터였을까? 문 밖에 서서 비를 맞기 시작한때가.
르네상스를 꽃피웠다는 피렌체의 거리를 종횡무진 걷기 시작할 때였을까?
2시간을 줄서서 기다렸던 바티칸의 산피에트로 대성당에서였을까?
루브르에서 내 몸과 눈을 한 눈에 빼앗아 버린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본 순간이었을까?
제우스가 황금소나기로 변신해 다나에와 사랑을 나누었던 것처럼 정말 순간이었다.
그랬음에도 난 늘 그 소나기에 젖어 안개처럼 축축하다.
그 사랑은 깊고도 치명적인 것이어서 독은 온몸에 퍼져 죽을 때까지 날 취하게 할 것임을 안다. 그것이 오랜 사랑에 대한 나의 습성이다.
그래서 잘 만들어진 미술책을 만나면 가까이에 두고 오랫동안 매만지고 펼쳐보고 쓰다듬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미술은 나에게 미궁이다. 그냥 그게 좋다. 미궁 속을 헤매고 나오는 느낌. 그래야 그 미궁 속을 처음인냥 다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이 책은 펼쳐보는 재미가 있을 듯하다.
정돈된 듯한 내 머리를 다시 흩어놓는 재주도 지녔다. 그리고 다시 조립시킨다.
신화와 종교의 세계, 미술사의 전환점을 이룬 화가들, 역사와 인간의 삶의 표현한 화가들, 독창적인 색체와 형식이 압도적인 그림들 등. 이렇게 분류된 그림들은 화가들이 다시 겹쳐지기도 한다. 미궁으로 다시 빠져들기엔 안성맞춤이다.
난 잘생긴 남자에게 약하다. 모딜리아니가 그런 화가다. 그런데 모딜리아니는 매력적인 여자에게 약했던 모양이다. 그가 그린 여자들의 얼굴을 오래 보고 있자면 여성다움보다는 묘한 고집스러움과 강한 흡인력이 느껴진다. 그래서 그가 그린 여자들이 더 좋다.
루벤스의 ‘수잔나 푸르망의 초상’에서는 여자를 수줍게 하는 화가의 눈빛이 느껴진다. 루벤스가 점잖은 신사였다고 표현하고 있지만 그의 그림 속에선 상기된 유혹이 있다. (이건 순전히 아마추어에 불과한 나의 느낌에 불과하니 믿을 바가 못 됨을 첨언하다.)
프리다 칼로의 그림은 고통스럽다. 그림 속 고통 속에는 진실이 담겨져 있어 용기를 갖게 한다. 그녀는 마지막 작품 ‘수박을 그린 정물화’에 “인생 만세”라는 글귀를 남긴다. 모든 생에 최선을 다했던 그녀다운 열정이다.
클림트의 ‘다나에’ 같은 관능적인 그림 앞에선 묘한 격정을 느낀다. 다나에의 서양적 관능미 사이사이 그 물방울(?)의 문향은 동양적 느낌을 준다. 그 동양적 느낌이 그림을 더욱 에로틱하게 만든다.
“나에 대해 알고 싶다면 겉만 보면 된다. 그것이 나다. 내면에는 아무것도 감추고 있지 않다.” 라고 말한 앤디 워홀은 얼마나 단백한가.
모네를 눈멀게 한 그 빛에서는 꽃향기가 난다. 죽음을 부르는 수련의 달콤 쌉싸름한 향.
몬드리안의 그림은 여전히 해독하기 어려운 모스부호 같다.
뭉크의 그림은 너무 슬프다.
이 많은 남자와 여자를 사랑한다. 그들이 일생을 두고 그렸던 그림들을 사랑한다. 나는 나의 사랑이 아직 턱없이 모자람을 안다. 그래서 가까이 두고 오래 사랑하련다.